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위젯 (2)

[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3장 대분할(9/10)

작성자
오월연두
작성일
2025-06-29 21:37
조회
19

거북이 잉글리쉬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30분 ~ 9시 30)의 번역입니다오선민 선생님이종은 선생님이유진 선생님, 최경열 선생님, 최옥현 선생님윤연주가 함께 번역했습니다. 

□ 책의 목차

Ⅰ. 눈속임하는 자연

 1. 연속성의 구성

 2. 야생과 길들여진 것   유목의 공간들 / 정원과 숲 / 밭과 논 / 들과 숲 / 목동들과 사냥꾼들 / 로마의 풍경, 허시니아의 숲, 낭만적 자연

 3. 대분할   풍경의 자율성 / 퓌시스의 자율성 / 창조의 자율성자연의 자율성문화의 자율성 / 이원론의 자율성 / 세계의 자율성 

Ⅱ. 관습의 구조

 4. 관습의 스키마   구조와 관계 / 익숙한 것을 이해하기 / 스키마티즘 / 차이화, 안정화, 유추

 5. 자기와의 관계와 타인과의 관계  식별의 양식과 관계의 양식 / 타자는 나


이러한 민족중심성은 우리의 고유한 용어를 사용해서 친족 관계나 기술적 체계를 연구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게 만들지는 않지만, 그것들의 전제가 우리들의 것과는 다른 존재론과 우주론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엄청난 장애물이 되고 있다. 그것의 근본적인 이분법을 고려한다면, 인류학은 비근대인이 성취할 수 없었던 것처럼 보이는 실재에 대한 이러한 정도의 객관화를 어설픈 예표나, 우리 스스로가 완성한 객관화에 대해 다소 설득력이 있는 반향, 근거 없는 추론과 어설픈 논리, 그리고 이성의 유년기와 미신에 대한 현대적 근원을 증언하는 표현적 투영, 간단하게 말해 우리에게는, 그것이 분리된 견고한 덩어리와 나란히 놓일 때만 형태와 의미를 갖는 긍정적 지식의 잔류물로서 다루게 될 수밖에 없다. 프레이저 이후로 자연에 대한 지식의 이런 잔재는 종교 인류학의 고기와 음료수(밥과 술)가 되어 왔다. 그리고 여전히 유효한 초자연적이라는 모욕적인 수식어만큼 그것의 관심 대상인 현상의 결과적 지위를 잘 나타내는 것도 없다. 왜냐하면 설령 주의를 기울인다 하더라도, 많은 이들에게 초자연적인 것이란 그들이 설명하기가 불가능했던 자연의 일부이며, 초자연적 인과성의 직관력이 그 직관을 바로잡을 수 있는 자연적 인과성 개념을 예견한다는 환상을 피하기는 어렵다. 결국, ‘마법적 사고가 무지개, 홍수, 또는 질병을 의도성이 부과된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의 결과로 해석할 때, 그것은 그것의 참된 원인을 식별하지 못한 채 그 효과에 의해서는 구별할 수 있는 보편적 결정론에 배팅한다고 추측하는 것은 매력적인 환상이다. 그러나 뒤르켐Durkheim이 보았듯이, 그 반대가 보다 타당하다. 어떤 현상을 초자연적이라고 부르기 위해서 우리는 이미 사물의 자연적 질서가 존재한다는 감각을 가져야만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우주의 현상은 법칙이라고 불리는 어떤 필연적 관계를 따라 서로 연결된 것이라는 감각 말이다. 이 법칙이 성립되면, 이 법칙을 위반하는 어떤 것도 필연적으로 자연을 초월하는 그래서 이성을 초월하는 것으로 보인다.” 뒤르켐이 강조했듯이, 이러한 해명은 인류 역사의 후반기에만 가능하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이 근대인들에 의해 수행된 실증 과학의 발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초자연주의는 불완전한 결정론을 가리키기는커녕, 그것의 신화적 기원에 안온한 눈길을 던지는 자연주의의 발명품이고, 물리적 세계의 규칙성에 주의를 기울인다고 말해지는 마음에 의해 생성된, 그렇지만 정확한 과학의 도움 없이는 아직은 그것들의 정확한 개념을 형상화할 수 없는 모든 과도한 의미들을 버릴 수 있는 일종의 상상적 수용체이다. 초자연은 불완전한 결정론을 나타내는 것과는 거리가 먼 자연주의의 발명품으로, 물리적 세계의 규칙성에 주의를 기울인다고 말하지만 정확한 과학의 도움 없이는 아직 정확한 아이디어를 형성할 수 없는 마음이 만들어내는 모든 과도한 의미를 버릴 수 있는 일종의 상상의 용기인 신화적 기원을 안주하는 시선을 던진다.

