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화인류학 연구실에서는 이렇게 지금 여기의 삶을 완전히 긍정하는 주인공들의 세계를 탐험합니다. 동화 속 주인공들은 정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자신을 만들어갑니다. 주인공의 삶이 어디로 이끌릴지는 아무도 모르고 정해진 것도 없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규정 지을 수 없는 존재들이 온갖 살 궁리로 복작거리는 숲에서 깔깔 웃고 떠들며 놀다 옵니다. 그리고 돌아온 그 자리에서 지금 여기의 삶에 감사하며 한 걸음 더 낯선 길을 나서봅니다. 필요한 것은 모든 우연을 수용하고 마음껏 상상하는 것 뿐!
인체의 창조 신화(자연학, 신학, 윤리학의 삼위일체)
인체의 창조 신화(자연학, 신학, 윤리학의 삼위일체)
“티아마트 여신은 배가 부풀어 오르고 입을 벌린 채 나동그라졌다. 그러자 마르둑은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여신의 배에 구멍을 내고 내장을 찢고 심장을 관통했다. 여신을 무찌른 마르둑은 그녀의 생명을 거두고 시체를 땅 위에 던진 다음 그 위에 우뚝 섰다. 티아마트 여신의 일당은 달아나려고 했지만 마르둑은 그들의 몸을 묶고 무기를 파괴해버렸다. 그 후 마르둑은 킹구를 붙잡아 사슬로 묶고, 그가 지니고 있던 운명의 판을 빼앗아 그것을 자기 가슴에 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티아마트에게 돌아가 두개골을 쪼개고 시체는 말린 물고기처럼 두 토막으로 잘랐다. 그러자 시체의 반쪽은 하늘에 걸린 창궁이 되었고, 다른 반쪽은 땅이 되었다. 마르둑은 하늘에 압수의 궁전을 본떠 궁전을 만들고 별의 운행을 결정했다.”(미르치아 엘리아데,『세계종교사상사1』, 117~118쪽)
에누마 엘리쉬는 메소포타미아의 창조 신화이다. 최초의 신 중 모신인 티아마트가 그의 자손의 자손인 마르둑에 의해 묶이고 찢기며 해체되어 하늘과 땅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이다. 인류의 창조 신화들 중에는 이처럼 신체(神體)가 낱낱이 찢김으로 해서 우주가 지금과 같은 산과 바다 강의 모습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많다. 이집트의 오시리스도 동셍 세트의 모략에 빠져 살해당한다. 최초의 로마에서는 인간 여인과 신 마르스의 자식들인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서로 다투다, 형 로물루스가 동생의 몸을 죽여 도시의 경계로 삼는다. 로마라는 나라는 반신(半神)의 몸 위에 세워진다.
인도에서 발흥한 자이나교도 우주를 신의 몸으로 이해한다. 자이나교는 힌두교나 불교의 우주론이 지나쳤던 인도의 전통적인 관념을 보존, 재평가했다(미르치아 엘리아데,『세계 종교사상사2』). 우주(Loka)는 팔을 구부려 손을 허리에 대고 서 있는 거대한 인간의 모습을 했으며, 저차원의 세계는 다리로. 중간 세계는 허리로, 고차원의 세계는 가슴과 머리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저차원의 세계에 일곱 층으로 된 ‘대지’가 있고, 대지의 가장 높은 층에 18종류의 신들이 산다. 아래 나머지 여섯 층의 ‘대지’에 지옥이 있다.
자이나교의 고차원의 세계는 메루 산 위에 위치하는데, 5층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 층이 거인의 늑골, 목, 턱, 얼굴의 다섯 구멍, 그리고 머리털에 대응한다. 각 층에는 서로 다른 형태의 신들이 살고 있는 몇 종류의 낙원이 있다. 그 중 마지막 층이 우주의 꼭대기인데, 거인의 머리털 부분에 해당하고 해방된 영혼들에게 할당되어 있다. 자이나교에서 해방은 우주를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 거인의 몸을 한 단계 한 단계 밟아 올라가 그 내부에서 자기 완성을 이루는 것이다.
우주를, 지구를, 도시를, 인체(人體)로 이해한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주가 몸을, 그것도 인간의 몸과 같은 것을 가졌다면 인간을 이해하듯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 우주에 사지가 있고 배와 머리가 있다면, 우선 우주에 속한 모든 존재들의 건강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몸이기에,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다. 존재가 겪는 고통과 비참은 ‘생로병사’의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다. 때문에 인간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의 소명은 우주의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 된다. 이렇게 자연학과 신학, 윤리학을 일치시킬 때, 우주의 일부분이면서도 우주 전체와 하나인 나를 의식할 길이 열린다.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추천 | 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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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의 창조 신화(자연학, 신학, 윤리학의 삼위일체)
5daln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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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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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dalnim | 2025.09.14 | 0 | 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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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아버지의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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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_ 고구마랑 말할 수 없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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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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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정 | 2025.03.11 | 0 | 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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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공동체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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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주술, 궁극의 연결술(2/19 후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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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2/12수업후기] 경작의 필수요소, 주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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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제 후기] 안데르센 동화의 세계 속으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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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동화로서 영원을 꿈꾸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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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켜니 | 2024.12.21 | 0 | 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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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안데르센과 동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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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농부의 동화 읽기(마지막)] 겨울 축제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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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한 바다 엄마의 동화 읽기] 동화 속 먹고사니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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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갈나무에 대한 추도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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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동화의 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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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이의 동화 읽기] 독극물 낚시와 빨간 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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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농부의 동화 읽기] 이야기한다는 것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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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의자에 누운 낡은 가로등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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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와 겐지와 안데르센의 의인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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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이의 동화 읽기] 프레임을 깨는 미야자와 겐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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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농부의 동화 읽기] 미야자와 겐지의 가난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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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한 바다 엄마의 동화 읽기] 미야자와 겐지라는 새로운 렌즈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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