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인류학
[바다 인류 서평] 바다, 연결의 무대
내륙 한가운데에서 자란 나에게 바다는 낯선 공간이다. 바다는 가끔 여행 가서 만나면 반가운 정도로 느껴졌고, 내 삶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다 인류』를 읽으면서 나는 수없이 바다의 영향권 안에서 먹고, 살고, 관계 맺고 있음을 깨달았다. 바다 아래 살던 해산물들이 어획되어 우리집 식탁을 채우고, 바닷물의 흐름이 오늘 날씨에 영향을 미치고, 내 두 발이 되어주는 자동차의 연료나 수시로 손에 드는 필기구들이 바다 건너 나에게 왔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누구나 바다의 거대 네트워크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과학 문명이 고도로 발달된 현대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바다라는 무대는 더 오래전부터, 우리의 조상이 약 6만 년 전 아프리카를 빠져나오기 시작한 이래 계속 연결의 장소로 이용되었다.
『바다 인류』 저자 주경철은 시대별로 위치별로 변화하는 바다의 네트워크를 주목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이 네트워크는 정착, 어업, 교역, 정복 등 다양한 테마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책에서 알려주는 인류와 바다의 연결망을 보고 있으면 내가 바다와 결코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상관있음을 알게 된다.
카누를 탄 인류는 약 5,500년 전, 중국 남부나 타이완에서 출발해 오스트레일리아는 물론 더 먼 이스터섬까지 나아갔다. 이들의 항해 목적은 주로 이주였으며, 섬마다 흩어져 정착한 사람들은 다른 섬이나 마을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해서도 바다로 나아갔다. 태평양 사람들에게 세계는 ‘광대한 바다에 둘러싸인 섬들(islands in a far sea)’이 아니라 ‘섬들로 이루어진 바다(a sea of islands)’(『바다 인류』, 42쪽)로, 바다는 고립의 공간이 아닌 연결의 무대였다. 하지만 『바다 인류』에서 보여주듯, 이러한 연결의 의미는 시간이 흐르며 변화의 모습을 보인다. 삶의 조건에 따라 바다를 이용하는 목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바다 인류』는 바로 그 변화를 따라가는 책이다. 그 변화의 지점들을 만나보자.
교역의 장소
기후 변화로 인해 약 6,500년 전부터 사하라 지역과 아라비아 지역이 점차 사막화되었다.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찾아 강가로 이동했고, 그 결과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문명이 발전했다. 강과 바다를 잇는 수송 네트워크를 통해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인도의 고대 문명권과 연결되었으며, 이 연결은 국가의 번영과 쇠퇴에 따라 지속되거나 방향을 바꾸었다. 이집트는 메소포타미아와 활발히 교류하며 위대한 문명을 꽃피웠다. 나일강을 이용해 주변 지역은 물론 지중해 크레타까지 교류와 교역, 갈등을 반복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나아가 이집트는 해상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외래 문화를 받아들이고 외부의 침략을 방어하는 동시에 강력한 세력으로 뻗어나갔다.
지중해에서는 미노아와 미케네 문명이 활발한 해상 교역을 펼쳤다. 기원전 13~12세기경 잠시 암흑기를 겪었지만, 기원전 9세기경에는 지중해 동부 해안의 상업 민족 페니키아인이 해상 문명을 이끌었다. 잠시 주춤했던 그리스인들도 다시 지중해 연안과 흑해 지역으로 확산해 거류지를 형성했다. 지중해의 해상 네트워크는 올리브유, 포도주, 직물, 도자기, 철, 은 등 다양한 상품의 이동뿐 아니라 건축, 문자, 시가 등 문화 자산들의 교류를 촉진했다. 고전기 지중해 세계는 사람과 물자, 정보와 문화 요소들이 바다를 통해 교환되는 활력의 장소였다.
인도양에서는 장구한 기간 끊임없이 다방면으로 교역이 행해졌다. 이곳은 지중해와 달리 어떤 세력도 패권을 장악하지 않았다. 저자 주경철은 이 거대 해역을 ‘다양한 중심점이 존재하는 다중심적(polcentric)공간’이라고 표현한다. 몬순이라는 계절풍이 규칙적으로 부는 이곳은 교류의 네트워크가 서로 연결되고 중첩되는 방식으로 확장해갔다. 또 지중해 세계와 인도양 간 교역도 발전했고, 이어 중국과 동남아시아 간 교역이 인도양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혈연·출신·종교에 따른 상인 공동체들이 협력하며 상업 활동을 수행했다. 종교, 문화, 언어의 차이를 넘어 교역과 교류가 가능한 이 바다는 개방적이고 평화적인 바다였다. 지중해, 인도양 뿐만 아니라 길고 긴 역사 속에서 세계는 바다라는 무대에서 물자를 서로 주고받으며 관계를 이어왔다.
정복과 폭력
바다를 조금 더 파괴적인 목적으로 이용한 경우도 있다. 기원전 850년경, 그리스 전함에 달린 충각(衝角, ram)의 등장은 바다가 이제 본격적인 투쟁의 무대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지중해의 바다 사람들은 이제 해상 패권을 노리며 ‘내 바다’와 ‘네 바다’를 구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이 생각하기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폭력이라는 방법을 동원해야했다.
충각의 등장보다 좀더 무섭게 느껴지는 시대는 내가 그동안 용기있는 모험가로 알아왔던 콜럼버스가 등장한 중세의 바다다. 에스파냐 인들은 정복에 무게를 두고 신대륙에 진입했다. 정복자들의 파괴성은 극도로 잔인해 보였다. 바다든 땅이든 거치지 않고 소유하려고 했다. 그들은 막대한 양의 귀금속을 채굴하고, 원주민과 물자를 수탈하는 제도를 만들고, 의도대로 되지 않을 때는 원주민 학살을 자행했다. 그들의 눈에 바다는 식민지들을 수집하기 위한 길이었다.
중세 대항해시대는 해적과 밀수의 시대이기도 했다. 해적들은 인도양, 대서양, 태평양 전역에서 글로벌한 스케일로 활동했다. 1700년경에는 해적 1,500명이 인도양에 득시글거렸다고 한다. 이 당시 해상 패권 여부는 해적 현상과 직접 연결된 문제였다. 해적은 개인들의 이익집단으로 모인 것이 아니라 ‘국가를 대신하여’ 폭력을 휘두르는 집단이었다. 나중에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 국가에 대항하기도 하지만 해적들의 바다는 생존하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공간이 되었다.
『바다 인류』를 읽으며 나는 더이상 바다를 나와 무관한 공간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바다는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세계를 잇는 통로이고, 동시에 사람들의 욕망이 투영된 무대다. 연결과 교류, 정복과 폭력이 얽힌 복잡한 역사 속에서 바다는 인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바다 인류』는 인류의 바다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조망하는 긴 이야기 끝에 이제 우리가 바다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지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