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인류학
[이븐 바투타 여행기(4)] 후기 _ 흉내, 나를 넘어가는 방법
후기에서 중요한 것은 ‘즉시’ 쓰는 것이라고, 오선민 선생님께 배웠다. 그러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이번주는 세미나가 아득하게 먼일처럼 느껴지는 만큼 와서야 후기 쓰기를 놓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음주 분량을 읽어야 하는데, 지금 이것까지 읽었다가는 정말로 후기 쓰기는 더 멀어질 것이다. 책을 먼저 읽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후기를 먼저 써야 할 것 같기도 해서, 지금 나는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결코, 영원히 그럴 리 없는데) 잘 써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글쓰기를 미루게 하고, 마음을 더 조급하게 만드는 것 같다. 쓴다는 것은 나를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라, 번뇌에 사로잡히고 타인의 인정을 바라기도 하고 감정이 오락가락한다.
그런점에서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는 자신의 감정에 대한 묘사는 거의 없고, 가치 평가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에게 자신의 감정보다 중요한 것은 순례에서 경험한 진귀한 기억들을 잘 엮어내는 것이다. 안절부절못할 틈 없이, 알라의 종(servants)인 인류 전체를 독자로 상정하며 씩씩하게 글을 써 나갔을 것이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깊은 정성을 느낀다. 예를 들면 여행으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직업이나 이름을 대부분 기록한 것이다. 현인이나 스승으로 여기는 사람들과 별다른 에피소드가 없고, 과거에 훌륭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름을 남긴다. 나는 그 부분에 대해 이븐 바투타의 기억력이 좋다거나 똑똑하다는 설명으로는 조금 부족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거의 천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서술에서 보여주는 정성은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태도, 스승의 가르침에 대한 존경의 마음, 자신을 도운 사람과 신앙에 대한 의리(예의?신뢰?)에서 느낄 수 있다. ‘여행기를 쓰고 있는 바투타’는 독자 뿐만 아니라, 가르침을 준 존재라면 자신이 만난 그 누구도 놓치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렇게도 공포스럽게 했던 술탄 무함마드 투글루끄를 여행기 한 챕터를 할애해서 썼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이븐 바투타에게 가르침은 내 생각처럼 진리 같은 말, 훌륭하다는 책에서만 나오는 게 아닐 수도 있다.
오선민 선생님은 이번 시간에 여행기 쓰기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이븐 바투타처럼 글 쓰고 싶다면 그 사람을 흉내 내보라고 하셨다. 그게 나를 넘어가는 방법이라고. 나는 막막하게 느껴져서 그 방법에 대해 질문했지만 선생님 말씀을 들어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이 부분에서 막혔던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어떤 이븐 바투타를 흉내 내야 할지 몰라서였다. 글을 쓰는 바투타인지, 순례하는 바투타인지 그것부터 헷갈렸던 것 같다. 글을 쓰는 바투타라면 독자를 생각하면서 글쓰기를 해보면 될까? 정말로 잘 모르겠다. 원숭이 흉내, 코끼리 흉내는 가능한데, 이븐 바투타 흉내라…. 다음 시간에 선생님께 다시 질문해야겠다. (그런데 왠지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이 문제를 얼른 풀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