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님의 뚜벅뚜벅 인류 답사
[동아시아 차 문화의 성과 속(1)] 2025 국제 차 문화 학술 심포지엄(9.16) 참석기
◎ 2025 국제 차 문화 학술 심포지엄 참석기
동아시아 차 문화의 성과 속
1. 동아시아 차 문화의 향기를 맡으러
9월 16일 오전, 오전 화요–해양 인류학 공부를 마치고 대구로 향했다. 대구 계명대의 목요철학원이 주최한 〈2025 국제 차 문화 학술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아침 일찍 시작했을 학술대회에, 늦었지만 타니 아키라(谷晃) 선생님의 발표는 꼭 듣고 싶었기에 서둘렀다. 늘 한가해서 시 바깥으로 나가는 데에 전혀 어려움이 없는 세종시인데, 어쩐 일인지 경찰들이 구석구석 거리에 있었고 여기저기에서 경찰차가 번쩍번쩍 돌아다니고 있었다. 빠져 나가는 데만 40분이 걸렸다.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 잠깐 요기라도 하려고 했던 계획은 접어야 했다. 도착이 빠듯했기 때문이다.
타니 아키라 선생님은 교토의 노무라 미술관 관장님이시다. 인문세에서 있었던 지난 5월의 ‘인본철학의 원류를 찾아서’ 답사에서 찾아 뵌 적이 있다. 그때 노무라 미술관이 소장한 몇 점의 ‘고려다완’을 귀하게 볼 수 있었다.
봄에 선생님께 직접 들은 설명에 따르면, ‘고려다완’은 15~16세기에 일본에서 크게 유행한 차문화에서 빠질 수 없이 중요한 차도구로 각광 받은 찻잔이다. 조선시대에 유행했지만 ‘고려다완’이라는 명칭으로 불려서, 당시 조선에서 생각했던 ‘조선풍’의 다기와 일본에서 생각한 ‘조선풍’이 다름을 알려주는 유물인데, 그냥 보면 막사발이라고 할 정도로 흙으로 간단히 빚은 대접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 조선에서는 ‘고려다완’에 차를 마시지는 않았다. 타니 아키라 선생님은 일본에서 고려다완의 놀라운 인기가 말해주는 의미를 해석하시는, 일본 최고의 고려다완 전문가이시다.
3시간을 달려 도착한 대구에서 깜짝 놀랐다. 출발할 때 자동차 계기판 온도계가 28도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한낮이라지만 대구의 온도가 34.5도였기 때문이다. 창문을 열어 보니 바람이 아주 뜨겁지는 않았지만 역시 대구구나 싶었다. 대구를 가로지르는 금호강을 따라 학회장으로 갔다. 아파트가 빽빽하게 많은 아주 큰 도시였다.
학회가 열리는 수향아트피아에 도착해서 들어가려고 하니, 신청자가 아니면 입장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발표자 중에서도 가장 권위가 있으신 ‘타니 아키라’ 선생님의 손님으로 왔다고 억지로 우겨서 겨우 허락을 받았다. 그 다음, 자료집을 구하려니까 그것도 무척 곤란하다는 답을 받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캐나다 벤쿠버에 있는 UBC 대학교의 허남린 선생님께서 자료집을 갖고 와달라고 하셨다는 부탁을 하셨다며, 허남린 선생님이 얼마나 한·중·일 도자기 문화의 권위자인지를 또 장황하게 설명 드렸다. 결국 ‘가방은 드릴 수 없고 자료집은 한 권 드리겠다’는 답을 받았다. 신청비를 내고 참석한 분들, 따로 초대를 받은 분들은 모두 에코백 안에 든 자료집을 받았던 것이다. 어쨌든 뜻밖의 문턱에 놀라기는 했으나 학술 대회장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
마침 하나의 섹션이 끝나고 쉬는 시간인지 학회장 문이 크게 열리면서 많은 선생님들이 나오고 계셨다. 그분들을 따라 학회 측이 제공하는 간식을 먹으러 갔다. 공부는 안했지만 나도 배가 너무 고팠기 때문이다. 그런데 워낙 국제적인 학술대회이고 또 ‘차 문화’에 관련된 것이고 보니 참석하신 분들의 복장이 심상치 않았다. 스님들도 많이 계신 데다가 대부분 양복 정장이시고, 아니면 한복들을 입으셨다. 간식이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섹션 앞으로 빨주노초파남보 한껏 부풀어 오른 한복 치마가 겹겹이 나를 가로막고 있었다. 도저히 뚫고 간식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겨우 비집고 가니 포크로 찍어 먹는 한 입 크기의 떡과 한과가 있었다. 한 주먹 쥐고 나오고 싶었는데 한 포크밖에 할 수 없었다. ‘차 문화’ 학회이니 차라도 한 잔 할까 해서 종이컵에 받아 나왔는데, 학회장 안에서는 뚜껑이 없는 컵에 든 음료는 반입할 수 없었다. 마침 다음 섹션이 시작된다는 알람이 울렸고, 나는 뜨거운 차를 한 모금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버릴 수밖에 없었다. 장시간의 운전과 허기, 입장까지의 지난한 협상, 한복의 위용에 지쳐 그만 세종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2. 동아시아 차 문화에 대한 일반적 접근 순서
어쨌든 타니 선생님을 뵌다는 미션을 완수하겠다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발표를 기다리시는 선생님의 자리 뒤까지 가서 자리를 잡았다. 정신 차리고 보니 몇 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학회장의 앞에서 두 번째 줄, 발표자들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게 되었다. 딴 짓 하기도, 졸기도 다 틀린 자리였다. 사실 차를 잘 마시지 않기도 하고, 타니 선생님의 열정적인 고려다완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추고 왔기 때문에, 다른 발표까지 열심히 들을 수 있을까 피곤한 심신 탓에 걱정이 되었다.