자연주의자의 체를 통해 정당한 지식과 상징적 잔여물을 전달시키려는 경향은 민족ethno’이라는 접두사로 시작하는 공인된 과학의 이름을 가진 전문화된 연구 분야를 골라내는 분류학적 광기에 의해 설명된다. 처음에는 민족 식물학과 민족 동물학 두 분야였으나, 지금은 민족 의학, 민족 정신의학, 민족 생태학, 민족 약리학, 민족 천문학, 민족 곤충학 그리고 많은 분야들도 합류했다. 이 절차는 토착 지식의 어떤 영역을 근대 과학 분과와 호환되도록 그것들을 만듦으로써 구체화하게 하는데, 왜냐하면 각 영역의 경계들은 해당 분과들이 그것들 고유의 특정한 대상들로서 세상의 구조로부터 점진적으로 골라낸 실체와 현상의 분류에 따라 선험적으로 구축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민족과학이 자체 저널, 의회, 교수 의장 그리고 논쟁을 통해 제도적 자율성을 획득하게 되면, 현실의 객관화가 모든 곳에서 비슷한 자연적 경향에 따라 조직된다는 환상에서 벗어나기가 더욱더 어려워지며, 그 진행은 마술적 사고의 큰 블록에 의해 여기저기에서 막혀 있는데, 이는 물리적 세계의 규칙성에 대한 여전히 불완전한 인식과 (그것에 대해) 더욱 강력한 통제력을 행사하려는 야망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이 시점에, 인류학적 작업의 분배는 불가피해진다. 민족과학 전문가들은 프로토타입(원형)이 되는 학문적 논의의 대략적인 변형들을 구성하는 민속분류와 지식을 밝히는 일을 담당하고, 한편 문화의 전문가들은 한 민족에게 그들의 고유한 흉내 낼 수 없는 스타일을 부여하는 귀중한 표면 거품인 상징, 신념(믿음) 그리고 의례에 대한 연구를 전유하였다.

