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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인류학


 

[세계종교사상사](1) 합평 후기

작성자
coolyule
작성일
2025-06-28 19:20
조회
38

종교인류학 2학기말 에세이 합평 후기 2025-6-28 김유리

 

반성 없는 글쓰기

지금은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지난 주 수요일 종교인류학 세미나에서 2학기말 에세이 합평을 했다. 연말까지 이어질 세미나의 여정의 반을 왔다. 두꺼운 책 읽기가 끝나면 뿌듯하고, 쓰기가 끝나면 복잡한 기분이 밀려온다. 더워서인지 부끄러워서인지 땀이 난다. 합평하는 방법을 새로 배우는 것이 좋았기 때문에, 잊어버리지 않게 후기를 써두려고 한다.

 

합평할 때 중요한 일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글에서 주제문을 찾는다. 찾아낸 주제문이 글에서 타당하게 논증되고 있는지 살펴 본다. 당연히, 주제문이 잘 안 찾아진다. 달님은 저자의 주제에 다가가려는 노력이야말로, 읽으면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평소 읽기는 쉬운데 쓰기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그 생각이 뒤집혔다. 저자가 주장하는 바에 다가갈 생각 없이 문자 해독만 해왔기에 쉬웠던 것이다.

둘째, 소제목이 있어야 한다. 소제목이 있으면 내용을 덩어리 단위로 구분할 수 있다. 그래야 읽는 사람이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쓰는 입장에서도 자기가 쓰면서도 뭘 쓰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를 방지할 수 있다.

셋째, 개념을 정의해야 한다. 문장의 형태로 정의가 들어가야 한다. “〇〇이란…….” 형식의 문장에 나만의 정의문을 적어 넣을 수 있으려면 생각이란 것을 해야 하는 것이다. 조금 전, 달님의 영성과 어머니라는 일본 답사기를 읽어봤는데, 종교와 영성에 대한 근사한 정의가 들어있다. 종교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에 대해 자기만의 답을 만들었다 부쉈다 하면서 글을 쓰는 것이구나 싶다. 이것은 살아가는 태도와 관계된 문제일 것이다. 어려우니까 생각하지 않고, 틀릴지도 모르니까 아예 답을 말하지 말자는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넷째, 결론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 문장은 주장으로 끝나야 한다. 주장으로 끝나지 않는 글은 글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들의 마지막 문장을 다시 열어본다. 많은 경우 확신이 없거나 아예 주장을 생략하기도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두려움 때문일 것 같다. 주장하는 것은 왜 두려울까? 두려운 일은 생략해도 되는 것일까? 흥미로운 일이다.

세미나의 마무리는 학인들의 반성 멘트와 튜터샘의 반성 금지 규칙 제정이었다. 달님은 반성을 하면 글을 썼던 과거 지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다. 달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가고 있는 것이다. 샘은 세미나 중에 늘 지금은어떤 생각이 드냐고 질문하는 습관이 있으신데, 그 까닭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여태까지와 다른 생각으로 가고 있는지를 물은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잘못된 것을 반성하는 것이 아니고, 방금 알게 된 것으로 인해 다르게생각하게 되었는지 물은 것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잘 쓰고 못 쓰고를 판정하는 것보다 항상 가고 있는지로 체크 포인트를 바꿀 때가 되었다. 반성과 해명의 습관은 역사도 길고 중력도 강하다. 이 반성과의 싸움이 열어 줄 여정이 아직 반이나 남았다.

전체 2

  • 2025-06-29 19:14

    반성은 여기의 타인들과 접속하지 못하고 혼자의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네요. 왜 반성을 경계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 그 책의 일부를 ‘종합’하고 결론을 만드는 일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겨우 문자 해독 수준을 못 벗어나서 그럴까요? 결론이 없는 에세이를 작성하고, 반성과 해명의 중력장은 강하지만, ‘하는 중’이고 ‘가는 중’이니까 해보고 가봅니다.
    유리샘의 에세이 후기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 2025-06-30 10:34

      샘 고맙습니다. ^^
      제 경우에, 해독엔 쾌감이 따라서 해독만 하고 싶기도 해요.
      해석은 주관을 세우는 거라, 그런 거 하지 말라는 압박이 있었던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