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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 인류학


[이븐 바투타 여행기(5)] 후기 _ 나는 신의 축복

작성자
기헌
작성일
2025-07-02 00:59
조회
20

  이슬람교는 신앙의 5대 의무(기둥) 중 하나로 자카트(Zakat)를 행한다.  이것은 가난한 자, 빚진 자, 공동체 등과 자신의 재산을 나누며 재산의 정화, 공동체 안에서 부의 순환 및 불평등 완화를 목적으로 한다. 이들의 희사는 공동체 내부에서만 행해지지 않는다. 알라가 보냈다고 여겨지는 외부인, 순례객을 환대하는 것도 신앙 실천의 일부다.

  이븐 바투타가 도착하는 도시마다, 그곳의 샤이흐나 시장 등 지역의 권위자들은 순례객에게 옷을 주고, 음식을 주고, 쉴 곳을 마련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돈, 가축, 하인 등 선물도 빼놓지 않는다. 아무리 신앙이라지만 이븐 바투타 여행기를 읽는 첫 시간부터 지금까지, 나는 이방인에 대한 아낌없는 환대가 좀처럼 어색하게 느껴졌다. 순례자들에게 받는 것도 없는데 이렇게나 많이 준다고?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는 사람보다 더 이상해 보이는 사람은, ‘받는 순례자 이븐 바투타이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이번 시간은 더욱.

  1325년 탕헤르를 나서며 순례를 시작한 이븐 바투타는 1333년 인도에 처음 들어섰고, 1342년 중국으로 파견되어 떠나기 전까지 햇수로 9년을 인도에서 머물렀다. 인도의 술탄 무함마드 빈 투글루끄는 인도에 방문한 이븐 바투타에게 극진한 환영과 함께 월급, 관직, 하인, 영토(세금 수입) 등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지원했다. 정작 이븐 바투타는 사람들을 동원해 술탄에게 자신의 빚을 어필하며 갚아주기를 바란다. 결국 술탄은 그의 빚을 갚아준다. 그의 받음의 장면은 매우 당당하다. 술탄의 명을 받고 중국으로 파견되어, 배를 타야 할 때도 그랬다. 왕의 명령을 받은 사신이라지만 단독 선실’, ‘보다 넓은 선박등 요구 사항도 디테일하다. 지바툴 마할 제도, 마할섬은 재상 외에 누구도 말을 타고 다니지 못하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이븐 바투타는 발로 걸어 다닐 수 없다며 당당히 말을 요구한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 덧붙인다. 내 눈에 이븐 바투타의 받음이 마냥 뻔뻔해 보이는 것만은 아니다. 빚을 진 것이 사치라기보다는 집을 짓는 과정에서 채용한 사람들 460명과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한 것이었다. 백성들은 그의 관대함을 높이 샀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는 그토록 당당하게 받을 수 있었을까?

  나는 이에 대한 답을 이슬람교의 바라카(Baraka)’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바라카는 아랍어로 축복을 뜻하는 단어로 사물, 사람 등에 성스러운 힘이 깃든 상태를 의미한다. 바라카에 대한 책 설명은 다음과 같다.

 

 *바라카란 아랍어 단어의 어의는 축복’ ‘길상이나, 신학에서는 알라가 예언자나 성인들에게 부여한 초인간적인 능력을 말한다. 특히 이슬람신비주의(수피즘)에서는 이러한 능력은 생존시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무함마드 같은 성인들의 묘비나 유물, 유체(遺體)에 이러한 능력, 즉 바라카가 있으며, 따라서 그러한 능력과의 접촉을 통해 신비의 기적적인 효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이븐 바투타 여행기, 86, 각주180)

 

  무슬림들은 거룩한 바라카(신의 축복)을 가까이 할수록 자신의 삶이 정화되고, 영적 성장이 된다고 믿었을 것이다. 이븐 바투타가 순례하는 도시를 소개할 때  샤이흐, 성인, 현자에 대한 서술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것도 바라카에 대한 열망이었고, 받음에 있어서 당당했던 것도 스스로를 바라카로 여겼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바라카라면 주고받음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아마 이븐 바투타의 당당함이 지금처럼 이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였을 것 같다. 내가 축복이요, 신성한 에너지라면 나를 참되게 하는 자, 내 길을 여는 자가 그 거룩함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순례자들에게 아낌없는 희사를 행했던 도시의 관리들도 이제야 이해가 된다. 그들의 친절이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무조건적인 행위가 아니었고, 영적 충만함(기쁨?)을 보상으로 얻었던 것이다. 

