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인류학
제주기행(신과 함께)
신과 함께
회천동 화천사에 얼굴 닮은 자연석으로 모셔진 다섯 미륵이 있다. 마을에서 모셔지던 미륵불이 훗날 사찰로 접수된 것이다. 미륵은 제주도 신앙의 비승비속(非僧非俗) 속성을 말해주는 징표다. (주강현, 『제주기행』 도서출판 각Ltd, 2021, 306쪽)
사람들은 제주도를 ‘신들의 고향’이라고 말한다. 제주도는 1만8천 신과 더불어 살아가는 섬이었기 때문이다. (같은책, 341쪽)
바람부는 제주에는 돌도 많고 잠녀도 있고 숲도 있다. 그리고 제주는 ‘신들의 섬’이다. 현재 천주교 교세를 무시할 순 없지만 육지에 비하면 전반적으로 낮은 편이라고 한다. 이는 제주가 비승비속(非僧非俗)적 불교, 저자가 일컬어 정규신앙이라고 하는 무속 등 제주 어디에나 존재하는 신 때문이다. 즉 제주의 신은 마음 깊이 뿌리내린 토착신앙인 무속에 비승비속적 불교가 제주민 마음 깊은 곳 이리저리 얽혀서 그 토대를 이루고 있다.
제주 토착 신앙은 역사속에서 유교 지식인들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공격을 받았으나 마치 뿌리깊은 나무가 바람에 아니 흔들리듯이 지금도 꿋꿋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물론 유교적 교화가 일부 성공한 측면도 있는데 포제라는 독특한 제의가 그것이다. 포제는 생산, 토지 생업 등 제반사를 관장, 보호하는 신을 모시는데 당굿이 무속식이라면 포제는 유교식이다.
그렇다면 제주 사람들에게 ‘태초의 뿌리’였던 신당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뱀신이 있다. 뱀신이 정좌한 당은 토산당, 광정당, 김녕의 굴당, 고산리 본향당 등인데 대부분 여드렛당이다. 여드렛당은 제일이 매월 8일, 28일로 모두 토산당에서 가지를 쳤다. 집안에서는 칠성신으로 좌정하며, 집집마다 뒤뜰, 혹은 울타리 안의 구석진 곳에 칠성눌이라는 띠로 엮어진 주저리를 만들어둔다. 뱀신의 제단이자 처소를 뒷할망이라 부른다. 뱀신 역시 외부인들에게 끈질긴 비판의 대상이었다. 농작물이 귀한 제주도에서 쥐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나온 뱀에 대한 보호책을 신앙화시킨 결과라는 주장은 주목할 만하며, 제주뿐 아니라 서아프리카 여러 나라에도 뱀신앙이 존재한다. 이들 나라에서도 뱀은 곡식의 수호신이자 재생, 풍요의 상징으로 숭배되었다. <탐라지>에서도 ‘이 지방에는 뱀과 독사, 지네가 많았다’고 나와 있으니 이하 신령이 깃든 나무에 헌납하는 물색, 신구간(新舊間)의 선포, 치병의례 등을 생태적 측면에서 접근하자는 저자의 설명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신령이 깃든 나무는 마을신이며 손상을 입혀서는 안되고 금기의 대상이다. 개인의례를 통하여 지전이나 물색을 헌납하는데 신목에 걸어두는 물색은 신에게 바치는 최대의 예우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 역시 교회의 공격을 받았다. 또한 제주도에는 천년 전통의 입춘굿이 있는데 24절기의 마지막인 대한 후 5일부터 입춘 3일 전까지 1주일간 신구간(新舊間)이 선포된다. 신구간은 일 평균기온이 5°C 이하에서는 대부분의 미생물 증식이 중단되어 세균 번식이 위축되기 때문에, 변소 개축이나 집수리를 해도 위생상 별 탈이 없었는데, 이것은 방역이 허술하던 시절에 합리성과 생태성에 기반한 방역 내지는 시설보수가 아닌가. 1970년대 새마을운동 와중에 신구간을 6대 폐습의 하나로 정하고 청산운동을 폈으나 쉽게 폐지되지 않았다고 한다. 끝으로 저자의 치병의례에 대한 주옥같은 설명이 계속된다. 굿판은 병마와의 한판 싸움터이기도 한데 큰굿은 마당에 큰 대부터 세우고 좌우에 작은 좌우돗기를 세우고 간단한 기메(굿하는 제청에 종이를 오려 장식용으로 사용하는 것) 고사를 한 후에 악기를 울린다. 큰 대는 하늘과 땅을 가장 가까이 잇는 신이 내려오는 길이라고 한다. 심방이 의례 집행자가 되어 행하는 굿 형식, 비념 형식의 넋들임이 있다. 굿판에서 망자의 넋을 부르는 영게울림이 시작되면 산 자와 죽은 자는 잠시나마 하나가 되어 교감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산자의 고단함과 죽은 자의 한이 함께 위로받는 느낌을 받았다.
세계사적으로 신과 신화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너무 오랜 세월 동안 제주의 신들은 타자들의 잣대로 비판받고 억압 되어왔다. 저자 주강현 선생님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자연 조건에 부합되는 생태적 선택이 존재했으며, 영혼과의 교감도 수많은 선택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신과 신화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이제 우리가 그 신의 역사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곧 스스로를 인정하고 존중 받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