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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인류학

 

 

[모든 것의 새벽(5)] 삶의 가용 반경을 넓게

작성자
coolyule
작성일
2025-07-02 20:13
조회
22

『모든 것의 새벽』 7장 자유의 생태학 후기 2025-7-2 김유리

 

자유의 생태학

: 삶의 가용 반경을 넓-게

 

 

“퇴근 후 인류학” 은 매주 한 시간 동안 압축적으로 진행된다. 죽은 데이비드 그레이버와 살아 있는 데이비드 웬그로우의 『모든 것의 새벽』을 한 장씩 강독한다. 6월 마지막 주 강독은 제7장 “자유의 생태학”이었다. 인류사에 농경이 들어온 사건을 자유와 생태학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 야심차고 매력적인 장이다.

 

■수업

 

도입

한반도의 초기 곡물 농경의 흔적이 발견되는 소로리 유적(작은 땅뙈기인 듯함)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었다. 볍씨 숯이 석회질의 충청도 땅에 보존 된 것을 발굴했다고 한다. 충북대학교와 연세대학교 박물관에서도 관련 유물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나도 가봐야겠다. 인샬라!

 

본론

읽은 소감을 짧게 나눈 뒤, 주요 개념과 주장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먼저 이 장의 제목 “자유의 생태학”은 “생태 제국주의”의 반대말이면서도 순서를 바꾸어 비틀어놓은 것에 주목할 수 있다. 생태 제국주의는 소수의 재배종이 확산된 현상을 가리킨다, 밀로 세상을 덮어 아침 점심 저녁을 밀 음식으로 먹는 삶에서 알아차리게 된다. 이에 비해 자유의 생태학은 꼭 밀일 필요는 없는 상태를 말한다. 궁금하니까 밀도 먹어 보겠지만, 다른 것들도 먹는다. 자유롭게 “했다 말았다(in-and-out)” 한다.

자유라는 말의 용법이 문제적이다. “〇〇으로부터의 자유”라는 구문에 붙들려 있으면 그 〇〇이라는 척도에 구속된다. 다른 자유를 생각해보자. ‘그 무엇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그 무엇에도 매달리지 않는’ 자유다. 초기 농경은 농경에 연연하지 않는 농경이었다. 초기 농경에 대한 고고학의 증거들은, 신석기 “농업 혁명”을 통해 인류 사회가 진화했다는 진보의 시간관을 부정한다.

자유의 생태학이라는 말은 사회 생태학자 머레이 북친의 개념이다. 생태적 메커니즘은 (1)복잡하고 (2)복수의 관계를 맺고 (3)결정적으로 상보적이다. 자유롭다는 것은 더 복잡하고 더 광대한 네트워크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이 네트워크 속에서 맺고 푸는 관계들은 상보적이다. 상보적이라는 것은 이원론에 기초하는 개념이다. 두 개로 나누되, 두 개가 서로를 보완하는 더 큰 합을 이루는 것을 상보적이라고 한다. 요컨대 삶의 가용 반경이 넓어진다(오선민 선생님).

농경이 처음으로 가능해진 환경 조건은 빙하시대 이후다. 하지만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채집인들은 다양한 토지 관리 기술을 활용하여 “원하는” 식물 종의 성장 촉진하여 충분히 넓은 식량 네트워크를 보유하는 등의 다채로운 “생태적”노력을 기울였다. 이에 비해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황토 평원의 초기 신석기 농부들은 거의 모든 것이 단 하나의 식량 그물망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가 리스크 관리에 처참하게 실패한 사례로 기록된다(383).

 

나오며

초기 농경은 수렵 채집의 빈틈을 채우는 것이었다. 흔히는 야생 자원이 희박한 지역에서 고안해낸 삶의 방식이었다. 같은 시기에 풍족한 환경에서는 야생 자원에 대부분 의존하는 인구 집단이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다음 장에서는 그들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그들은 그럼 무엇을 했나? 그들은 아름다운 호변, 강변, 해안 지역에서 도시 생활을 실험했다. 생태적 자유민들의 도시인 것 같다. 개봉박두~!

 

■제목에 대해서 : “고고학이 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355)

 

-지난 주에 고고학이 모든 것을 바꾼 내용:

중동 지역 초기 농경 사회의 중요한 특징은 전쟁일 것이라 추정했으나 그런 증거는 안 나왔다. “반면 교역과 전문적 공예의 번창에 대한, 그리고 예술과 제의에서 여성 인형의 중요성에 대한 증거는 풍부하다.”(351~52)

 

-이번 주에 고고학이 모든 것을 바꾼 내용 :

“최초의 농부들은… 농사지을 마음이 별로 없는 농부들이었다.”(352)

 

모든 것을 새로 바꾸어버리는 고고학적 증거 능력과 함의를 “모든 것의 새벽”이라는 제목으로 표현한다. 기원 서사의 거부로 인해 새로 열리는 모든 가능성들이다.

 

■본문 맛보기

 

초기 농경 사회의 운명이 어떤 방식으로 흔히 ‘생태적 제국주의’보다는 사회생태학자 머리 북친Murray Bookchin이 말한 ‘자유의 생태학ecology of freedom’이라는 것에 달려 있는가……. 이 말은 아주 구체적인 어떤 것을 의미한다. 농부가 ‘실존적으로 재배에 개입하는’ 사람이라면 자유의 생태학(간단하게 말하자면 ‘취미 농사play farming’)은 정확하게 그와 반대인 여건을 말한다. 자유의 생태학은 인류 사회가 농사를 짓기도 하고 짓지 않기도 하며 (자유로이) 움직이고자 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전업 농부가 아니면서도 농사를 짓는 것, 농업의 엄격한 보급 문제에 너무 많이 얽매이지 않고도 작물과 동물을 기르는 것, 그리고 생사를 걸고 재배해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방지하기에 충분히 넓은 식량 네트워크를 보유하는 것 등이다. 씨앗 한 알을 심고 그것을 최후의 배수진처럼 여기는 세계사의 관례적 서사에서 배제되곤 한 것이 바로 이런 종류의 생태적 유연성이다.

농경의 안팎으로 이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 혹은 그 문턱에서 머무는 것은 결국 알고 보면 인간 종이 과거의 오랜 기간 동안 성공적으로 해온 일이었다. 그런 유동적인 생태적 설정–텃밭 경작, 호수나 오아시스 주변 범람 퇴수 농법, 소규모의 지형 관리(가령 불 지르기, 가지치기, 계단식 밭 조성)와 반야생 상태에서 동물의 길들임과 사육과 광범위한 수렵, 어로, 채집 활동의 혼합–은 과거 세계 여러 지역 인간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흔히 이런 활동은 수천 년 동안 유지되어왔고, 많은 수의 인구를 먹여 살리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그것도 식물과 동물을 처음 길들인 첫 인간 집단의 생존에서 결정적 요소였을지도 모른다. 생물 다양성biodiversity–바이오파워bio-power가 아니라–은 신석기시대 식량 생산 증가의 초기 열쇠였다.(365~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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