   이번 시간에 읽은 부분에서 또 하나 흥미로웠던 지점은 신비롭고 기이한 에피소드들이었는데, 예를 들어 공중 부양을 하는 사람, 사자로 변신하는 마법사, 오래전 예언된 인물과 만남 같은 것들이다. 이 또한 바라카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역자 서문에 언급되어 있다검색한 인터넷 정보도 나중을 위해 담아둔다

 

*여행기 전편에 걸쳐 주로 전해들은 고사나 전설, 영험(靈驗)이나 기적에 관한 이야기가 계기에 따라 간헐적으로 삽입되어 있다. [중략] 특히 바라카’(al-barakah, 길상吉祥·영복營福)에 의한 영험이나 기적에 대한 시사는 여행기 저변에 적이 깔려 있어 흡사 기복신앙을 연상케 할 때가 있다. 이것은 당시 성행한 수피즘 기복관(祈福觀)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같은 책, 9)

  

*바라카는 아랍인의 주력관념(呪力觀念)이다. 이슬람 이전에는 이 비인격적이고 불가시적(不可視的)이며 방산적(放散的) 에네르기가 신성한 사물로부터 발해져서 번영·번식을 가져다준다는 신앙이 있었다. 이러한 힘은 목장, 성스러운 장소, 성스러운 나무, 성스러운 돌, 성스러운 샘이나 토템 동물에 유숙한다고 생각되었다.

이슬람교는 신성관을 알라의 지배 밑에 합리화시키며 바라카를 지상과의 관계로부터 단절시키고 이를 하늘과 결부시켰다. 이것은 알라가 주는 축복의 힘이 되어 선택받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은혜라고 하였다. 이것은 꾸란에서 신은 근원을 발생케 하는 은혜를 주는 힘이며, 물질의 세계에 풍요와 번영과 정신의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슬람 교도는 바라카를 발하는 것으로서 꾸란의 글, 예언자, 성자의 인격을 들고, 특히 무함마드와 그 자손은 바라카의 힘을 갖는 것으로 되어 있다. 시아파에서는 이맘과 그 자손에 바라카를 인정하고 있다. 일반 신도는 이들 성자(聖者)의 묘에 접하면 바라카를 전해받을 수 있으며 힘을 얻게 된다고 하였다. 이슬람의 민간신앙은 이 바라카 관념이 기초로 되어 있다.(위키백과, 바라카)

 

*바라카는 중동 지역 사람들과 이슬람 추종자들이 사용하는 축복을 뜻하는 아랍어 용어입니다. 바라카는 신에게서 나오는 특정한 힘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악의 세력에 대항하는 동시에 번영이나 행운을 가져다주는 보다 비인격적인 힘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꾸란에 따르면 바라카는 신이 부여하기도 하고 거두기도 하는 힘으로, 유대교의 바라카와 비슷한 개념입니다. 사람들이 신을 생각하고 선한 일을 하면 신의 축복과 번영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받지 못하며, 꾸란에서 아브라함과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예언자들도 신의 대리인으로서 축복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일종의 전기처럼, 그것은 주로 꾸란과 중개자 선지자와 성인을 통해 신으로부터 그의 피조물에게 발산되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9세기에 이슬람이 통치자, 군인, 울라마, 행정가, 평민, 노예 등 정치적, 종교적 권력과 위계질서를 갖춘 완전히 제도화된 종교가 되면서 바라카 자체도 초인적인 존재들의 위계를 통해 신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신성한 힘으로 여겨졌습니다. 오늘날에도 일반인은 꾸란을 듣거나 보기만 해도 바라카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성자나 성자의 유물을 만지거나 카아바, 성지 또는 이와 유사한 성지를 방문한 사람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바라카를 얻는 것은 사람들이 성지 순례를 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비인격적인 힘인 바라카는 특정 돌, 나무, 천연 샘물 또는 제조된 물건에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이슬람 이전 문화권, 베두인족, 시골 지역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이집트 농민들은 여전히 고대 이집트인들의 유물에 이러한 힘이 있다고 믿으며 피라미드와 신전에서 조각을 가져와 부적에 넣거나 다른 물질과 섞어 물약으로 만들어 질병을 치료합니다. 축복의 개념은 중동의 무슬림과 비무슬림의 일상적인 언어에서도 확산되어 아랍어 바라카에서 파생된 단어를 사용하여 서로에게 행복한 휴가를 기원하고 결혼이나 다른 인생의 성공을 축하하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https://www.infomorocco.net/4814846972528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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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바라카(1992, 론 프리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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