인류 문화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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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철학 답사] 노무라 미술관
조선의 미감((美感)과 일본의 다도, 고려다완으로 만나다.
난젠지에서 긴가쿠지로 가는 길은 철학의 길로 연결되어 있다. 세월의 이야기가 가득 배어있을 것만 같은 그 길의 초입에 살포시 숨어 있는 작은 미술관이 있다. 노무라 미술관(野村美術館)이다.
이 미술관은 일본 굴지의 금융기업인 노무라 증권과 구 다이와 은행을 창업한 노무라 도쿠시치(野村徳七)의 컬랙션을 중심으로 1984년에 개관하였다. 노무라가 모은 고문서, 회화, 도자기, 차도구, 능면能面 등 1900점의 소장품 중에는 중요문화재도 7점이 포함되어 있다. 그중 우리는 고려다완(高麗茶碗)에 관심을 가지고 방문하게 되었다. 이 미술관 타니(谷) 관장님은 고려다완 연구에 있어서 세계 최고의 권위자라고 하신다. 한국에 가마터 조사를 위해 자주 방문하셨고, 학자들과 교류도 활발하게 하신다고 하셨다.
처음 고려다완을 봤을 때는 생각보다 소박한 모습에 무엇이 그토록 일본인들을 매료시켰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고려청자처럼 화려하거나 특별한 기술로 만든 것 같지도 않고, 조선백자처럼 절제되고 단순하며 담백한 아름다움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투박하고 무심하며 소박하고 불완전하게 보였다. 타니 관장님께서 다완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지만, 나는 처음에는 그 아름다움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일본 도공들이 고려다완을 만들기 위해 조선에 있는 왜관의 가마터에서 다완을 만들었지만, 조선의 도공들이 만든 다완과는 달랐다고 했다. 같은 흙과 불을 이용했으며 기술도 좋은 도공들을 보냈지만, 번번히 실패였다고 했다.
이 고려다완을 후세에서 재현해 보기 위해, 실제 고려다완을 보여주고 일본인 작가와 한국인 작가가 각각 재현을 한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회를 기획하고 열었던 적이 있었다고 하셨다. 결과 일본 작가들의 작품은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따라가지 못했다고 한다. 이 고려다완에는 한국적인 어떤 센스가 들어가야만 진짜 고려다완이 완성되는 것 같다고 설명해 주셨다. 또한 다완에 대한 평가는 다완에 차를 담아 직접 들고 마시면서 그 다완의 무게와 입술과 다완이 닿는 감촉을 모두 함께 느끼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셨다. 수레 가득 은을 싣고와도 구하기가 힘들었다는 고려다완, 일본인을 열광시킨 그 한국적인 센스가 뭐였을까? 관장님의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 어려워지는 수수께끼 같았다.
숙제를 가득 안고 미술관을 나왔다. 깊이 이해하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철학의 길로 향했다. 고려다완과 철학의 길이라….통하는 지점이 있을 것만 같았다. 철학의 길을 걸으면서 고려다완을 철학해 보자. 논리는 잠시 넣어두고, 상상력의 철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차를 마시는 시간은 일상의 쉼표와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고요와 여유를 느끼며 생각과 감정을 맑게 걸러주는 그런 시간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비움’의 시간, 그 비움을 통해서 나를 채우는, 불완전한 상태를 통해 완전함에 다가가려는 그런 시간이 차를 마시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와비사비侘び寂び의 세계관을 아직 잘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소박하고 투박하고 완전하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이 고려다완을 통해 아름다움으로 승화된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조금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균형 잡히지 않은 형태, 투박하게 발린 유약, 정제되지 않은 빛바랜 색감이 일본 다도와 만난 지점에서 이보다 완벽할 수 없다고 그들은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걸작이 탄생했구나! 기가 막히게 성공적인 협업이다. 철학의 길에서 수백 년 전의 고려다완이 이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