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학자가 배운 것/오쿠노 카츠미] 동양적 시각에서 애니미즘을 생각하다(5/6)
일본어 강독팀에서 읽은 오쿠노 카츠미의 『モノも石も死者も生きている世界の民から人類學者が敎わったこと』(『물건도 돌도 죽은 자도 살아 있는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인류학자가 배운 것』)을 이어서 연재합니다.
서양적인 것에서 동양적인 것으로
동물을 인간에 의한 지배의 굴레로부터 해방시킨다는 이념에는 동물을 인간의 하위에 놓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서양 동물관의 여광이 남아 있다. 그러한 동물관을 극복하려는 다양한 실천(운동)이 오늘날 널리 행해지고 있다. 동물에 대한 가치의 반전이 일어나고 그 일이 오늘날의 행동에 동요를 가져오고 있다. 여기부터는 여광으로 남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서양 동물관과 대비시키면서 그것과는 다른 이념과 실천으로서의 애니미즘으로 눈을 돌려보려고 한다.
그러기 위한 단서를 우선은 불교학자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에게 구해보자. 스즈키는 ‘서양적인 것’과 ‘동양적인 것’이라는 사색의 틀을 제기한다. 각각의 구분은 지리적 구분이 아니라 이념적인 것이고 대립구분이 아니라 상보적인 것이라는 점을 스즈키는 강조한다. 1960년, 스즈키는 90살 때 가마쿠라 엔가쿠지 하계 강좌에서 그 틀을 이용하여 사유하는 효용에 대해 설명한다(스즈키 2007).
스즈키에 의하면 구분하기, 분석하기에 앞서 하나의 물질로 통합하는 것이 (서양의) 과학방식이다. 그런 방식은 항상 이쪽 편과 저쪽 편을 만들어낸다. 이쪽이 저쪽을 누르고 저쪽이 이쪽을 누른다는 방식이, 자연이라는 저쪽을 이쪽의 인간이 정복한다는 사고방식으로 연결된다. 스즈키에 따르면 ‘자연을 정복한다’라는 사고는 원래 일본에는 없었던 서양적인 것이다. 그 표현은 스즈키가 젊었을 무렵(아마 20세기 초) 서양에서 일본으로 수입되어 쓰인 것 같다고 회상한다.
서양에서는 다른 것은 다르다는 점에서 출발하여 상대편의 속으로 들어가서 생각한다. 즉 이쪽에 자신을 두고 저쪽에 초지나 동물을 놓고 ‘동정’한다. 스즈키가 말하는 이 동물에 대한 동정은 지금까지 보아온 서양의 동물을 둘러싼 사고에 가깝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한 데에서 출발하여 인간이 동물을 지배한다는 이념의 오류를 깨닫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동물에 대한 동정을 내세워 평등한 공동체를 실천적으로 구상한다는 것이다.
스즈키에 의하면, 이에 반해 동양은 천지초목도 인간도 같은 마음을 갖는 데에서 출발한다. 저서 『동양적 시각』의 첫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서양 사람들은 사물이 이분법으로 나뉘고 난 후의 세계에 자리를 잡고 그 다음에 모든 일을 생각한다. 동양은 대체로 이와 반대로 사물이 아직 이분되지 않은 데에서 생각하기 시작한다 …(중략)… 서양은 이분성의 사고방식, 감각방식 쯤에 입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동양은 아직 나뉘지 않은 바, 어렵게 말하면 짐조미분(朕兆未分) 이전에, 무의식이겠지만 그곳에 주목하고 있는 셈이다.
(스즈키 2017: 7)
서양적 시각에서는 주객의 대립이 없는 세계를 생각할 수 없지만 동양적 시각에서는 바로 그 ‘생각할 수 없는 곳’에서 출발하는 거라고 스즈키는 말한다. 바꿔 말하면 서양은 ‘이분성(二分性)’에서, 동양은 ‘불이성(不二性)’에서 출발한다. 스즈키에 의하면 동양의 불이성을 가장 단적으로 전하는 것은 선불교다(스즈키 2017: 26).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이분성에서 출발하는 서양적 시각에 비하여 동양에서는 만물이 나뉘며 생기는 조짐보다 이전인 ‘짐조미분 이전’에서의 불이성에 착안한다는 것이다. 불이성이란 인간과 동물, 자기와 타자, 생과 사 등이 분리되지 않고 서로 연결되는 애니미즘의 특성에 관한 것이 아니었을까(제2, 3, 4장 참조). 애니미즘은 인간과 동물이 이것과 저것으로 나뉘기 이전, 짐조미분 이전의 앎(知)을 포함하며 이는 인간과 동물을 분리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서양적 시각과는 다르다.
불이성을 전하는 것은 선불교다. 이런 스즈키의 시사에 따라 다음에는 도겐(道元) 선사에게 가르침을 청해 동양적 시각과 뿌리를 같이하는 애니미즘의 정체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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