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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인류학

 

 

[퇴근 후 인류학 후기(2)] 자유로운 인간, 문화의 기원, 사유재산의 등장

작성자
고은경
작성일
2025-06-11 19:33
조회
98

                                                                                                                                                                                                                       퇴근 후 인류학(2) 4장 후기 고은경 250611

                                                                                   

4. 자유로운 인간, 문화의 기원, 사유 재산의 등장

 

  4장을 읽으며 그동안 알고 있었던 인류 사의 발달 과정과 문명의 탄생 시점이 농경의 시작이라는 통념이 깨지고 있다. 책을 자세히 보면 볼수록 더 많은 내용 들이 속속 숨어있다는 것이 발견되어 머리가 더 복잡해진다. 그래서 그동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통념들이 깨져 나간 부분들을 질문을 중심으로 거칠게 정리해보니 발췌 형식의 후기가 되었다. 나의 의견이나 감상을 적을 틈(?)을 아직은 발견하지 못했다. 언젠가는. (^^)



자유로운 인간이란?

 

  자유민은 제각기 자신을 타인들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존재로 여기며, 자신에게 흡족할 때에만 족장에게 순종한다. 모든 누에르족이 자신을 이웃만큼 좋은 사람으로 여긴다는 것은 그들의 모든 동작에서 훤히 보인다. 그들은 지구의 주인인 것처럼 거드름을 피우며 걸어 다니는데, 실제로 자신들이 그렇다고 여긴다. 그들의 사회에는 주인도 하인도 없고, 오직 자신을 신의 가장 고귀한 피조물이라 여기는 평등한 사람들만 있다. 자신이 먼 땅에서 환영받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자신의 공동체를 떠날 수 있는 자유, 한 해 중에 시기에 따라 상이한 사회 구조 사이를 왔다 갔다 할 자유, 별다른 후과 없이 권위에 불복종할 자유, 이 모두는 우리의 먼 선조들에게서 당연한 전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 들은 자신들이 자유 사회에 산다고 믿는다. 미국과 같은 나라의 자유는 대체로 형식적인 자유다. 미국 시민은 원하는 대로 어디든 여행할 권리를 지닌다. 물론 이동과 숙식에 쓸 돈이 있다면 말이다. 상사가 멋대로 내린 지시를 어길 자유도 있다. 물론 그들이 직업을 구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인간은 농업에 손을 대기 오래전부터 수만 년 동안 상이한 삶의 방식을 실험해왔다.

 

  먼 과거 채집인 선조들은 사회적 형식 면에서 훨씬 대담한 실험을 해왔다. 그들은 사회를 해체했다가 재조립하여 전과 다른 규모로 근본적으로 다른 형식과 상이한 가치 체계를 가진 사회를 해마다 다른 방식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인간 존재가 다른 인간 존재 들이 때로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그 증거가 파버티포인트다. 이것은 루이지애나에 있는 기원전 1600년 경 아메리카 선 주민들이 벌인 거대한 토목공사의 흔적이다. 파버티포인트에 온 사람들은 농부가 아니었다. 문자도 쓰지 않았다. 그들은 강 하류의 풍부한 야생 자원을 이용하는 사냥꾼, 어부, 채집인이었다. 루이지애나에서 맥시코, 페루에 이르는 지역까지 기하학적 배치와 설치 간격에 대한 표준이 발견되고 같은 측정 시스템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그런 작업을 한 사람들이 단순한 일상적 채집인은 아니었다고 결론 짓는다.


왜 거의 모두가 농경이 도입되기 전에는 문명이라고 불릴만한 일들이 불가능했던 것처럼 말하고 있는가?


  그것의 진정한 대답은 유럽의 식민지 팽창이 낳은 유산과 관련이 크다. 수많은 선 주민들을 사전 통보 없이 그 조상들이 살던 땅에서 쫓아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원칙이 바로 농경의 근거이다. 채집인들은 자연 상태에 살고 있어 실제로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소유할 법적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어떤 재산권도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 단지 재산이라는 것이 다르게 이해되었을 뿐이다. 실제로 그들은 지극히 복잡하고 수준 높은 소유권 개념을 갖고 있었다.

  1960년대 연구자들은 농경이 놀라운 과학적 진보가 아니고 그들이 농사를 짓지 않은 것은 단순히 농사를 지어야 할 이유가 딱히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밝힌다. 채집인들은 자신들의 여가를 지키기 위해 신석기시대 혁명을 거부했다.


왜 파버티포인트가 전 세계에 더 널리 알려지지 않았는가?

 

  고고학자들의 기본 입장은 이 기간이 특별히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기 전 시기라는 것이었다. 빙하가 물러난 직후의 기간에 수 십 개의 새 사회 들이 자원이 풍부한 해안과 강 하구와 골짜기에서 형성되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모여 상시 유지되는 대형 정착지를 세우고, 완전히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내고, 수학적 원리에 따른 구조물을 건설하고, 지역 특유의 요리법을 만들어 내는 등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사유 재산의 등장은 신성 개념에서 나왔다.


  채집인 그룹에서 평등 주의를 주장하는 규칙은 어떤 성인도 타인에게 직접 명령을 내리면 안 되고, 개인은 재산권을 사적으로 주장하면 안 된다는 것인데 예외가 바로 신성 영역이다. 남자의 성년을 위한 통과의례 숭배는 소유권의 독점적인 주장의 기초가 된다. 토지나 다른 자연 자원의 진짜 소유주는 신이나 혼령이라고 한다. 인간은 단지 점유자, 침탈자, 혹은 관리자 등 다양한 태도를 취했다. 아마조니아 선 주민 사회에서 호수, , 동물 등은 거의 모두 소유주가 있거나 잠재적인 소유가 발견된다. 소유주가 없다는 것은 노출되고 보호 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곰 씨족, 엘크 씨족, 독수리 씨족의 구성원들은 그 동물을 사냥하고 죽이고 잡아먹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동물의 존재를 널리 알리고 그것이 번영하도록 기원하는 제의에 참여해야 한다.

  로마 법에도 소유에 관한 세 가지 기본권이 있다. 사용할 권리, 향유 할 권리, 파괴하거나 손상할 권리다. 처음의 두 권리만 가졌다면 진정한 법적인 소유권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법적 소유권이 그것을 보살피지 않을 권리 심지어는 그것을 파괴할 권리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선사 시대의 장소들괴베클리테페, 파버티포인트, 산나이 마루야마, 스톤헨지이 어떤 형태의 재산권이나 소유권이 존재했는지 정확히 알기란 불가능하다. 단지 협동에 의해 배치된 이런 제의적 극장들이 다른 상황에서라면 자유로웠을 사람들 사이에서 재산권에 대한 배타적 요구가 나왔을 그런 종류의 장소라는 것이다.

  사유 재산에 기원이 있다면 그것은 신성의 발상만큼 오래되었고 인류 그 자체만큼 오래되었을 것이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 언제 일어났느냐가 아니라, 결국 인간사의 그토록 많은 측면 들을 사유 재산이 어떻게 지배하게 되었는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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