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인류학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마네] 의미를 지우고 감각하기
의미를 지우고 감각하기
마네는 「올랭피아」로 인해 군중들의 비웃음을 샀고 비평가들과 화가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올랭피아는 매춘부라는 뜻이다. 매춘부의 나신을 그린 그림이 왜 군중들의 분노를 샀을까? 당시 사람들의 회화에 대한 관념과 대중들의 취향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이전의 회화에는 자율성이라고는 전혀 없었고, 회화란 군중에게 이해 가능한 총체를 제시해 주는 위엄 있는 축조물의 일부분일 따름이었다.’
「올랭피아」가 참고한 작품은 「우르비노의 비너스」다. 회화에서 나신은 아름다운 여신을 그리는 것이었는데, 매춘부의 나신은 당대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발레리의 말처럼 “사교계의 비참한 비밀의 위력이자 공공연한 현존”이 공적인 무대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는 「올랭피아」를 보고 “완벽하게 빚어진 외설이다. 그녀가 취한 자세는 정숙함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천진난만함을 요구한다….그녀는 대도시의 매춘 풍습과 노동 속에 숨겨져 있는 원시적 야만성과 제의적 동물성을 간직한 그 모든 것들을 꿈꾸게 한다.”라고 읽는다. 그러나 바타유는 「올랭피아」 “그림이 의미하는 것은 텍스트가 아니라, 그 지워짐이다….. 발레리가 말한 것을 마네는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도리어 그 의미를 제거해 버렸기 때문에–이 여인이 거기 존재하는 것이다….그녀의 벌거벗음에서는 침묵이 발산한다. 「올랭피아」의 존재 자체는 그 현존에 대한 신성한 공포다. 이 현존의 단순함은 부재의 단순함이다.”라고 읽는다. 이것이 바타유가 마네의 그림을 현대회화의 탄생이라 말하는 이유이다. 현실이나 위엄을 표상하던 이 전의 회화에서 주제를 소거하고, 그림 앞에서 관객이 직접적으로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마네는 이전 시대 회화가 그렸던 숭고함이나 위엄에 대한 주제를 파괴하고, 의미를 지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타유가 제시하는 주권성(主權性)이 마네에게 있었기 때문일까? 마네는 중학교 시절 그림을 시작할 때부터 “자기 시대를 살고 자기가 본 그대로” 그려야 한다고 항변했다. “무엇에도 예속되거나 종속되지 않음”으로써 마네는 당대의 분노한 대중들과 비평가들의 비판에 괴로워하고 불안해하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타협하지 않았다.
바타유의 주권성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게 잡히지 않지만, 주권성을 실현하는 존재로 마네의 예술 활동을 설명하고 있다. 시대의 관념과 관습에 그리고 이성과 합리에 포획당하지 않고, 직접 감각하고 경험해 보는 것으로 주권성을 모방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