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나의 인류학 만물 사전

산지(mountain)

작성자
5dalnim
작성일
2025-08-25 23:20
조회
51

산지  


 

바다를 인류학적으로 개념화할 수도 있다면, 다른 지형도 생각의 도구로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페르낭 브로델은 지중해에서 지중해의 범위를 이베리아 반도, 이탈리아 반도, 소아시아 반도, 발칸 반도, 북아프리카 반도에 걸쳐 있는 산지에서 시작한다


브로델에게 산지란 곧 자유를 의미한다. 지리적 개념으로서의 은 주변 지형보다 높은 곳을 뜻하는데 돌출된 정상부가 있어야 한다. 평지와 대비되는 개념이다(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178). 일단 지리적으로 보면 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높이이다. 그래서 종종, 평지보다 얼마나 더 높은가에 따라 산의 가치가 결정되기도 한다(높이에 대한 관심은 근대적인 것이다(마치다 소호,신들의 산, 일본 산의 인문학, 23)). 하지만 브로델에게 중요한 것은 높이가 아니고 고도의 차이이다. 산지란 고도가 조금만 달라져도 전혀 다른 식생으로 인간을 초대하기에, 그 각각의 차이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산지는 높이마다 다른 생활 방식을 요구한다. 그에 맞추어 사람들은 매우 개별적으로 가족이나 집단을 꾸리게 된다. 브로델은 고도에 따른 이 생활의 차이에 주목한다. 그러므로 하나의 산, 하나의 산맥은 엄청난 식생 차이들의 집합처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양성은 온갖 사람들을 산으로 이끈다. 온갖때문에 결과적으로 어떤 중심 권력도 산지를 다 장악할 수 없다.


평면 지도를 2차원적으로만 보면 고도의 차이를 알아차릴 수 없다. 또 국경과 같은 방식으로 공간을 구획하는 근대적 세계지도관에 익숙하다 보니 그어진 선 안의 전부가 같은 민족 구성, 같은 언어, 같은 생활습관, 같은 정서를 공유하는 것만 같다. 그런데 브로델은 고도 차이라는 점 때문에 전혀, 그렇게는 될 수가 없다고 본다. 그래서 브로델은 일차적으로 산지를 다양성으로 정의하고, 그 다양성 때문에 파생된 차이지체를 강조한다. 어떤 권력도 산 전체를 장악할 수 없고, 장악하려고 시도하는 순간마다 다양성이 갖는 힘의 저항을 받기 때문에 권력이 느리게 어설프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산지는 온갖 사람들이 권력을 피해 도주하는 자유의 장소가 된다.


산지를 자유의 장소로 본 또 다른 인류학자로 제임스 C. 스콧(James C. Scott)도 있다. 스콧은 일찍이 농경의 배신이라는 책에서 평지를 비판했다. 인류 문명이 신석기 혁명 즉 농업 혁명에서 시작되었다고들 하지만 과연 농경이 혁명적인지는 의문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인류가 평지에서 집단적으로 물관리에 묶여 가혹한 노동과 세금 수탈에 시달리게 되고, 가축과의 공생이 폭압적인 방식으로 전개된 탓에 각종 인수공통감염병에 시달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스콧은 평지란 관리 감독이 좋은 땅이어서 결국 권력적이라고 한다. 이런 폭권적 권력을 우리가 국가라고 좋게 불러주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런 평지성과 대비되는 장소로 조미아라는 동남아시아의 산지 국가를 살폈다. 고도 차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자기 정체성을 쉽게 바꾸는 동남아시아 조미아의 산지 사람들이야말로 자유인이라는 것이다. 스콧이 주목한 이들 산지 자유인의 특징, 그 구체적 생존 방식은 파쇄성이다. 집단을 구성했다가도 강한 구심이 생기면 금방 무리로부터 도주해버리는 산지 사람만의 성격, 끊임없이 부서지면서 중심의 힘이 미칠 여지조차 주지 않는 자유에 대한 강박! 브로델과 스콧에게 산지란 이처럼 평지 즉 권력의 중심으로부터 이탈하려는 힘이 응축되는 곳 즉 자유의 공간이다.

그런데 브로델도 스콧 선생님도 산지와 평지의 관계를 대립하는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둘은 상호보완 관계에 있고, 여기에 산지 개념의 핵심이 있다. 자유와 권력 사이의 끊임없는 힘의 주고받음이 인류 문명의 역사를 결정했다. 산지에 있는 사람이 탈주만 원했던 것이 아니라 중심으로 들어가고도 싶어했다는 것을 놓치지 않아야 하고, 마찬가지로 평지에 길들여졌다고 해도 산지에 이끌리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다. 포인트는, 인간은 언제고 자유자재로 자신이 사는 고도를 바꿀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산지를 자유와 연결시키는 방식이 흥미롭다. 그런데 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힘이 든다. 등산을 자유의 한 양식이라고 생각하면, 자유를 무엇인가 어딘가를 싫다고 갑자기 튀어나가는 장면 속에서 그릴 수는 없게 된다. 뛰쳐 내달려서 될 일이 아니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면서 어디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수풀을 헤치며 이리저리 헤매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산지의 자유란 두근두근하는 마음을 움켜잡고 가늠할 수 없는 자신의 고도를 산의 깊이 속에서 헤아려야 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모든 산지를 이렇게 일반화할 수는 없겠다. 남미의 고대 도시들은 대부분 산 위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전체 0

전체 3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3
New 인간(persons)
5dalnim | 00:10 | 추천 0 | 조회 20
5dalnim 00:10 0 20
2
산지(mountain)
5dalnim | 2025.08.25 | 추천 0 | 조회 51
5dalnim 2025.08.25 0 51
1
바다
5dalnim | 2025.08.18 | 추천 0 | 조회 67
5dalnim 2025.08.18 0 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