겨우 숨을 돌리고 학회 자료집을 훑어 보았다. 과연, 국제 차 문화 학술대회답게 내용이 훌륭했다. 전체 네 개의 섹션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① 한중일 차 문화에 담긴 정신, ② 한중일 차의 형태와 제다, ③ 한중일 음다 양상에 따른 다구의 변천, ④ 한중일 음다 공간의 특징. 차 문화의 발원지 중국에서부터 한국을 거쳐 일본에 이르기까지, 차 문화의 정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자세히 소개하려는, 학회의 야심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차 도구가 그렇게 많은지 다기의 종류에도 놀랐고, 찻잎을 따고 말려서 쓸 수 있게 하는 과정의 복잡함과 차를 마시는 방법의 다양함에도 놀랐다. 특히 차 마시기에 ‘음다’라는 전문 용어가 있다는 것도 새로웠다. 아, 나도 학회장 안에서 음다 잔을 갖고 싶노라.
3. 성과 속을 다루는 음다 공간
발표를 직접 듣기도 했지만 정말 재미있던 발표는 한중일 음다 공간의 비교에 관한 것이었다. 차를 마시는 것이 차를 마시는 공간을 체험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찻잔 하나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달이고 따를 방법, 음용하는 방법만이 아니라 그것이 놓이는 자리에 대한 철학까지 필요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것이 일본의 차실이었다.
다치바나 미치코(橘倫子)의 연구에 따르면 일본의 차실은 비일상을 극대화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일본에서는 유학승에 의해 전래된 불교와 함께, 중국 당나라 다례 문화가 전해졌다. 따라서 일본 차문화는 불교 사원 중심으로 발달하게 되었는데, 일본 안에서 차 생산량이 증가하고 다례가 사원 외부로도 보급되면서 공양용 의례용 약용으로서의 차에서 기호품으로 성격이 변화하게 되었다. 가마쿠라 무로마치 시대에 여러 형태의 다례가 공존하게 되었는데, 선종 사원의 다례와 함께 회소(會所)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즐기는 다례, 투차(鬪茶) 및 길거리에서 한 잔씩 마시는 다례(한 잔에 일전(一服一錢))도 있었다. 회소에서의 다례에서는 함께 즐기는 차 모임이 따로 발전하게 되어 ‘일미동심(一味同心)’이라고 하는 정신적 결속 형태가 되었다.
① 다례 문화의 융성
다치바나 선생님은 1351년에 그려진 ‘모귀회사(慕歸繪詞)’권 5, 제3단을 예를 들어 일본 다례 장면을 설명하셨는데, 중세 일본 회화에 그려진 차 마시는 일본 귀족들의 모습이 흥미로웠다. 다실을 체험한다는 것은 나 한 사람, 차 한 잔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마시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이 그 차를 준비하는 과정까지가 체험의 주제로 들어와 있었다. 아래 ‘모귀회사는 크게 두 부분을 나뉘는데 특히 왼쪽에서 차와 다과를 준비하는 승려들의 모습이 흥미롭다. 이들은 음다의 주체가 아니지만 그림의 중요한 주제이다. 오른쪽 차실 밖에 두 명의 승려가 게다가 차와 함께 무엇을 즐길 것인가도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침전식 구조가 기본이고, 가회(歌會)나 연가회(連歌會) 등 다양한 행사 모임에 댜응할 수도 있도록 방은 단순한 다목적 공간으로서, 이동 가능한 선반과 탁자를 함께 배치하는 공간으로 구성했다. 다다미는 방 전체에 다 깔지 않고, 일부부분만 까는 형태이다. 희소의 크기는 삼간(5,4m) 사방의 ‘구간(九間)’을 기본으로 했으며, 점차 방 전체에 다다미를 따 까는 형태로 변화해 간다.
