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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 인류학


[이븐 바투타 여행기] 3- 4장 옷, 선물, 출렁이는 관점

작성자
coolyule
작성일
2025-06-09 17:33
조회
18

해양인류학 2025-6-9 김유리

 

옷, 선물, 출렁이는 관점

 

 

『이븐 바투타 여행기1–여러 지방과 여로의 기사이적을 본 자의 진귀한 기록』(이븐 바투타 지음, 정수일 옮김, 창비, 2005)

ㆍ제3장 히자즈

ㆍ제4장 이라크와 페르시아

 

메디나에서 메카로 가는 길에 순례자들은 옷을 갈아입는다(199~200). “바느질한 옷”을 벗고 전신세정을 한 다음 “계의”로 갈아입는다. 계의란 바느질하지 않은 하얀 옷이다. 남자는 한쪽 어깨를 드러내고 여자는 장옷처럼 머리까지 감싼다.

수계처에서 옷을 갈아입은 순례자들은 메카에 도착할 때까지 쉼없이 응소사를 염송하면서 나아간다. 응소사란 알라의 부름을 받들어 성지에 왔다는 것을 고하는 경문이다. “배우없이 독존하시는 알라여, 당신의 부름에 응해왔습니다. 부름에 응해왔나이다. 부름에 응해왔습니다.(200)”

옷을 갈아입는 의식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옷의 상징은 무엇일까? 우선 새 옷으로 갈아입음으로써 묵은 세계를 버리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통과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순례 길에서 물이 풍부한 곳이 나오면 옷을 빠는 것처럼 불결에서 정결 상태로 바꾸는 의미도 있다. 그런데, 바느질이 된 것과 되지 않은 것의 차이는 무엇일지 잘 모르겠다.

몸에 어떤 옷을 입히는가는 그 몸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일인 것 같다. 주민들이 선의에서 고아들을 먹이고 가르치고 입히거나 정신이상자에게 옷을 지어 입히는 것처럼, 왕도 백성에게 옷을 하사한다. 그런데 옷을 받기를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이라크 국왕(몽골 계통)의 섭정 아미르 일가가 반역을 꾀하다가 패했을 때 넷째 아들이 이집트에 피신한 일이 있다. 구세주(알-마디)로 받들어졌다는 이 넷째 아들은 자기를 보호하는 이집트 왕이 그에게 의상을 선물하면 왕을 얕잡아 보고 그 옷을 가져온 사람에게 그보다 더 좋은 의상을 쥐어주곤 했다고 한다(334). 이집트 왕은 구실을 만들어 그의 목을 쳐서 이라크 왕에게 보낸다. 옷을 받아 입는 것은 자기를 낮추는 행동인가 보다. 옷을 받아 입음으로써 더 나은 자신이 되었다고 여겨야 감사할 수 있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옷에 관한 인상적인 일화로, 이븐 바투타가 아스파한에서 수피파 자위야에 머물 때 있었던 일이 있다. 샤이흐 꾸트붓 딘은 이븐 바투타를 후대하고 훌륭한 옷 한 벌까지 입혀준다. 어느날 이븐 바투타는 화원에 샤이흐의 옷을 넣어놓은 것을 본다. 안감을 댄 흰 겉옷(주트바)였고 그것이 마음에 들어 “저런 옷이라면 한번 입고 싶은데”라고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들은 샤이흐는 곧장 그 옷을 이븐 바투타에게 입혀준다. 이븐은 너무 고마워서 샤이흐의 발 앞에 엎드려 두 발에 입을 맞춘다. 그러면서 샤이흐의 모자를 씌워달라고 간청한다. 옷을 줬는데 모자까지 달라고? 모자를 준다는 것은 친근한 관계임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한다(230). 그런데 이븐 바투타가 청한 것은 그 이상의 특별한 의식이었다. “대관의시”라고 해서 스승이나 선배가 문하인이나 후배의 신앙심과 덕행을 인정하여 모자를 주고 옷을 입혀 “준허 의식”을 치르는 것을 말한다(298쪽, 각주 68). 샤이흐는 대관의시를 허락했고, 이븐 바투타는 그 날을 727년(서력 1326년) 6월 14일로 기록한다. 그의 나이 스물 네 살 때의 일이다. 대관의시 의식을 통해 이븐 바투타는 이 샤이흐(1)의 선친(2)의 선친(3)의 선친(4)의 스승(5)의 스승(6)의 삼촌(7)의 선친(8)의…… 할리파 알리 븐 아비 퇄리브(17)에 연결된다.

