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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 인류학

 

[마네] 말보다 강력한 침묵

작성자
이성근
작성일
2025-10-21 17:58
조회
18

수요인문공간세종 대중지성/4학기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마네씨앗문장/ 2025.10.22.() / 이성근

 

말보다 강력한 침묵, 가장 감정을 안드러낼 때 감정이 가장 크게 드러난다

 

그의 걸음걸이에는 리듬이 있었는데, 걸을 때 몸을 흔드는 모양에서 색다른 세련감이 느껴졌다…(중략)…그 정도로 매혹적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중략)…그에게는 평정심이 결여되어 있어서, 자기 친구와 결투를 할 정도였다. ( 223-224p )

 

마네의 소극적이고 소심한 성격이 장애물이었다…(중략)…남들을 놀랠킬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그를 망가뜨렸고, 그는 그런 불안 속에서 조용히 좌절만 느꼈을 뿐이이다…(중략)… 이 반항적 화가는, 세상을 사랑했으며, 여인들의 칭송과 살롱에서의 환영을 항상 꿈꿔왔다. 마네는 이처럼 무거운 자아 비대증을 상쇄시켜야했다…(중략)…자신의 동류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야말로, 예술가로 하여금 병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 229-230p )

 

(보들레르) 시인과의 만남을 통해아마도어렴풋이 자극을 받은 마네는 어둠속에서, 주저하면서, 이전 예술의 몰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출구를 찾아 헤맸다…(중략)…이 탐색 속에서, 오직 비개성적인 고통만이 그의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 234p )

그동안의 예술이 오직 신권과 왕권의 추모와 전통의 수호 속에만 찬양되었을 때,

대중들은 알 수 없는 답답함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들은 위대한 라스코인들이 창안했

던 역동적인 변화가 담긴 예술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왜냐면 아무리 우주에서

아름다운 것이라 평가받던 것도 결국 시간 앞에서는 무력하다. 끝없는 세상의 변화를

이해하고, 그것을 예술로 담을 때, 인간은 초월의 길로 들어선다. 마네는 여기에 조용

히 침묵으로 냉철하게 말없이 대응했다.

나는 여기서 마네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도, 수천년간

이어온 세상의 구속과 불변의 법칙, 권태에 함부로 저항하다가는 뼈도 못 추린다. 중요

한 것은 어떤 보이는(물질적인, 감각적인) 저항을 때에 맞지 않게 하다다, 도리어 기존

세상의 텃세를 더욱 공고히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조용히 주제

파괴했다.

 

마네로 인해 펼쳐진 회화의 어떤 새로운 형식은, 이전에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

었으며, 오직 에두아르 마네의 기이한 반발심과 무모하고도 불안에 찬 탐색을 통해서만 다다를 수 있는 것이었다. 마네, 포즈에 무질서를 도입했던 화가 말이다. ( 245p )

 

참이든 거짓이든 모든 웅변적 요소들은 제거되었다. 남은 것은 서로 다른 색체들이 찍힌 얼룩들과 주제에 대한 어떤 감정에서 비롯되었음이 틀림없는 혼란스러운 인상뿐이다. 이것이 부재에서 오는 기묘한 인상이다…(중략)… 이 색채들은 노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주제의) 부재로부터 발산하되는 무거운 충만함이 관람자의 시선을 사로잡아 채우고 있다. 이러한 충만함과 무게감이야말로 아마 현대 인간이 묵묵히 주권적으로 존재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리라. ( 252p )

 

오늘날 우리가 이런 위엄있는 이미지들 속에서 식별해내는 것은 더 이상 우리들 눈에 정치적이거나 신화적인 구조들에 따라 규정된 위엄이 아니라 , 모든 정치적 의미작용과는 상관없는 위엄으로 여겨진다. 이렇듯 마침내 단순해진 위엄은,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로운 개개 인간의 위엄이며, 이것이야말로 가능한 형태들의 무한한 유희다. ( 257p )

저자가 마네의 그림에서 느끼는 무거운 충만감이란 무엇인가? 막시말리안 황제의 처형를 처음 보고, 나는 그저 아무 느낌이 없었다. 사실 현장에 있으면, 굉장히 충격적인 장면인데도 말이다. 특히 뒤에서 총을 검토하고 있는 군인의 얼굴에는 아무펀 표정이 없다.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이다. 어떻게 인간인데 사람을 죽이고 있는데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지? 이것이 마네가 역설적으로 일깨우는 인간의 위엄이 아닐까. 인간은 존엄성은 그 자체로 신성하다. 그러나 이것이 기존의 썩고 문드러진 규율 앞에서는 어쩔수없이 생존에만 기대서 사는, 무감각한 군인이 나올수도 있다. 바로 옆에서 절규하는 죽음이 나의 일과는 하등 상관없는 태도를 마네는 무심히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에게 알 수 없는 불편함을 준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때론 침묵이 훨씬 더 무서운 법이다. 아니, 침묵이 가장 강력한 표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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