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인류학
[마네] 메모
종교인류학 4학기/조르주 바타유, 『마네』 /2025.10.21 박서영
중세시기에 예술은 교회나 왕의 위엄과 권위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그 시기에는 예술이 표상만 할 뿐 창조할 수 없었으므로 당연히 주권적 존재를 표현할 수 없었다. 신분질서가 무너지고 상업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하면서 새로운 특권층이 된 부르조아지 내에서 예술은 두 갈래로 나뉘게 되었다. 하나는 텅 비어버린 전통을 수호하려는 자들이었고, 또 하나는 이 전통을 부정하려는 자들이었다(p255). 하지만 이때의 부정이 주권성의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바타유에 따르면 주권성은 예술의 침묵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었고 그것을 실현한 이가 에두아르 마네였다.
2만여년 전 프랑스 남서쪽에 소재한 동굴에서 라스코인들은 동물 그림을 통해 속(俗)의 세계와 성(聖)의 세계가 만나는 순간을 표현했다. 그리고 150여년 전 프랑스 파리에서 에두아르 마네는 「올랭피아」를 통해 규약에서 해방된 인간다움을 표현함으로써 폭력적으로 속(俗)의 세계를 부정했다. 마네가 부정한 것은 회화라는 신성한 영역 속에서 완성된 위반이었다.「올랭피아」는 순수한 상태 그대로의 매력을 정밀하게 표현함으로써 실존만이 지닐 수 있는 매력을 느끼게 하는데(p270), 이 또한 라스코인들이 동굴벽화에서 동물들을 자세히 묘사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바타유는 마네의 작품들을 비개성적, 회화의 침묵(의미의 소거, 주제의 파괴), 부재(지워짐, 사실주의), 지고의 무심함 등의 용어를 사용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에밀 졸라, 샤를 보들레르, 프란시스코 고야 등의 예술세계와 마네의 세계를 비교해서 설명하기도 한다. 고전파에서 낭만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로 이어지는 미술사조에서 마네가 중요한 이유를 성(聖)과 속(俗)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이 새로웠다. 그리고 바타유가 끊임없이 거론하는 주권성과 실존의 관계를 마네를 통해 이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