그러나 모든 개인이 자신의 환경과 끊임없이 엮어내는 여러 가지 얽히고설킨 연결 고리는 적어도 집단 구성원들이 자신의 행동에 부여하는 의미를 어느 정도 인정한다면 실용적 지식과 상징적 표상 사이의 그러한 틀에 박힌 구분을 거의 용납하지 않는다. 아추아르족 사냥꾼이 자신이 의도한 사냥감이 눈에 띄는 거리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현혹시키는 약속으로 동물을 잡고 동물의 불신을 달래기 위해 고안된 애원, 아넨트anent를 부를 때, 그는 갑자기 이성에서 비이성으로, 도구화된 지식에서 환상으로 전환하는 것일까? 오랫동안 동물을 추적하면서 동물에 대한 모든 생태학적 전문 지식, 환경에 대한 깊은 지식, 추적자의 기술, 즉 거의 본능에 가깝게 수많은 단서를 연결하고 먹이를 찾을 수 있는 실마리를 만들 수 있었던 모든 자질을 동원했기에 그는 완전히 다른 영역으로 옮겨갔을까? 요컨대, 마법의 노래는 노하우, 효과적인 지식, 확인된 자동 반사 신경의 조합으로 형성된 일련의 작동에 불필요하게 도입된 환영의 표상으로 해석해야 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내가 동물을 나 자신과 유사한 자질이 부여된 인격체로 간주한다면, 내가 그것에게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은 주의를 기울이는 의도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나 자신에게) 그것을 도축하는 기술적 수단으로 제공하는 것만큼이나 공손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비정상적이 아니다. 이 두 태도는 내가 그것(동물)과 수립한 관계 조직의 양쪽 부분이며 각각은 그것에 향한 나의 행동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것은 사냥 마술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특정한 믿음으로 사냥 마술을 설명할 수 있는 지성주의자의 생각, 즉 그런 행동이 운영 효율성과 함께 투자되는 세계 이론으로 되돌아가게 할까? 전혀 아니다. 어떤 아추아르도 아넨트가 그 자체로 자신의 먹이를 쫓아내고 확실히 죽이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아넨트는 특정 동물의 존재론적 지위를 확립하는 요소 중 하나일 뿐이며 그것의 관습적인 행동, 서식지 그리고 어떤 특정 순간에 사냥꾼의 일대기와 같은 종의 다른 구성원들과의 과거 만남을 가능하게 만들어 왔던 상황들에 관하여 알고 있는 모든 것과 관련된 다른 동등하게 연관된 기준의 전체 집합과 결합된다. 마술 주문은 공연적이기 때문에 또는 노래하는 사람의 눈에 그것이 제안하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거나 가능하게 보이게 만들기 때문에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한 특별한 인간과 한 특별한 동물 사이의 특정한 순간에 성립되는 관계를 특성화하고 따라서 효과적으로 만드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작동한다. 즉 이것는 사냥꾼과 동물 종들의 다른 구성원 사이의 연결을 상기시키며, 친족의 언어를 사용하여 그러한 연결을 묘사하고, 현존하는 두 집단 사이의 연대의 유대를 강조한다. , 이것은 각 집단의 속성으로부터 그들의 대결에 더 큰 실존적 현실을 부여할 그들을 골라낸다. 그러므로 사냥하는 아넨트는 기술적인 과정을 수반하는 상징적인 찌꺼기로서 고립될 수 없다. 유용한 결과를 얻는 것은 그것의 주된 목적이 아니고, 그것은 첨가제도 완화제도 아니며, 그것이 하는 것은 이미 사실상 존재하는 관계의 체계를 설립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고, 그것은 각각의 입장을 모호하지 않게 상기시키는 것을 전달함으로써 인간과 동물의 사이의 우연한 상호작용에 의미를 부여한다. 아마존에서, 우리들 사이에서와 마찬가지로, 유기체는 그것을 식별하고, 죽이고, 먹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물질적, 인지적 속성의 힘뿐만 아니라 그것에 귀속되고 그것에 주어진 본성에 적합한 특정한 유형의 행동과 매개를 요구하는 속성의 전체 집합을 고려함으로써 환경에 중요한 실체로서 확립된다. 채식주의자들이 송아지고기를 먹는 것을 거부하지만 시금치는 먹을 때 그리고 국제 조직들이 돌고래 포획을 금지하지만 청어의 포획은 금지하지 않을 때 정말로 아추아르 사냥꾼과 매우 다를까? 우리가 다른 종을 대하는 방식의 상이함은 우리가 살아있는 세계의 이런저런 부분과 형성해 왔다고 생각하는 관계의 유형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전자를 명백한 미신으로 그리고 후자를 실증 지식의 체계와 비교적 합리적으로 연결된 은밀한 미신으로 간주하기보다는 세상에서 우리 행동의 상징적차원을 단순히 사물의 전체 연결망에서 우리가 나중에 보게 될 것처럼 그것들이 보이는 것보다 덜 무작위적인 특정한 진행 방식을 구별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전체 0

