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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 인류학


[인류의 대항해 서평] 옛 항해의 풍경

작성자
유나
작성일
2025-06-08 23:32
조회
11

서평/인류의 대항해/2025.6.8/손유나

 

옛 항해의 풍경

 

옛 사람들에게 바다는 미지의 영역, 그래서 신화와 전설이 깃든 공간이었다. 그들은 신중하게 바다 곳곳에 길을 내어 왕래했다. 위치를 확인할 GPS도 없던 과거에 어떻게 이 망망대해 저편에 육지가 있음을 확신하고 수평선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을까? 이들이 바다로 나간 이유는 무엇이고, 어떤 풍경을 마주했을까?

브라이언 페이건은 인류의 대항해에서 인류가 어떻게 미지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는지를 주요 탐구 과제로 삼는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인간의 모험심을 거론하지 않는다. 저자에 따르면 옛사람들은 아무런 정보가 없는 백지상태에서 호기심만으로 바다로 나가지 않았다. 날아가는 새 떼, 멀리 보이는 산불로 인한 연기, 바다 건너편에서 떠내려온 목재 등으로 수평선 너머로 육지가 있음을 확신했기에 옛 항해자들은 먼바다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항해자들은 육지가 보이는 연안을 항해하며 바람과 해류의 방향과 패턴을 파악하고, 태양의 위치, 별의 위치, 해저 퇴적물, 바다 색깔, 특정 어류의 서식, 곶의 모양, 독특한 색깔의 절벽, 두드러진 수풀의 모양 등 수많은 자연적 요소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여러 세대에 걸쳐 축적했다. 이처럼 인류는 확신과 지식, 기술이 갖춰진 후에 비로소 수평선을 향해 나아갔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로 나아갔을까? 이에 대해 저자는 사회적 필요를 항해의 동기로 파악한다. 많은 사회에서 장자가 재산과 지위를 물려받았고, 차남 이하의 남성들은 자신이 살아갈 땅과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가야 했다. 그렇게 한 걸음씩 자신의 고향을 벗어난 결과, 수백 년, 수천 년에 걸쳐 인류는 바다 곳곳을 누비게 되었다.

이 책은 북대서양, 지중해, 몬순 세계, 남태평양, 북동태평양, 동태펴양과 카리브해를 주요 무대로 삼아, 어떤 배가 어떤 경로를 항해했는지를 서술한다. 각 바다는 저마다의 특징이 있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고, 규칙적인 계절풍과 해류가 흐르는 몬순 세계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날씨가 바뀌고, 변화무쌍한 파도와 돌풍이 부는 차가운 북해의 풍경은 완전히 다르다. 이 책은 각 문화권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와 필요에 따라 배의 모양과 배에 실린 화물도 다르다. 어떤 배가 어떤 물건을 싣고 어떤 경로로 오갔는지와 원거리 무역을 하던 상인들이 타지에서 만들어낸 공동체의 흔적 또한 보여준다. 예컨대 이슬람아랍 상인들이 남긴 동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중국 항구에 만들어낸 사원과 자치 구역은 이종의 문화가 섞이는 역사의 일면을 보여준다.

이 책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저자가 단순히 역사학자가 아니라 항해자라는 점에서 나온다. 저자는 안개 낀 어느 날 발트해에서 길을 잃고, 19세기 해군 조사원이 남긴 발트해 항해 교법을 참고해 지형지물을 따라 항해한 경험을 소개한다. 머리와 몸으로 바다를 읽고 항해하는 전통 항해자로서 저자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옛사람과 어떻게 바다를 건넜고 어떤 풍경을 마주했을지, 과거의 항해란 어떠하였을지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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