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인류학
[세계종교사상사] 10-11장 후기
『세계종교사상사』수업후기 2025-6-10
제우스 체제의 수립과 영웅시대
『세계종교사상사-석기시대에서부터 엘레우시스의 비의까지』(미르치아 엘리아데 지음, 이용주 옮김, 이학사, 2005)
ㆍ10장 제우스와 그리스 종교
ㆍ11장 올림포스 신들과 영웅들
그리스 종교의 제우스 체제 수립
천신 제우스와 젊은 신들은 크로노스와 티탄들을 정복하고 우주에 신 질서를 확립한다. 원초적 신들의 “과잉된 생식력” 및 “무한한 힘과 폭력”과 싸워 이긴 제우스는 신들의 제왕으로 군림한다. 지배권을 둘러싼 투쟁이 종식되고, 제우스는 일련의 결혼을 거행한다. 제우스의 “다중 결혼”이나 “성적 모험”은 종교적인 것뿐 아니라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 여러 지역에서 숭배되던 여신들이 올림포스 종교 체계 안에 통합되고 제우스가 그들의 지위를 대체한 것으로 풀이된다.
고전기 그리스 종교에서 제우스는 최고신이 된다. 제우스 숭배는 범그리스적인 종교 현상으로 수많은 성소들이 봉헌된다. 그러나 통합된 종교 체계 내에서 잔존물들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 흥미롭다. 제우스가 원초적 신인 밤의 여신에게 우주의 구조와 조직 방법에 자문을 구하고 지시를 받는 장면이 제우스의 전능함에 대한 선언과 함께 등장하는 문헌 등이 그러한 종교 혼합의 사례이다. 한편, 크레타 섬을 배경으로 여신과 젊은 신의 관계, 즉 대여신의 아들이자 연인이라는 원초적 신화 패턴이 제우스와 관련하여 남아 있다. 피신한 아기 제우스, 성년식에서 군무를 추며 도약하는 소년 제우스, 비의에 입문하여 죽음과 재생을 반복하는 청년 제우스 등이다. 종교의 세계에서 신은 여러 개의 존재 양태로 재현될 수 있는 것 같다. 그리스 종교 안에서 제우스는 강력한 지배자부터 청년, 아기의 형태까지 여러 제우스들로 겹쳐 있다.
인간의 기원에 대한 무관심
엘리아데에 의하면, 인류의 기원 문제는 그리스인들의 관심을 그다지 끌지 못했다. 그들이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진 것은 특정한 “민족 집단, 도시, 왕조의 기원”이었다. 여러 가문들은 자기들이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영웅의 후손이라고 생각했다.
인간들의 관심이 신 못지않게 인간 사회에 있었기 때문일까? 인간을 사랑한 신들이 등장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문화영웅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인간에게 불이라는 기술을 가져다 준 것은 인간을 이롭게만 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을 잘못 다루면 인간은 언제든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그가 불을 훔침으로써 (제우스가 보낸 판도라와 함께) 세상에 “염려, 고난, 불행”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런 그가 정말 인류의 편일까? 그러나 최고신에게 반항하는 프로메테우스는 언제나 사람들이 좋아한 숭배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대홍수 후 인간이 신에게 바치는 첫 제사에서 프로메테우스가 교활한 간계를 부려 제우스의 분노를 사는 장면이 나온다. 황소를 태워 바칠 때 살코기를 인간의 몫으로 숨겨준 것이다. 그런데 왜 신들은 채식보다 고기를 더 좋아하게 된 것일까? 신들의 식성은 카인과 아벨의 경우처럼 농경에 대한 거부감의 반영일 수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유럽의 낭만주의 시대에 소환된다. 그는 “전제 정치의 영원한 희생자”(395)로서 숭고한 모습을 회복한다. 낭만주의의 특징은 세계가 나보다 커질 때 벌어지는 세계와 나 사이의 대립이라고 한다. 재능과 뜻이 있는 개인이 좌절하고 고립되는 것이 낭만주의적 인간상이라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맞는 신이 불려나오는 것이 흥미롭다.
또 하나의 “인간의 친구”는 헤르메스 신이다. 그는 인간과 있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 역시 트릭스터다. 트릭스터란 경계 상의 존재로서, 상반된 의미의 상징을 지닌 자라고 한다. 헤르메스는 행운을 선물하는 신이고 완벽한 기술자인데, 도둑의 수호신이기도 하다. 헤르메스는 도둑처럼 어둠을 틈타 색정적 모험을 벌이는 자들을 수호하는 한편 가축과 여행자를 보호하는 길의 신이기도 하다.
