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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 인류학


[제주기행](2) 제주, 신과 인간이 함께 짓는 집

작성자
조재영
작성일
2025-11-03 16:52
조회
23

제주, 신과 인간이 함께 짓는 집

 

 

 

제주 신앙의 생태적 지혜

제주는 왜 이토록 ()적 존재에게 의지하는가? 무엇보다 인간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거대한 힘과 맞서 살아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육지보다 훨씬 더 바람과 바다에 의존적인 섬의 생활은,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신적 존재를 필요로 했다. 이러한 신앙은 생존을 위한 절실함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외부의 시선에서는 그 맥락과 서사가 지워진 채 단지 결과물로만 소비된다. 결국 그들의 신앙은 미신으로 치부되며 타자화된다. 주강현 선생님은 제주기행에서 이런 외부의 시각을 비판하며, 제주 신앙을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전통 생태적 지혜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문득 이 생태라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들었다. 그 어원을 찾아보니, ‘생태(Ecology)’라는 말은 그리스어 oikos(, 거주지)logos(이야기, , 학문)에서 나왔다고 한다. 살아 있는 존재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집(거주지)의 질서 혹은 그 집의 그 이야기를 다루는 학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주라는 집, 거주지에서 살아가기 위해 그 안에 생명체들이 관계를 맺는 여정에서 터득한 지혜를 담고 있는 것이 제주의 토속 신앙이 아닐까. 제주의 토속 신앙은 절대 신에게 염원하는 종교적 행위라기보다, 자연과 인간, 보이는 존재와 보이지 않는 존재가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방식, 생태적 삶의 기술이었다. 그렇게 보면 제주 사람들은 인간의 경계 안에서만 세계를 인식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삶의 관계망 속에 비인간 존재들바람, , , 동물, 영혼, 을 포함시켜 살아왔다.

 

뱀신앙

뱀신앙은 제주의 지형·생태환경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었다. 주강현 선생님은 뱀신앙이 농작물이 대단히 귀한 제주도에서 쥐 피해를 줄이기 위해 나온 뱀에 대한 보호책을 신앙화시킨 결과라는 일각의 주장’(316)을 권하고 싶다고 말한다. 화산섬이라는 지질구조, 그리고 바다와 맞닿은 섬이라는 조건 아래에서 뱀은 쥐를 잡고 작물을 보호하는 역할, 껍질을 벗고 재생하는 몸의 속성 등으로 인해 풍요·장수·수호의 상징이 되었다. 뱀은 집안의 가신(家神) 혹은 마을당(堂神)의 형식으로 신격화되었다. 뱀을 당신(堂神)으로 모시는 집안이나 마을에서는 뱀이 보이면 추방하지 않고, 오히려 존중하며 뱀이 와서 이 집을 지킨다는 믿음이 일상생활에 스며있었다.

 

물색(物色)

물색을 문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물건에 입힌 색, 색을 입힌 물건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마을 제의(祭儀)의 맥락에서는 비인간 존재, 신령 또는 조상들과 맺는 관계를 상징하는 기표이기도 하다. 신당에서 적색·황색·녹색 등의 색천이 걸리거나 바위·신목(神木)에 색을 입힌 물건이 배치되었다는데, 이는 그 신당이 모시는 신령과의 관계를 시각화하고, 그 관계를 통해 마을의 안녕을 기약하는 장치였다. 섬이라는 특수한 지형과 생존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바람·바다··물과 같은 자연조건과 어떤 식으로든 함께 살아야만 했고, 이 과정에서 물색은 자연과 인간, 그 관계 사이의 중개자가 되었다. 제주 사람들은 보이는색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자연과의 관계를 가시화 했다. 물색을 단순히 미신적 색채문화로 외면하기보다는, 그것이 내포한 생태적 관계로 읽어야 한다.

 

신구간

제주 사람들에게 신구간신이 쉬는 기간’, 즉 신들이 인간 세상에서 한 발 물러나 휴식과 이주를 하는 시기를 뜻한다. 보통 ‘24절기의 마지막인 대한 후 5일부터 입춘 3일전까지 1주일간’(321)을 말하며, 이때 신들은 자신이 모셔진 제당에서 잠시 떠나 하늘로 올라가거나 바다 건너로 이동한다고 믿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신이 집을 지켜보지 않기 때문에, 평소 금기시되던 행위들을 마음껏 할 수 있다. 신구간에는 신이 보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인간사 변화를 보다 자유롭게 시도하는 것이다. 해서 그 일들이 비교적 신 앞에서는 께름직할 수 있는 일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예를 들어 이사, 집수리, 대청소, 집안 구조 바꾸기, 묘 정비 등이 바로 이때 이루어진다. 다른 시기에 이런 일을 하면 신의 노여움을 사거나 집안이 불안정해진다고 금기시한 일들이다.

재미난 것은 이 이들이 제주의 생태, 기후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다. 신구간은 일 평균 기온이 5도씨 이하로 내려가는 유일한 기간’(323)으로 대부분의 미생물 증식 중단된다고 한다. 해서 위생상 문제가 되어 못했던 변소 개축이나 집수리를 해도 별 탈이 없었던것이다. 섬의 사람들은 이 짧은 신의 부재 속에서, 인간으로 그 나름의 새로운 삶의 질서를 준비하고, 자신들의 (oikos)’을 새롭게 정비한다.

 

치병의례

치병 의례란, 인간이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자연·초자연적 존재들과의 관계 속에서 질병이 발생했다고 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행되는 의례적 행위이다. 제주에서는 이러한 의례가 무속(巫俗)이나 민간 신앙의 형태로 오랫동안 이어져 왔으며, 질병을 신의 징표나 비인간 존재의 개입으로 해석하고 이를 돌보기 위한 장치가 되어 왔다.

넋들임은 우리 몸이 단순 육체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혼’(325)이라는 믿음을 반영한다. 몸속에서 넋이 빠졌거나혹은 귀신이 들었다는 생각은 질병의 원인을 인간의 물질적 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자연환경이나 자연의 영혼들과의 관계망 속에서 찾게 한다.

자연환경과의 밀접한 생태적 관계 속에서 생존했던 제주에서는 바다·바람·돌 등 물질이 단지 배경이 아니라 질병과 생존, 관계망 속 주체로 작동했다. 따라서 치병 의례는 단지 질병 = 신체 문제라는 인식이 아니라, 인간자연신령이 얽힌 관계적 문제로서 다루어진다.

 

제주의 신앙은 단순한 믿음이나 미신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함께 짓는 생태적 집의 질서였다. 뱀신앙에서 물색, 신구간, 치병의례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사람들은 언제나 세계를 관계의 망 속에서 이해하고 살아왔다. 그들에게 신은 현실을 초월한 존재라기보다, 바람과 돌, 물과 불, 병과 몸에 스며있는 인간인 우리와 함께 살아 있는 관계자였다. 제주 신앙의 근원은 인간이 자연에 예속된 약한 존재라는 체념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감응 기술이었다. 제주는 신과 인간, 그리고 비인간 존재들이 관계 맺으며 한 집(oikos)을 짓는, 살아 있는 생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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