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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 인류학


[환동해 문명사(1)] 후기 _ 열등감이 일으킨 정복 전쟁

작성자
기헌
작성일
2025-09-17 21:27
조회
10

 

주강현 선생님의 환동해 문명사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우선, 지난 시간 페르낭 브로델의 지중해를 공부해왔기에 해양을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두 책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기로 했다. 두 책은 모두 영토 국가를 기준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서는 반대적 입장이다.

브로델의 지중해, 사실 바다보다 산지, 도시, 길 이야기가 훨씬 자주 등장했었다. 브로델은,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역사관은 영토 국가를 단위로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볼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국가의 경계를 떠나 여러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이 산 넘고, 강을 건너 모여드는 상업 도시와 그들이 걸었던 길을 주목한다. 그가 말하는 지중해는 단순히 유럽, 아프리카, 중동에 둘러싸인 바다가 아니다. 오선민 선생님께서 인용하신 다음 문장에서 브로델의 지중해를 좀 더 음미할 수 있다.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역사와 기후의 산물인 삼위일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밀, 올리브, 포도이다. 이 세 가지는 같은 농업 문명의 산물, 곧 사람이 자연 환경을 극복한 똑같은 승리의 결과이다. 따라서 지중해의 여러 지역들은 상호 보완적이 아니다. 이 지역들은 같은 곡물 창고, 같은 포도주 저장고, 같은 착유기, 같은 도구, 같은 가축 떼, 종종 같은 농업 전통, 같은 일상적 고민거리들을 가지고 있다. 한 지역에서 번영하는 것은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로 번영한다.”(지중해 1, 306)

 

같은 자연 환경을 극복한 사람들은 같은 일상의 고민을 가진다. 브로델은 우리가 역사를 바라볼 때, 이탈리아, 프랑스, 에스파냐 같은 국가 중심이 아니라 환경과 같은 물리적 조건 위에서 바라보라며, 새로운 역사 단위로 지중해를 제안하는 것이다. 브로델의 역사관으로 설명하는 지중해는 끊임없이 유동하는 관계들이 등장하는데, 관계망이 많이 교차하는 곳에 이름난 도시들이 있다. 도시는 단일한 색깔이 아니라 다양한 민족, 다양한 언어가 공존하는 다채로움을 지녔다. 그 색은 인류학 답사로 방문했던 항구 도시 인천과 비슷한 느낌이었을까? 오래전 활발했던 교류의 교차점 풍경이 궁금해진다. 사실 아직 나는 브로델의 개념에 감기지(?) 않는다. 더 다각적으로 지중해라는 개념을 생각해야 할 것 같은데 아직은 무언가를 빠뜨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주 읽고 이야기를 나눈 주강현 선생님의 환동해 문명사는 브로델의 역사관과는 조금 다르다. 보나선생님은 지중해라는 책은, 교차점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것 같은데, 환동해 문명사는 어떤 중심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닌 느낌이라고 하셨다. 두 곳의 공간성이 다른 것 같고 환동해가 입체적으로 다가왔다고 했었다. 나는 보나선생님의 이야기가 마치 액체같다고 생각했다. 액체는 일정한 형태가 없지만, 용기의 모양에 따라 형태를 가지기도 한다. 파도가 부서질 때는 거품이라는 하나의 단일하고 입체적인 모습을 가졌다가도 어느새 바닷물에 합류하면 흔적없이 사라진다. 오선민 선생님이 액체라는 개념(영토라는 땅의 역사와 반대 개념, 역사의 주체가 누구인가라는 관점으로 설명)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아직 환동해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하다. 다음 시간에는 이 개념을 더 붙들어보자고 생각했다.

이번 시간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러시아가 동쪽으로 간 이유에 대한 부분이다. 책으로 읽었을 때 나는, 러시아가 단지 영토 확장이라는 이유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9000km 떨어진 캄차크 반도까지 동진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선민 선생님의 설명에서 아주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음을 알았다. 선생님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러시아가 동쪽으로 간 이유는 1차적으로 영토 확장이 맞다. 이것은 곧 식민화라는 의미로 연결된다.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최단 시간 정복 전쟁을 완수했는데,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코사크족과 같은 군대의 엄청난 폭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러시아가 식민화에 열을 올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유럽 제국주의 팽창에 대한 위협감과 서유럽 문명에 대한 피해의식때문이었다. 대항해시대를 시작으로 서유럽은 바다로 나아가 거대한 식민지를 건설하고 스스로 문명국임을 증명했지만, 해양진출이 쉽지 않은 러시아는 다른 방향을 찾아야 했던 것이다. 지나치듯 읽었던 책의 이 부분(피해의식)이 러시아에겐 엄청난 압박감을 느낀 부분이라니 놀라웠다.

피해의식을 이야기하려면 다윈의 진화론까지 들어가야 한다. 진화론에 따르면 자연에서 최적화된(적합한?) 것이 살아남는다. 여기서 최적은 상황에 맞게 잘 적응한다, 잘 변이한다는 의미이지만, 진화론을 바탕으로 사회진화론을 고안한 허버트 스펜서는 다윈의 의도와는 다르게 최고 강한 자, 우월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논리로 접근했다. 사회진화론은 제국주의가 팽창하는 16~7세기에서 식민지가 없으면 문명국이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주류에 섞이기 위해서는 식민지 건설은 필수적인 절차였다. 폭력적으로 식민화를 추진하는 국가들은 야만을 문명화시킨다는 명분 아래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했다. 아니 정말로 그것이 미개인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강국의 대열에 끼고 싶어 전전긍긍하는 러시아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열등감으로 괴로워했던 나를 떠올리기도 했다. 열등감이 일으키는 폭력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낳는지 무섭기도 했다. 그들이 그렇게 갈망했던 러시아다움은 결코 타자와의 경쟁에서 찾을 수 없을텐데도 왜 그렇게 안달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주변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다움을 찾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남기는 시간이었다

러시아다움을 이야기할 때, 유럽과 문화적 차별을 갖기 위한 러시아의 노력도 있었는데, 중요한 것 같은 이 부분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시베리아의 샤머니즘, 러시아의 소수민족에 대한 정보도 중요하다. 계속 갈무리하면서 환동해를 여행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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