신과 사물
헤르메스의 성스러운 물건(“히에라”?)들은 남근 모양의 마술 지팡이(카두케우스), 모습을 감추어주는 모자, 돼지로 변한 오디세우스를 구해준 마법의 약초(몰리), 빨리 걷는 황금 샌들 등이다. 이것은 호메로스 이전의 신들이 지닌 특징들을 간직한 것이라고 한다. 헤르메스라는 이름은 길 한쪽 곁에 쌓여 있는 돌무더기 헤르마이온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한다. 해리 포터 영화에 나오는 헤르미온느도 최고 마법사 헤르메스에서 이름을 딴 것인지 알겠다.
인간을 좋아한 신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엘리아데는 헤르메스의 특징이 “인간 세계와의 관계”라고 말했다. 엘리아데가 인간 세계라고 할 때 그 의미는 “본래 열려 있고, 끊임없이 형성되는 과정에, 말하자면 개선되고 넘어서는 과정에 있는 세계”(421)라는 뜻이다. 인간 세계와 함께 인간 정신도 끊임없이 형성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신성의 특징들이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평가되고 활용되는 것 같다. 오늘날 올림포스 신들은 숭배의 대상이라기 보내는 신화의 주인공들로 생각된다. 그것은 “고전”종교가 위기를 맞고 기독교가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헤르메스의 경우는 어둠을 정복하고 정화(치유)하는 특성으로 인해 기독교 시대에도 활약한 소수의 그리스 신 중 하나라고 한다.
신들의 도구가 흥미롭다. 아폴론은 활을 든 신이다. 엘리아데는 활의 상징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남을 지적하고, 아폴론을 통해서 새로운 가치가 부여되었다고 말한다. 활은 거리를 극복한다. 더 나아가서는 “직접성”으로부터 거리두기를 상징하기도 한다. 인간과 신 사이에 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또한 구체적인 사물에 대한 집착으로부터의 해방, 모든 지적인 집중력이 암시하는 정적과 평정 등의 새로운 정신적 상황을 드러낸다고 한다. 아폴론의 다른 성물은 수금(리라)이다. 무기와 악기라는 상반된 도구 사이의 조화는, 헤라클레이토스에 의하면 대립항의 긴장으로서의 조화라고 한다. 오선민 선생님은 활이 상징하는 거리두기와 겨냥하기는 지식의 이미지를 가진다고 했다. 폭력이 지식으로 대체되는 올림초스 종교의 여러 징표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운명과 “생의 환희”
그리스인이 인간의 덧없는 운명을 의식하게 되었을 때, 비관이 그들을 덮친다. 엘리아데는 인간은 엄밀한 의미에서 신의 피조물이 아니므로(제우스는 창조주가 아니다.) 기도를 통해 신과 “친밀한 관계”를 수립할 수 있으리라 희망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신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고, 신들은 자기들의 생활로 바빠 보인다. 게다가 인간은 죽어야 할 운명으로 정해져 있다. 제우스는 정의의 수호자로 일컬어지는데, 인간들이 자기들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 한은 이유 없는 타격을 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이상은 “탁월함”이고 탁월한자는 “오만”하기 쉽다. 인간은 주어진 유한성과 불안정성의 한계를 가지므로, 남아있는 선택은 현재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것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맥빠지는 이상이 그리스의 창조적 정신 안에서 특이한 변화를 겪게 된다. 그리스의 종교적 사유 속에서 비관적 인간관은 인간 조건에 대한 재평가를 촉진한다. 신들이 인간에게 한계를 주었으므로, 그 한계 내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완전함을 깨닫고 인간 조건의 성스러움을 자각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완전함에 대한 자각은 그리스적인 문화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신과의 거리 유지를 말하는 그리스 종교 안에서 역설적이게도 신들은 완벽한 인체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조건과 싸운 영웅들은 필멸의 인간 조건을 초월하여 “망각의 심연으로부터 이름을 구해내고” “불멸의 명성을 누린다.”(439) 오선민 선생님은 그리스 종교에 이르러 신들은 동물의 머리를 벗고 인간의 얼굴을 하게 된다고 했다. 이제 인간이 이해하고 싶은 것은 인간 자신이 되었다.
*출처: 네이버 블로스 Mythos World(blog.naver.com›utis0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