옷은 살아가는 데 빠질 수 없는 사물이자 겉으로 보이는 것이라서 참으로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종교의 세계에서는 옷도 의식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일상적으로도 옷이 없는 구차함, 때묻은 옷을 벗지 못하는 찜찜함, 깨끗하고 좋은 옷으로 갈아입는 상쾌함 등으로 옷과 정신 상태가 연결된다. 윤리의 차원에서, 옷으로 타인을 평가하는 경솔함과 좋은 옷을 나눠주고 자기는 거친 옷으로 만족하는 수행자의 덕성도 생각할 수 있다. 옷을 사는 것도 좋지만 좋은 옷이란 무엇인지, 옷을 갈아입는 일, 옷을 주고받는 일은 어떤 의미일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〇지난 수업 후기

ㆍ1장 이집트

ㆍ2장 샴

 

해양 인류학 팀에 구간 동승하여 『이븐 바투타 여행기』를 함께 읽게 되었다. 스물 두 살 이븐 바투타가 부모와 고향(모로코 탕헤르)을 떠나 메카로 향하는 머나먼 순례길에 오른다. 그는 “굳은 의지와 성지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으로 친한 길동무 하나 없이 혈혈단신으로” 긴 여행길에 올랐다고 기록한다. 하지만 당시의 이븐 바투타는 그의 내면의 의지와 경건한 신앙심에도 불구하고 누가 봐도 걱정스러운 초심자의 행색이었을 것만 같다. 1절에서 이븐 바투타는 길에서 만난 동행이 병들어 죽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거나, 노상 강도를 만날까 걱정하거나, 노숙을 하다가 큰 비를 만나거나, 재차 열병에 시달린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도시 투니쓰시에 당도했을 때는 서러움에 눈물을 터뜨리기도 한다. 이때만 해도 그의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누구도 예상 못했을 것이다.

이븐 바투타는 순례길에 명소에 들리고 명사들을 만나서 보고 들은 것들을 기록한다. 성스러운 장소와 인접한 시장들, 낯선 풍광들, 도시와 시골의 사람들의 행색과 기질과 관습, 그리고 왕과 신하, 종교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도착지는 다양하고 “하나의 이슬람은 없다(오선민 선생님)”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행로는 바다와 강, 사막을 망라하는 상인 교역로를 따른다. 이 교역의 네트워크를 타고 경제와 종교가 결합된다. 숙박, 식사, 여비는 광범위하게 걸쳐 있는 이슬람 공동체의 수피즘 수행처(자위야)에서 얻는다. 수피즘이란 이슬람 신비주의를 말하는데 그 이름의 어원은 양털(수프)로 짠 거친 천으로 의상을 만들어 입고 다닌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수피즘은 금욕적인 수행과 자기를 버리고 신과 융합하는 체험을 강조한다. 여행자들을 지원하는 “희사”의 관습도 이븐 바투타의 여행길이 계속 이어질 수 있게 해준다.

수업 중에 “받는다”는 것이 어려운가에 대한 짧은 토론이 있었다. 받는 것은 어렵다고 할 때, “자기가 뭐라고” 받는 것이 어렵다는 것인지 생각해 볼만 하다. 받는 행위의 연쇄에서는 자기가 사라지고 통과점으로만 존재한다. 받기 어렵다는 것은 자기가 강하게 있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수업에서 “주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주는 것이 어려운 까닭도 사실 위와 마찬가지다. 자기를 비울수록 잘 주게 된다고 한다. 라마단 금식과 같은 의례는 “희사”(보시, 시주)와 연결된다. 예배와 의식의 장소들은 시장과 붙어 있다. 예배 후 시장에서 함께 먹고 마시면서 이야기를 더 많이, 잘 나누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를 비울수록 충족감이 일어나 더 잘 주게 된다는 역설이다.

자기로 채울수록 잘 받지도 못하고, 주지도 못한다. 그럴 것이다. 읽고 쓰기의 어려움도 일정 정도는 아마 그래서일 것 같다.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내 까짓 게 무슨 글인가 하는 자의식이 강하게 올라오기 때문일 때가 많다. 읽은 것이 늘 부족하게 느껴진다면, 더 많이 채워야 자기가 충족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다. 수업에서 이 책의 제목이 왜 ‘선물’인가 하는 말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본래 제목은 “여러 도시의 경이로움과 여행의 신비로움을 열망하는 자들에게 주는 선물,” 2025년 6월 3일, 이기헌 발제문). 저자의 여행은 경건한 순례였고, 경건하다는 것은 계획한 대로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대로 받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순례하는 동안 저자는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며, 순례를 마친 후 남긴 여행기는 선물로서 ‘희사’된 것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해양인류학에서 배우려고 하는 것은 흔들리면서 움직이면서 보는 관점이라고 한다. 해상에서 출렁이는 관점에서 보는 세계는 단단한 육지에 서서 보는 세계와 다르다. 세계가 다가왔다 멀어지고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다. 이동하면서 세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선생님은 당연하고 당연하지 않은 것들 사이에서 좀 자유로워지는 관점일 거라고 하신다. 출렁이는 관점이라는 말을 기억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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