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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 인류학


[환동해 문명사 에세이] 변방을 새롭게 인식하기 (수정)

작성자
유나
작성일
2025-10-20 17:22
조회
27

2025.10.21/해양인류학/환동해 문명사 에세이/손유나

 

변방을 새롭게 인식하기

 

변방이란 어떤 곳일까? 구석진 시골, 낙후된 미개지, 투박한 촌스러움, 위험한 접경지대란 말이 떠오른다. 이 말들은 이미 중심의 관점에서 내린 평가이다. 공간적으로 외진 곳, 사회적으로 발전이 덜 된 곳, 문화적으로 지체된 곳이라는 인식은 대부분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다. 변경은 타자와 맞닿는 곳이니 위험이 존재한다는 판단 정도를 제외하고는 그 외에는 모두 누가 바라보느냐,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는 인식의 문제이다.

 

중심과 변방을 가르는 시선

이러한 인식은 근대의 영토국가가 만들어낸 세계관과 닿아 있다.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활발히 식민지 개척을 하던 제국들은 미개한 세계에 문명을 전파하다.’는 인식에 따라 자신들의 활동을 정당화하며 폭력을 행사를 주저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서 인종주의에 기초한 인식 위에 식민 통치를 받는 민족을 전시하는 박람회를 열어 우월한 민족이 열등한 민족을 지배해야 한다.’는 논리로 침략 행위의 당위를 주장하는 장치로 활용하기도 했다. 모두 철저하게 중심부의 논리이다.

하지만 주강현 선생님은 환동해 문명사에서 변방을 다르게 인식해야 한다고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을 빌려 말한다. “중심부가 쇠락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변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변방이 새로운 중심이 되는 것은 그곳이 변화의 공간이고, 창조의 공간이고, 생명의 공간이기 때문이다.”(10) 이 문장은 변방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다. 변방은 미개하거나 지체된 곳이 아니다. 변방은 창조와 변화의 공간이다. 중심을 자극하여 변화를 촉발하기도 하고 때로는 변방이 새로운 중심이 되기도 한다. 결국 어디가 중심이고 어디가 변방인가는 바라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결정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변방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되었다.

 

변방은 경계가 아니라 사이.

지도 위에 그려진 국경선은 단일한 선으로 그어진다. 그 선으로 인해 이쪽과 저쪽은 명확히 구분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세계에서 변방은 선이 아니라 면()이다. 변경은 경계와 경계 사이에서 서로 교류하고 겹치는 사이의 공간이다. 사람은 언제나 경계를 넘어서며 두 세계를 연결한다. 만주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만주는 청나라 시절 청나라 황실이 발생한 성역으로 여겨 사람이 거주하는 것을 금지했다. 하지만 중앙권력이 변방에까지 통제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일종의 버려진 땅과 다름없었다. 수해, 가뭄, 전란 등으로 난민이 된 사람들은 조금씩 살 터전을 찾아 만주로 들어왔다. 청나라가 쇠락하고 중앙 정부의 장악력이 약해지자 그 틈을 타서 다양한 집단이 몰려들었다. 조선인, 러시아인, 일본 개척단, 혁명가, 범죄자까지 모여들어 여러 문명과 민족이 섞이는 용광로라 불릴만한 현장이 되었다.

 

변방은 창조의 공간이다.

변방에서는 새로움이 태어난다. 다른 세계와 문화, 온갖 사람들이 서로 마주치며 화학작용이 일어난다. 이쪽과 저쪽의 세계가 섞여 두 인종과의 혼혈이 태어나고, 이주민은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며 새로운 정세청이 생겨난다.

18세기 야쿠츠크(Yakutsk)는 동부 시베리아의 수도이자, 러시아 제국이 동쪽으로 세력을 뻗어나가던 주요 거점이었다. 러시아 총독과 관리들이 거주했다. 이곳은 서양인들이 열광했던 모피 거래의 중심지였기에 모피를 파는 원주민과 러시아 상인들로 붐볐다. 더욱이 러시아는 시베리아를 유배지로 활용하면서 여러 계층의 러시아인들이 들어왔다. 버려진 채 홀로 자급자족을 할 수 없던 러시아인들은 야쿠트 부족민의 도움이 필요했고, 곧 이주 러시아인들은 노래와 러시아 정교를 제외한 언어나 자신들의 문화를 거의 잊었다. 야쿠트족 또한 전통적인 경제활동인 사냥과 어로를 잃고 러시아에 바칠 공물인 야삭(yasak)을 위해서 오로지 모피 사냥이라는 활동으로 끌려 들어갔다. 이 비슷한 일은 홋카이도의 아이누에게도 일어났다.

캄차카반도에서 원주민이던 이텔멘 부족은 순종으로서의 정체성은 거의 멸종했고, 러시아 혹은 코샤크인과 혼혈을 지칭하는 캄차달인이라는 말이 새로 생겨났다. 이들은 러시아인의 방식으로 정원 가꾸기, 동물 사육 등에 종사한다. 조선은 식민 통치를 겪으며 강제 이주로 인해 고려인이라는 새로운 부족이 탄생했다.

 

변방이 새로운 중심이 되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의 조건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중에서 인류가 당면한 가장 커다란 문제는 기후이다. 지구 온난화는 더 이상 우려가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이렇게 변화하는 조건 속에서 잊혔던 변방은 중심이 될 기회를 맞이하기도 한다. 캄차카반도가 한 예이다.

캄차카반도는 아직도 기차가 없는 가장자리의 저 끝, 미처 발전하지 못해 자연적인 삶이 존재하는 곳이다. 하지만 아직은 먼 얘기지만 미래에 북극항로가 열린다면 캄차카반도는 더 이상 변두리가 아니다. 수많은 선박과 자본이 오가는 중심 거점이 될 것이다. 그때의 캄차카는 어떤 모습일까? 주강현 선생님은 캄차카반도가 지금까지 변방이라는 증거였던 기차가 없다는 사실이 이곳이 지금까지 자연 생태를 간직할 수 있었던 가치라고 말한다. 그리고 북극항로가 열리고 수많은 배가 북극해를 오갈 때, 캄차카반도가 어떤 미래를 맞이할지 모른다고 기대하는 동시에 자연이 침탈당하는 과거를 반복할지도 모른다고 경계를 말한다. 결국 캄차카반도의 미래는 우리에게 인간과 자연이 중심을 어디에 두고,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까지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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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0-21 08:46

    늦어서 죄송합니다.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