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해양 인류학


[환동해 문명사 에세이] 표류에서 항해자로, 나카하마 만지로

작성자
진진
작성일
2025-10-20 17:52
조회
23

 

표류에서 항해자로, 나카하마 만지로

 

해류에 몸을 맡기고 바람의 힘을 이용해 길을 떠나야 하는 항해는 예측하기 어려운 수많은 변수들로 가득하다. 파도는 넘실대며 제멋대로 춤을 추고 구름은 모습을 달리하며 항해자들을 이리저리로 내몬다. 항해란 그야말로 변화무쌍하고 살아 움직이는 자연의 바다 한가운데서 나아가는 일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숙련된 항해자라도 처음의 목적지에 가닿기를 장담할 수 없으며, 바다에서는 육지와 달리 길을 잃기 십상이다. 인류가 바다로 나간 이래 수많은 항해자들을 그 위에서 길을 잃고 표류했고, 바다는 그들을 처음의 목적지와는 다른 곳으로 데려다놓았다. 표류자들은 그곳에서 절망하고 스러져가기도, 새로운 땅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길을 열기도, 다시 적극적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했다.

환동해 문명사는 한반도와 극동의 러시아, 중국의 동북부, 일본으로 둘러싸인 환동해를 무대로 살아간 생명들과 그들이 실어 나른 문명에 관해 이야기한다. 여기에는 예정된 길을 무사히 오가며 관계를 지속해간 이들도 있었지만, 바다의 변덕이 만들어낸 길 잃은 미아들도 있었다. 나는 그들 중 한 명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나카하마 만지로中浜萬次郎(1827~1898)는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생업에 뛰어들어 열여섯 살에 출항했다가 조난당해 표류하게 된다. 살아남은 동료들과 약 140일을 섬에서 지내다 미국 포경선에 의해 구조되어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을 구조한 포경선의 이름(존 하울랜드 호)을 따 존 맨(John Man)으로 이름을 바꾸고 미국식 교육을 받고 서양의 문물을 익혔다. 10년 만인 1851년에 귀국한 그는 1853년 막신幕臣이 되어 번역, 군함 조련, 영어교수 등의 일어 했으며,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가이세이 학교開成學校의 영어교수가 되었다,

만지로 일행이 조난당했을 당시 일본의 막부는 쇄국정책을 펴고 있어서 배는 일본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구조된 다른 동료들이 중간 기항지였던 하와이에서 머물고자 하였던 것과 달리 선장을 따라 미국으로 가기를 원했다고 한다. 배에서 그는 적극적으로 일하고 배우며 그들에게 동화되었으며, 선장과 선원들도 그가 마음에 들어 미국으로 함께 가 교육받기를 권유했던 것이다. 만지로는 미국에서도 영어, 수학, 측량, 항해술 등 서양문물 익히기에 열심히였으며, 이때의 습득한 기술 들이 나중에 귀국 후 일본의 태평양 진출에 이용되기도 한다.

책은 만지로의 삶을 통해 시대의 중심이 환동해에서 태평양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나는 그 흐름 속에 내맡겨진 만지로라는 표류자를 좀 더 들어다본다. 미국에서 인간적으로 그를 맞이해주는 이들도 있었지만 많은 이들이 그를 차별하고 무시했다. 그는 그 속에서 교육받고 기술을 익히며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자립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이때 만지로의 삶은 표류자의 위치에서 시작해, 동양인에서 서양인으로 모습을 바꾸며 자신을 이익을 적극적으로 취해가는 항해자로 살아간 것처럼 보인다. 항상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있었던 그는 10년 후 미국인의 모습으로 일본으로 돌아온다. 1853년 미국 페리의 일본 내항 이후 일본은 개항하게 되고, 만지로는 일본의 개항과 태평양 진출에 번역과 조선술, 항해술 등을 제공하며 일조하게 된다. 당시 그는 자신을 시기 질투하던 일본 사람들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매우 조심했다고 한다. 이때 만지로의 삶은 일본의 쇄국에 순응하고 미국의 태평양 진출이라는 당시의 흐름에 봉사하며 이끌려온 것처럼도 보인다. 이후 정치의 권유도 있었지만, 교육에 몸담았으며 겸허하게 살아갔고 빈민구제에도 헌신적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종종 삶을 항해에 비유한다. 인생은 내가 목적한 대로 흘러가지 않고 수많은 변수들이 예상치 못하게 들이닥치며 우리를 곳곳에서 표류하게 한다. 블루 머신의 헬렌 체르스키는 그저 바다의 흐름에 몸을 내맡기고 흘러가는 표류자와 그 흐름의 패턴과 변화를 읽고 자신을 바꾸어냄으로써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항해자를 구분한다. 우리 삶은 부분적으로는 표류와 항해를 반복하지만, 누구나 항해자로 자신의 삶을 일구어가길 희망하지 않을까. 스펙타클한 만지로의 삶을 통해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면서도 자신을 교육자로 자리매김하고자 했던 한 항해자를 본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