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인류학
에세이 과제 구원론(1) 의심을 격퇴하는 신화
종교인류학 과제 구원론(1) 20250916 김유리
의심을 격퇴하는 신화
-파르티아 제국기 이란의 구원론
종교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세계종교사상사』 제2권에는 여러 구원 종교들이 소개되어 있다. 종교에서 구원이란, 영적인 차원을 통해서 비극적인 인간 조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구원은 무엇보다 개인의 영적인 재생과 관련된다. 한편, 구원은 집단이 위기를 벗어나는 것과 연결될 수도 있다. 가장 크게는 우주의 갱신도 구원론에 포함된다. 그러므로 종교에서 말하는 구원론은 우주 속에 위치한 인간의 갱신이다.
책에 나온 구원론들을 탐구하다보니 이 이야기들이 나의 구원에 과연 도움이 될까 하는 의심이 생긴다. 확신에 차서 두려움을 잊은 신도들도 있는데 왜 나는 의심이 생길까 궁금해진다. 이 의심에도 의미가 있을까? 의심을 종교적 테마로 다루는 신비 종교가 있어서 탐구해보고자 한다.
이란에서 파르티아 제국기(BC 247~AD 226)에 발전한 주르반교를 중심으로 전해지는 쌍둥이 신화를 살펴보자. 엘리아데는 아르메니아 교회의 교부인 콜브의 에즈닉이 들려준 이야기를 소개한다(‘에즈닉의 전승’ 『세계종교사상사』2권, 425~26쪽).
주르반교의 쌍둥이 신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주르반”은 아들을 갖기 위해 천 년 동안 희생 제의를 올렸다. 그런데 그는 희생 제의의 효험에 의심이 들었다. “도대체 내가 올린 희생 제의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의심했기 때문에 쌍둥이 아들을 임신하게 되었다. 한 아들은 희생을 올린 결과로 생겼고, 다른 아들은 의심의 결과로 생긴 것이다. 주르반은 먼저 태어난 아들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의 뜻을 알아챈 한 아들이 자기 쌍둥이 형제에게 이를 알려주었다. 이 말을 듣고 “아리만”이 자궁을 찢고 밖으로 나왔다. 이와 같이, 주르반교 창조신화에서 창조주의 의심은 아들을 둘로 분열하는 역할을 한다. 왕의 자리는 하나인데, 아들은 둘이니 초장부터 불길하고 위태롭다. 다음 장면에서 사태가 악화된다.
아리만이 주르반에게 자기가 그의 아들이라고 말했을 때, 주르반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의 아들은 향기롭고 빛나는 아이일진대, 너는 어둡고 악취를 풍기는구나.” 이때, 태 속에 있던 다른 아들 오르마즈드가 빛을 발하고 향기를 내뿜으며 태어나고 주르반은 그를 왕으로 봉하고 싶어졌다. 충격적인 상황이다. 왕좌를 물려받을 기대에 차서 나섰는데 아버지라는 자가 너는 추하고 냄새난다며 고개를 돌린 것이다. 설상가상 아버지가 기대한 모든 것의 화신인 자기 형제가 세 번째 등장인물로 출현한다. 우주의 시원에 인정 욕망의 좌절과 질투를 발생시키는 가족 극장이 있다. 태어나자마자 화가 난 아리만은 항의한다.
아리만은 주르반에게 먼저 태어난 아들을 왕으로 삼겠다고 한 맹세를 상기시킨다. 주르반은 자기가 한 맹세를 지키기 위해 마지못해 아리만에게 왕위를 허락한다. 단, 시간 제한을 두어 9천 년 후에는 오르마즈드와 교대하도록 했다. 왕위에 책봉하자마자 그의 하야를 명령한 것이다. 이것이 주르반의 원초적 의심과 쌍둥이 아들의 적대라는 우주 기원 신화이다.
창조 신화 속 종말론
종교에 시간의 관념이 들어오면서 종말론적 구조의 신화를 만든다. 세상은 시작되지만 끝이 예정되어 있다. 종말은 주르반이 사랑한 아들로 통치자를 교체하는 것인데, 아리만은 순순히 왕위를 내줄 생각이 없다. 아리만과 오르마즈드의 최후의 전투가 예정된 채로 시작된 우주의 드라마 속에서 오르마즈드와 아리만은 처음부터 전쟁을 준비한다. 에즈닉 교부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계속된다.
오르마즈드와 아리만은 경쟁이라도 하듯, 양 진영에서 각자 피조물들을 창조하기 시작했다. 오르마즈드가 창조한 모든 것은 선하고 올바른 것이었다. 아리만이 만든 것은 악하고 부정했다. 오르마즈드가 창조하는 목적은 악을 정복하기 위해서다. 두 창조신은 선과 악이라는 두 가지 창조의 원리를 형상화한다. 이들의 영원에서 유래했으나 유한한 시간을 통과하면서 둘 다 소멸할 예정이다.