전체 52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52
[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3장 대분할(9/10)
오월연두 | 2025.06.29 | 추천 0 | 조회 19
오월연두 2025.06.29 0 19
51
[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3장 대분할(8/10)
오월연두 | 2025.06.22 | 추천 0 | 조회 29
오월연두 2025.06.22 0 29
50
[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3장 대분할(7/10)
오월연두 | 2025.06.15 | 추천 0 | 조회 28
오월연두 2025.06.15 0 28
49
[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3장 대분할(6/10)
오월연두 | 2025.06.04 | 추천 0 | 조회 27
오월연두 2025.06.04 0 27
48
[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3장 대분할(5/10)
오월연두 | 2025.05.25 | 추천 0 | 조회 34
오월연두 2025.05.25 0 34
47
[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3장 대분할(4/10)
오월연두 | 2025.05.18 | 추천 0 | 조회 41
오월연두 2025.05.18 0 41
46
[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3장 대분할(3/10)
오월연두 | 2025.05.11 | 추천 0 | 조회 48
오월연두 2025.05.11 0 48
45
[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3장 대분할(2/10) (1)
오월연두 | 2025.05.04 | 추천 0 | 조회 66
오월연두 2025.05.04 0 66
44
[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3장 대분할(1/10)
오월연두 | 2025.04.27 | 추천 0 | 조회 48
오월연두 2025.04.27 0 48
43
[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2장 야생과 길들여진 것(17/17)
오월연두 | 2025.04.20 | 추천 0 | 조회 54
오월연두 2025.04.20 0 54
42
[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2장 야생과 길들여진 것(16/17)
오월연두 | 2025.04.13 | 추천 0 | 조회 51
오월연두 2025.04.13 0 51
41
[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2장 야생과 길들여진 것(15/17)
오월연두 | 2025.04.06 | 추천 0 | 조회 51
오월연두 2025.04.06 0 51
40
[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2장 야생과 길들여진 것(14/17)
오월연두 | 2025.03.30 | 추천 0 | 조회 42
오월연두 2025.03.30 0 42
39
[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2장 야생과 길들여진 것(13/17)
오월연두 | 2025.03.23 | 추천 0 | 조회 49
오월연두 2025.03.23 0 49
38
[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2장 야생과 길들여진 것(12/17)
오월연두 | 2025.03.16 | 추천 0 | 조회 45
오월연두 2025.03.16 0 45
37
[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2장 야생과 길들여진 것(11/17)
오월연두 | 2025.03.09 | 추천 0 | 조회 41
오월연두 2025.03.09 0 41
36
[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2장 야생과 길들여진 것(10/17)
오월연두 | 2025.03.02 | 추천 0 | 조회 65
오월연두 2025.03.02 0 65
35
[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2장 야생과 길들여진 것(9/17)
오월연두 | 2025.02.23 | 추천 0 | 조회 69
오월연두 2025.02.23 0 69
34
[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2장 야생과 길들여진 것(8/17)
오월연두 | 2025.02.17 | 추천 0 | 조회 59
오월연두 2025.02.17 0 59
33
[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2장 야생과 길들여진 것(7/17)
오월연두 | 2025.02.09 | 추천 0 | 조회 80
오월연두 2025.02.09 0 80
32
[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2장 야생과 길들여진 것(6/17)
오월연두 | 2025.02.02 | 추천 0 | 조회 80
오월연두 2025.02.02 0 80
31
[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2장 야생과 길들여진 것(5/17)
오월연두 | 2025.01.26 | 추천 0 | 조회 69
오월연두 2025.01.26 0 69
30
[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2장 야생과 길들여진 것(4/17)
오월연두 | 2025.01.19 | 추천 1 | 조회 77
오월연두 2025.01.19 1 77
29
[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2장 야생과 길들여진 것(3/17)
오월연두 | 2025.01.12 | 추천 0 | 조회 82
오월연두 2025.01.12 0 82
28
[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2장 야생과 길들여진 것(2/17)
오월연두 | 2025.01.05 | 추천 0 | 조회 118
오월연두 2025.01.05 0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