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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가 배운 것/오쿠노 카츠미] 동양적 시각에서 애니미즘을 생각하다(6/6)

작성자
덕후
작성일
2025-09-20 13:52
조회
14

일본어 강독팀에서 읽은 오쿠노 카츠미의 モノも死者きている世界から人類學者わったこと(물건도 돌도 죽은 자도 살아 있는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인류학자가 배운 것)을 이어서 연재합니다.

 

 


 

 

 

도겐(道元)에게 배우다

 

  조동종(曹洞宗)을 처음 연 도겐(道元) 선사가 말하는 분별의 지()’란 사물을 구분하여 멀리하는 지혜에 관한 것이다. 그런 지혜는 저건 좋다’, ‘이건 싫다라는 집착을 낳는다. 한편 무분별의 지()’란 사물을 분리하지 않는 지혜에 관한 것이다. 분별의 지와 무분별의 지는 대립개념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무분별의 지란 이것과 저것의 차이를 차이가 있을 법한 것으로서의 분별로 인정하면서, 분별의 지와 무분별의 지 양쪽 모두 긍정하는 지혜에 관한 것이다(히로 2002: 109). 분별은 분절’, 무분별은 무분절이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지만 아래에서는 설명이 복잡해짐을 피하기 위해 주로 분별과 무분별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도겐은 분별에 의해 모든 사물이 분리되어 고정되고 의미가 부여되어 서열화되는 세속세계 본연의 상태를 뒤엎음으로써 열리는, 속세를 초월한 심층 차원인 무분별 차원으로 헤치고 들어가 그 진리와 힘을 얻으려고 했다. 윤리학자인 요리즈미 미츠코(頼住光子)에 따르면 사람은 분단되어 고립된 속세가 아니라 힘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심층의 무분별 차원에서 리얼리티를 찾아낸다(요리즈미 2014: 40). 예를 들면 고통은 분별을 중시하는 속세에서는 이항으로 나눌 수 있지만 심층의 차원에서는 절대로 이항으로 나눌 수 없다. 고통 속에 낙이 있고 낙 속에도 고통이 있다고 하는 편이 경험의 실상에 보다 가깝다. 무분별 차원에는 진리가 나타나고 거기에 힘이 가득 차있다.

  사람이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것은 무분절의 무언가를 두 부류로 그 생의 구도(構図)에 따라 분절해 간다”(요리즈미 2014: 43)는 프로세스를 거쳐 완성된 분별이다. 그런 의미에서 분리해서 사고하는 서양적인 방식은 도겐에 따르면 반드시 틀린 것은 아니다. 도겐은 분별을 사람 생의 구도적 필연이라고 인정한다. 사물의 윤곽을 새기고 고정화·실체화하는 분별을 한편으로는 인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것에만 집착하지 않고 하나의 고정된 시각을 뛰어넘어 상대화하는 것, 즉 분별에서 무분별로, 다시 무분별에서 분별로 왕래하면서 세계를 계속 포착하는 것이 도겐의 사상이다.

  감각이나 지능, 이성이나 감정 등의 기준에 의해 대상을 분별함에 따라 집착이 생김으로 연결되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지식은 분리된 분별의 지이다. 한편 무분별의 지는 분별된 동물들과 인간 양쪽을 모두 긍정하는 무분별의 차원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지금=여기에 모습을 드러내는 현실로서 동물들이 분별되는 눈앞의 현실을 인정하려고 한다.

  선()사상에 비추어 다시 생각해 보면 애니미즘의 불이성(不二性)이란 간단하게 분리되지 않는것만은 아니게 된다. 애니미즘은 물론 분리할 수 없는 불이성(무분별)의 차원으로 발을 들여놓는 일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사람 생의 구도적 필연으로써 이분성(분별)도 인정한다. 현실에서 분별하는 이분성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부터 힘이 가득 차있는 무분별로 이루어지는 불이성의 차원으로 파고들고, 나아가 이분성과 불이성 양쪽 사이에서 끊임없는 왕래를 계속하는 그림으로 포착하는 것이 애니미즘이 아닐까.

 

 

동물을 해방하기, 동물과 연결되기

 

  단숨에 추상론으로 너무 깊게 파고든 것 같다. 지금까지 논의의 흐름을 간략하게 돌아보자.

  인간과 동물을 분별함에서 시작하여 그러한 것으로 세계를 쌓아올린 후에, 현대가 되어 그런 일이 낳는 오류를 깨닫고 인간과 동물의 평등 공동체를 재구축하기 위해 무분별을 도입하려고 한다는 것이 오늘날 동물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활동과 사상의 지금까지의 여정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동물관과 그것의 극복을 위한 모험의 통시적 과정이라고 바꿔 말해도 좋다. 인간과 동물을 분리하는 분별력은 현재 동물과 연결된다는 무분별적인 이념을 갖게 되며 그것이 실천으로 옮겨질 때 또 다른 하나의 분별을 낳는 모순을 껴안고 말았다.

  한편, 애니미즘이란 인간과 동물을 분리하지 않는 무분별에서 출발하여 사람 생의 구도적 필연으로서 분별을 활용하는 것과 같은 동양적 시각을 내포하는 이념과 실천이다. ‘동물과 연결되는애니미즘은 인간과 동물의 무분별 차원으로 깊게 파고들어가면서 현실면에서는 지금=여기에서 인간과 동물 양쪽을 분리하는 분별의 작용을 인정하고 있다.

  본 장에서는 동물을 둘러싼 오늘날의 사상과 실천의 유래를 밝히는 것에서 출발하여 무분별과 생의 구도적 필연에 따른 분별, 즉 불이성과 이분성 사이의 끊임없는 왕래로 이루어지는 애니미즘의 구조에 관한 하나의 시각에 도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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