이와 같이, 이란 종교에서 우주의 시간은 순환하지 않고 직선적이다. 최후의 전투가 벌어지는 지점까지 직선적이고 일시적인 시간이 창조되었다. 유한한 시간은 창조에서 출발하여 쉼 없는 전투 과정 끝에 최후 승리에 도달하는 “성스러운 역사”를 구성하는 시간으로 해석된다. 성스러운 역사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우주적 드라마와 인간의 역사의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아리만의 공격
오르마즈드의 선한 창조가 영적인 차원에 이어 물질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던 도중이었다. 아리만이 물질 세계로 쳐들어와서 세계에 악을 혼입시킨다. 아리만은 원초적 소와 영적으로 탁월한 거인을 살해하는 등 세계를 악으로 오염시킨다. 그러나 한편, 하늘이 닫히고 아리만은 물질세계 바깥으로 다시 나갈 수 없도록 세계 속에 갇힌다.
최초의 남녀
원초적 양성구유 거인 가요마르트가 아리만에게 살해당한다. 가요마르트의 사체에서 최초의 루바브 식물처럼 남녀 인간 한 쌍이 쑥쑥 자라난다. 오르마즈드 신은 이들 남녀에게 선악을 가리고 음식을 자제하라고 명령한다. 남녀는 그의 형제 아리만의 유혹에 넘어가 거짓말을 하고 음식도 탐한다. 최초의 인간 한 쌍이 저지른 원죄는 선과 악을 잘못 판단한 것, 그리고 뭔가를 먹은 것이다. 그때부터 이들 인간의 조상은 희생 제의를 드려도 신에게 공물이 가 닿지 않는다. 성을 발견하여 아이를 낳는데 쌍둥이가 태어난다. 이들은 자기가 낳은 아이들을 삼켜버린다. 또 다시 쌍둥이를 낳자, 이번에는 오르마즈드가 개입하여 아이들을 지키고(맛 없게 만들었다고 함) 이들이 대를 이을 수 있었다.
최초의 남녀 한 쌍 마슈예와 마슈야네는 영적으로 미숙한 사람들이다. 영적으로 탁월한 위대한 거인에게서 나왔고 선하게 창조되었지만 선한 신의 계시를 이해하지 못한다. 악신 아리만을 따른 그들의 선택은 악해서가 아니라 판단 착오 때문이다. 그들은 선하게 창조되었고, 아리만조차 그들의 영혼을 죽이지 못한다. 이들은 부활의 때 완전한 상태로 갱신될 수 있다.
구원의 약속
이란의 신학자들은 이원론적 우주론에서 인간의 위치를 오르마즈드의 가장 강력한 조력자의 자리에 둔다. 그 이유는 두가지인데, 첫째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상들은 의롭지도 완전하지 못했지만 자유의지로 선택을 했다. 인간은 선을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둘째, 영혼은 몸이라는 옷을 입어야 활동할 수 있다. 인간의 몸은 빛나고 향기로운 존재로 창조되었다. 다만, 탐욕으로 인해 부패했을 뿐이다. 최후 승리를 통해서 인간의 몸은 정화될 것이다.
수련, 절제, 도덕성 등 제국의 군인같은 덕목을 윤리의 지침으로 삼으며 악과의 전투에 참여함으로서 인간은 스스로의 구원을 보장받고 신의 사업에 참여한다. 신의 군병이 된다는 것은 세속을 살아가면서도 영적인 차원에서 선과 연결되려는 의지를 굳히고 행위를 하는 것이다.
최후의 전투
예정된 때가 이르면, 서로 적대하는 선과 악 두 세력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아리만의 최후에 대한 여러 버전의 이야기가 있는데, 이 전투에서 아리만은 오르마즈드의 공격을 받고 전사한다. 또는 영원히 무력해진다. 또는 그가 세상으로 들어왔던 그 구멍으로 격퇴된다. 추방된 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의심에 근원을 둔 악의 원리가 권세를 영원히 상실하면 우주의 갱신이 시작된다.
아리만의 격퇴 이후 대화재가 일어나 산을 녹여 땅이 평평해진다. 화재의 열기는 부활한 몸들을 정화하고 지옥으로 통하는 통로를 막는다. 갱신을 통해 죄의 위험으로 자유를 얻은 인간들은 육체적인, 그리고 정신적인 지복을 누리면서 영원으로 들어간다. 이상이 주르반교의 성스러운 역사 드라마의 종결이다.
이란 종교의 선악 이원론적 우주론은 변증법적인 창조성을 보여준다. 엘리아데에 따르면, 선이 창조하는 목적이 악을 정복하기 위해서라는 것은 악이 선의 완전함을 역설적으로 촉진한다는 뜻이다. 세상의 악은 의심이라는 뜻하지 않은 사고로 발생했지만, 그 악은 우주적 투쟁의 극장에서 세속 인간이 영적인 차원과 연결되고, 인류와 우주가 성숙해가는 과정에 동력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