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인류학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마네] 마네, 변신의 우연한 매개자
『조르주 바타유–마네』/25.10.21/오켜니
1. 마네, 변신의 우연한 매개자
그렇다면 마네라는 사람은, 일종의 변신의 우연한 매개자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마네는 토대들이 서서히 변화를 완수하고 있던 어떤 세계의 변화에 참여했다.(『조르주 바타유–마네』,p227)
마네는 울부짖지도 않았고, 자아를 부풀리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그는 진정한 무기력 속에서 찾아 헤맸다. 누구도 무엇도 그를 도울 수 없었다. 이 탐색 속에서, 오직 비개성적인 고통만이 그의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그 고통은 고립되어 있는 화가 혼자만의 고통이 아니었다. 이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조롱꾼들마저도 이 인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조롱꾼들을 격분하게 했지만 나중에는 그들 내면에 열리게 될 텅 빈 공간을 채워줄 것이었다. 마네는 이렇게 역설적인 형태의 기다림에 응답했다. 그는 고정관념이나 어떤 개성적 이미지에 사로잡힌 사람, 즉,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매번 다양한 각도로 자기만의 개성적 이미지를 발견해내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사람과는 정반대였다. 마네가 찾아 헤맸던 대답은 그 자신에게만 개인적으로 건네질 수 없는 것이었다. 마네는 오직 새로운 형식들의 세상에 침투함으로써만 자극받을 수 있었다.(p234)
바타유는 마네를 ‘보들레르처럼 자기 내면의 무엇을, 뭐라 말할 수 없는 충만하고도 강인한 무엇을 지니지 못한’ 사람으로 표현한다. 보들레르는 자신의 시대가 산업 시대의 광기를 누르고 윤리의식과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의 시대에 고대의 위엄들이 소환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보들레르가 예술의 저물어가는 영광에 대한 애착을 품었다면, 마네는 ‘어둠 속에서, 주저하면서, 이전 예술의 몰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출구’를 찾아 헤맸다. 마네는 보들레르에 비하면 존재감이 없었다. 바타유는 마네의 자기 확신의 결여와 일관성 없음을 마네가 ‘비개성적’ 특징을 가졌다고 표현한다. 바타유는 마네 그림의 특징이 자신의 감성이나 주관을 개입시키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보들레르 예에서 보면 ‘과거 예술의 영광에 집착하는’ 자신만의 감정이나 주관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네에게도 어떤 방향성은 존재했다. ‘그를 불만족 상태로 남겨두고 그를 소진시키는, 그를 초월하는 그 목적을 마네는 힘들게 품고 있었다.’ 마네 자신이 가려는 길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을 초월하려는 목적을 품고 있었다.
바타유는 마네를 ‘변신의 우연한 매개자’로 표현한다. 마네에게 거대한 자아가 있어서, 자신만이 독특하게 추구하는 목표가 있어서 마네가 현대미술의 문을 열어젖힌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것이 아니다. 마네는 세계의 토대들이 바뀌는 어떤 변화에 비개성적으로 참여했다. 바타유는 마네를 결정되고 응고된 정체성의 모습으로 그리지 않는다. 마네는 자아가 강하지 않았고, 일관성이 없고 충동적이었으며 대중의 눈치를 보는 나약한 모습이었지만 그런 비개성 속에서 세계의 변화에 민감하게 융합되었다. 역설적이지만 조롱꾼들은 마네와 마네의 작품을 기다려왔다. 마네는 조롱꾼들이 세상과 인간에 대해 어렴풋이 느꼈음직한 것, 하지만 아직 표현되지 못한 것과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것, 솔직하지 못한 사회상에 대해 그렸다. 회화의 죽은 표현들에 익숙했던 조롱꾼들은 처음에는 마네에게 격분했지만 마네와 그림으로써 소통했다. 마네의 그림은 조롱꾼들의 가슴 한 켠을 열어젖혔다.
2. 마네를 표현하는 ‘미끄러짐’
○ 마네는 혼란을 일으키는 사람이지 타인을 만족시키려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심지어 실망시키려고 애를 썼던 사람이다. 그는 캔버스가 그에게 준 재현의 가능성을 반박한다. 그는 그 가능성을 붓 아래에 쥐고 있지만, 가능성은 붓 아래에서 뒤로 피해 물러난다. 더욱 열에 들뜬 그의 손은, 이미지들의 예측된 질서를 흩뜨리고 추월하는 우연의 탐색과 엮인다. 그보다 더욱 삐딱한 탐색을 싣고, 더욱 다채로운 전복의 양상을 보여준다.(p297)
○ 이 기법들은, 기대했던 대상이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순간으로의 미끄러짐을 돕는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면, 예상 밖의 자극이거나, 부여된 의미작용으로부터 독립적이 된 순수하고 몸시 날카로운 진동이거나.(p298)
○ 즉각적인 의미가 소실되는 미끄러짐을 의도한다는 말은, 주제를 무시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희생제의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대목이다. 제의에서 희생물을 해치고, 파괴하고, 죽이지만, 희생물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결국 마네의 작품들에서 주제는, 파괴된다기보다는 초월된다. 주제는, 알몸을 내보인 회화를 위해 제거된다기보다는 바로 그 회화의 알몸 속에서 아름답게 변모된다. 마네는 주제들의 특색 속에서 팽팽한 탐색의 세계를 아로새겨 놓았다.(p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