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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인류학

 

 

[퇴근 후 인류학_케이브 오브 본즈(1) 후기] 연결 속에서 태어나고 죽는 호모 속

작성자
이달팽
작성일
2025-09-13 21:08
조회
46

 퇴근 후 인류학의 두 번째 책은 리 버거 선생님과 존 호크 선생님의 『케이브 오브 본즈』였습니다. 두 선생님의 열정 넘치고 뽀짝한 모습은 넷플릭스 다큐 시리즈인 〈언노운〉에서 영상으로도 볼 수 있었고요. 이 책과 다큐는 동굴 속에서 호모 날레디들의 유골을 파내는 호모 사피엔스들의 탐사기입니다.


날레디를 제외하고 주인공을 꼽자면 탐사 대장이신 리 버거 선생님인데요. 버거 선생님은 중학생 아드님을 컴컴한 수직갱으로 내려 보낼만큼 멋쟁이 아버지이신데다가, 8년을 영상통화만 하던 수직갱 너머 동굴을 직접 만나기 위해 25kg을 감량하신 로맨티스트이기도 합니다. 1-2년도 아니고 10여년에 가까운 길고 긴 기간 동안 연구대원들도 바뀌고, 연구에 진척이 없는 와중에도 빛을 잃지 않는 탐사정신과 애정으로 팀을 활기차게 이끌어가시는 탁월한 리더이기도 하시고요(저는 버거 선생님이 ‘비아메리카계 여성 인류학자’들과 잘 지내셨다는 말에 급 호감이 상승하더라고요^^)


강의 시간, 그에 못지않은 탐사정신을 가지신 달님께서 ‘탐사’라는 단어에 대해 음미해보도록 도와주셨습니다. ‘탐사’를 ‘탐험’과 ‘탐구’ 사이에서 이해해보는 방식입니다. 탐험의 경우, 미지의 장소를 완전히 열린 마음으로 겪는 일입니다. 탐구의 경우 책을 읽고 연구하는 일이고요. 탐사는 이 사이에 묘하게 걸쳐있는 것 같지요. 탐사는 가설을 들고 현장에 뛰어들어 조사하고 수정하고 정립하는 일입니다. 탐사와 탐구모두 ‘진리’를 찾는 것과 연관되어있지만, 탐사는 현장성과 신체성이 더 강조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버거 선생님의 동굴 ‘탐사’는 수직갱을 직접 내려가 빗금 그림문자를 발견하는 것에서 정점을 찍는 듯 하네요. 


버거 선생님이 ‘라이징 스타’ 동굴에서 만난 ‘호모 날레디’라는 종은 그동안 학계에서 호모속에 대해 세우고 있던 가설을 부수는 센세이션한 종이었습니다. 뇌 용량이 비슷한 연대의 다른 호모속의 뇌 용량에 비해 턱없이 작으면서도 무덤을 만든다는 생각을 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 외에도 직립에 아주 적합한 발뼈와 나무타기에 적합한 어깨와 손가락을 동시에 가지기도 했고요. 뇌 용량을 중심으로 한 단선적인 호모속의 진화를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날레디는 아주 미스터리한 종이었습니다. 뇌가 작아도 사후세계를 생각할 수 있다면 ‘뇌가 커서 똑똑한 사피엔스가 지구에 살아남았다’는 가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버거 선생님과 다른 대원들은 날레디의 행동양식을 분석하며 ‘이들은 인간이 아닌데…’ 라고 하는 말을 종종 하십니다. 저는 다큐를 보면서, 왜 굳이 인간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거지? 라고 생각했는데요. 다큐를 끝까지 보니 우리 ‘인간’ 만이 아니라 다른 종이 우리처럼 지적이고 영적이고 예술적이라는 그 감각이 대단히 숭고하게 느껴졌습니다. 완전히 타자이면서도 동등한 지적생물인 존재, 그 존재를 감각하는 것으로 ‘인간’의 자의식이 내려놓아지고, 뭐랄까 우주적 지성에 경탄하게 되는 느낌이랄까요. ‘호모 사피엔스’의 종적 특성으로서의 지성이 아니라 이 자연이 빚어낸 것으로서의 지성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날레디는 우리의 조상, 우리가 아니고 다른 종인 것이니까요. 

퇴근길 인류학의 이번 키워드인 ‘연결’은 동굴이라는 공간의 연결성 – 막힌 곳 없이 구석구석 연결되어있는 형태 –에서 생각해볼 수 있고, 호모 날레디가 생각한 산자와 망자의 연결,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가 날레디를 발굴하며 연결되는 두 종의 연결, 세 가지 연결을 모두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연결에 대한 열망은 얼마나 강렬한지, 동굴의 좁은 틈으로 몸을 밀어넣고 목숨을 거는 여정을 하게 합니다. 망자의 시체를 지고 수직 갱 슈트를 내려가는 날레디와 작은 어린아이의 뼈 석고를 슈트 위로 올리는 사피엔스. 한 선생님께서는 이 동굴의 수직갱이 마치 좁은 산도 같다고 이야기하셨는데요. 죽음과 탄생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느끼게 하는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고생으로 따지면 아주 고생입니다. 타자와의 연결엔 이정도로 자기를 걸어야 하는 면이 있나봅니다. 

다음주에 이어서 또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지 궁금합니다. 방에 앉아서 지난번엔 시호테 알린으로 이번엔 동굴에도 다녀왔네요. ‘탐사’ 정신과는 조금 맞지 않지만 ^^ 탐구하는 마음으로 다음주를 기다리겠습니다.

전체 1

  • 2025-09-15 00:54

    다양한 호모속들이 사라지고 호모 사피엔스만이 남게 된 이유가 힘이 세서도, 똑똑해서도, 영적으로 뛰어나서도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 신선합니다.
    진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냥 우리는 어쩌다 살아남게 된 게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자의식이 훅~ 꺼져버리고, 지금 나를 여기 있게 해준 수십 억년의 우주 만물에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고 해야 할까요.
    우리가 대단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