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인류학
[지중해(4)] 인적 단일성
인적 단일성
페르낭 브로델의 『지중해』를 읽으며 세상 사람들이 무척 다양한 풍경을 만들며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산지 사람들은 고도에 따라 다른 삶의 방식을 택하고, 도시에는 상인, 장인, 귀족 등 다양한 계층이 만드는 삶의 양태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또 그는 지중해를 여러 바다들의 복합체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페르낭 브로델은 ‘단일성’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하고, 5장에서는 ‘인적 단일성’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된다. ‘단일성’이라는 어휘가 주는 획일적인 느낌 때문인지 어쩐지 그가 보여준 지중해에는 어색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총체적인 관점에서 지중해를 조망하지 못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페르낭 브로델은 자연환경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느린 리듬으로 형성되는 역사가(지리적 시간), 경제·국가·사회·문명과 같은 지중해 삶 전체를 들어올리는 힘(사회적 시간)으로 작용한다고 보았다. 또한 개인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짧은 역사(개인의 시간)까지 살펴보았다. 그는 지중해 역사를 말할 때, 다양한 풍경을 포괄하는(풍경에서 드러나는?) 전체의 구조적 공통성을 보여주었다. 그가 제시한 단일성은 이 구조에 대한 것일까? 아직은 모호하다.
“인간의 단일성은 단지 단순한 자연의 결과, 곧 지중해의 바다 때문만은 아니다. 바다가 단일성의 바탕이자, 운송의 무대이자, 교환과 상호 작용의 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노력과 대가를 치를 각오가 되어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바다는 또한 거대한 단절이자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기도 했다.”(363)
페르낭 브로델은 ‘지중해의 단일성’은 사람들의 이동, 이동이 의미하는 관계, 그리고 이동을 가능하게 한 길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그는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길을 중요하게 보았고, 그것은 곧 모든 일관된 역사의 하부구조라고 했다. ‘지중해는 수많은 도시들이 끝없는 실타래로 엮였고, 간간이 대도시–베네치아, 제노바, 피렌체, 빌라노, 바르셀로나, 세비야, 나폴리, 콘스탄티노플, 카이로–가 위치했다. [중략] 지중해의 지배 체제는 주로 도시와 길에 따라 결정되었고, 나머지는 그 필요에 따라 종속되었다.’(366) 지중해는 16세기 말까지 짐마차 도로가 흔하지 않았다. 열악한 도로를 따라 교역이 계속 증가하였다. 교역의 증가는 곧 노새의 증가로 이어졌다. 육로가 개발되며 항해로를 대체할 수 있었고, 이 길을 따라 우편물이 전달되었다. 해상에서 해적질도 육로 교역 증가에 기여했다. 해상 교역이 육로 교역보다 더 많은 상품을 운송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교역은 콘스탄티노플에서 스플리트로, 함부르크에서 베네치아로, 리옹에서 마르세유로 이어지는 육로를 통해서 계속 이루어졌다.
15세기~17세기 지중해 항해를, 오가던 선박으로 관찰하면, 대서양 항해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두 바다는 바람의 힘을 이용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목선을 사용했다. 16세기 말, 베네치아와 투르크에는 갤리온 선을 사용한 기록이 있다. 두 바다에는 적재량이 적고, 기동성이 높은 소형선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16세기 잉글랜드의 위대한 해상 업적들은 이 선박들을 이용함으로써 가능했다. 무역이 확대되며 각지에서 출현한 소형선들 중에서 베르토니선이라고 불리는 북유럽 소형선들은 물가 상승, 생활수준 향상, 귀로의 화물, 경기 변동 등의 이유로 1550년, 1570년 각각 20년 간격으로 지중해에 침입했다.
지중해 도시들은 어느 도시나 주변 공간의 통제를 통해 살아갔는데, 그것은 도로망, 무역로들의 교차점, 새로운 조건에 대한 지속적 적응, 그리고 완만하거나 급격한 발전 경로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모든 상품들은 물질적인 것이든, 비물질적인 것이든 도로를 통해 도시로 흘러들어온다. 피렌체의 르네상스는 토스카나 지방 전역에서 예술가들이 피렌체로 유입된 결과이고, 로마 르네상스는 피렌체와 움브리아의 예술가들이 영원의 도시 로마로 흘러들어온 결과였다. 도시들은 분업을 통해서 주변 지역과 구별지으며 성장했다. 이러한 성장은 상업 활동의 결과였다. 상업은 곧 자본의 축적을 야기했고, 그것은 제노바, 피렌체, 베네치아, 밀라노 등지에서 혁명적인 직물업과 같은 공업 활동을 육성하였다.
도시의 경제 활동으로 공업 활동 다음은 은행업이었다. 상품, 공장, 은행은 섞여 있고 하나의 손 안에 모아졌다. 피렌체의 경우 귀차르디니 코르시 가문은 갈릴레오에게 돈을 빌려주었고, 시칠리아 곡물, 직물 및 후추 무역에도 참여했다. 16세기, 금융 거래가 고도화되면서 전문가 수준의 은행가들, 에스파냐에서 “실업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다수 출현했다. 제노바인과 피렌체인은 베네치아 투자자들의 풍부한 자금을 끌여들여 “환어음” 투기를 했다. 제노바에서는 금융가들의 부가 극도로 발전했지만, 도시의 다른 생산적 활동에 악영향을 끼쳤다.
페르낭 브로델은 다양한 지중해 도시들이 각기 특정한 경제활동의 균형을 이루었지만, 반복되는 공통된 특징을 보인다고 말한다. 그것은 인구의 증가, 식량난과 전염병 문제, 이주민의 유입, 정치적 위기, 영토국가의 확장에 따른 도시의 자치권 감소 같은 것들이었다. 인적 단일성이 다양한 삶의 풍경이 어떤 구조 속에서 반복적(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의미라고 표현해야 할까, 아직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