또 난방용으로 이동 가능한 화로도 배치되어 있다. 게다가, 중요한 점으로서 차를 준비하고 끓이는 공간과 손님이 차를 마시는 공간을 분리, 별실에서 끓인 차를 운반하는 형식이 채택되어 있다.
또한, 회소에서의 차에 유희적 요소가 가미되어, 임한차(淋汗茶)와 투차(鬪茶) 등도 생겼다. 무로마치 시대 중기에 유행한 임한차는, 손님을 초대하여 증기욕을 하게 한 후, 차를 마시며 미술품을 감상하는 것이다.
한편, 신흥 무사들에 의한 ‘바사라의 차’라 불리는 도박성이 강한 모임도 유행했다. 이것은 투차라 하여 차의 산지 및 종류를 맞히는 내기를 즐기는 모임으로, 공간을 중국 수입품으로 호화롭게 장식하고 사치스런 연회를 행했다.”(자료집 280)
② 다례 전용 공간 : 도시 속 산거(山居) 다실(茶室)
일본에서는 무로마치 시대에 ‘차노유(다도)’가 성립한다. 16세기 귀족과 부유층에 한정되었던 다도가 서민층으로까지 확대 되면서, 다도 전용 공간인 다실도 탄생한다. 센노리큐(千利休, 1522~1591년 4. 21.)라는 다도의 대성은 와비차(초암의 차)라고 하는 다실을 제안했고 ‘도시 속 산거’라고 불렀다. 가상의 산촌 초암을 일상에 구현하는 것인데, 손님을 위한 최고의 접대를 와비 차로 했다고 한다. 비일상적인 소우주는 다음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손님은 누군가의 다실로 들어가기 전에, 정원을 이리저리 완상하게 된다. 다실의 입구를 ‘니지리구치’라고 하는데 매우 좁고 낮은 출입구(높이 약 66cm, 폭 약 63cm)이기 때문에 무사라도 칼을 들고 들어갈 수 없고, 그 어떤 높은 신분도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세속의 신분을 들어가는 형식을 통해 완전히 벗도록 한다. 센노리큐는 이런 형식을 고안해서 신분과 무관한 비일상의 평등함을 만들었다.
니지리구치를 통과하면 손님은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좁은 공간에서,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에 의지”하게 되고, 좁은 공간 안에서 주인과 함께 다례를 즐길 수 있다. 앞의 ‘모귀회사’에서는 여러 개의 문을 여닫을 수 있는 방 안에서 차를 즐겼다면, 센노리큐의 다실은 완전히 폐쇄형이다. 한국에서 차를 사랑방이라든가 정자에서 마시면서 넓게 외부 자연을 차와 함께 안으로 들이는 것과도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더 큰 차이는, 이 좁은 장소에서 물을 끓이고 차를 준비하는 일과 차를 즐기는 것이 함께 이루어진다는 점이었다. ‘모귀회사’에서는 차를 준비하는 일과 차를 마시는 일이 공간적으로 분리되었다. 차를 준비하는 일은 차를 마시는 쪽에서는 볼 수도 없고 볼 필요도 없는 일 즉 ‘비일상’이었다. 센노리큐의 초암에서는 다실의 비일상성을 강조하면서 원래 차문화의 비일상적인 부분을 차실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때 주인은 손님을 위해, 한때 노복이 했던 것처럼 차를 준비하게 되는데 덕분에 손님은 주인이 물을 끓이고 차를 준비하고 나중에 손님의 다완을 씻고 정리하는 일련의 모습을 다 보게 된다. 여기까지 다치바나 미치코 선생님의 설명이었다.
이는, 무사도 칼을 버리고 들어와 집안의 노비와 함께 차를 즐긴다고 하는 평등주의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일상을 떠받치는 비일상의 차원을 이용해서 다실의 비일상을 더욱 형식화한 것이다. 가장 성스러운 장소를 가장 속된 활동을 통해 만들려고 하는 시도였던 것이다.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추천 | 조회 |
1 |
[동아시아 차 문화의 성과 속(1)] 2025 국제 차 문화 학술 심포지엄(9.16) 참석기
5dalnim
|
2025.10.20
|
추천 0
|
조회 16
|
5dalnim | 2025.10.20 | 0 | 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