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인류학
[제주기행(2)] 섬나라 제주
섬나라 제주
“조선시대에 제주도는 고대 탐라의 해양 세계를 상실한다. 동아시아를 나다니던 대양 항해술이 있었던가 싶게 졸아붙는다. 그 주범은 이름조차 요상한 출륙금지령. 출륙 금지는 제주인과 외부 세계의 교류를 금지시켰던, 제주역사에서 실로 엄청난 사건이었다.”(344쪽)
“이러한 봉쇄 정책은 포작인이 가족을 거느린 채 떠도는 해상활동을 택하여 제주도에 정착하지 않자 조공 및 부역, 군복무 인력이 턱없이 모자라는 데 따른 궁여지책이었다. 단순 인구 유출에 대한 대책이라기보다는 인구감소로 발생하는 국가 재정의 감축에 따른 우려 때문에 시행되었다. 다수의 남자가 탈출한 조건에서 여성들은 바다에 뜬 감옥에 볼모로 잡힌 신세가 되었다.”(345쪽)
제주 항구의 사진들을 보면서 왜 제주에는 돛이 달린 큰 배가 없는지에 대한 질문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오래 전부터 섬으로 타지역과 교류를 하기 위해 배가 사용되었을 것이다. 『제주기행』의 주강현 선생님에 의하면 역사 속의 제주는 ‘원이 탐라총관부를 두었다고 언급하는’ 데서 탄생한다. 하지만 「삼국유사」에서 탐라는 신라를 위협하기도 하고, 「고려사」에서는 송과 교역하고 배를 건조하여 고려에 제공할 정도로 막강한 해상력과 조선술을 가진 독립 세력이었다. 근대 국민국가의 역사관 아래 탐라국의 역사는 소멸되었다.
이보다 더 안타까운 현실은 조선에 이르러 제주의 위상이다. 조선시대 제주는 유배지로서 역사서에 자주 등장한다. 이런 제주의 이미지는 『환동해 문명사』를 통해서 본 울릉도, 독도와 비슷했다. 국민국가의 영토 확립이라는 목적 이전의 조선은 울릉도와 독도에 발생하는 해적질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편으로 사람이 살지 못하게 했다. 지금 독도의 영토권을 주장하기 위해 군사력을 배치하는 등의 노력과 정반대의 모습이다. 제주도 마찬가지다. 국가는 제주의 독특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며 관광지로 홍보한다. 이런 제주가 조선시대에는 본토의 내부 식민지 역할을 했다고 하니 제주가 가진 역설적 상황이 흥미롭게 여겨졌다.
그러고 보면 본토와 떨어진 ‘섬’이라는 제주의 지형적 특징은 다양한 이야기와 문화를 만들어냈다. 제주가 가진 해양력을 통해 바다 고속도로의 한 기점으로 바다 건너 다양한 생명과 문화가 들어오기도 했지만, 그 길을 끊어버렸을 때 제주는 고립되기도 했다. 그 고립으로 중심의 본토와는 멀어져 고유하고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기도 했다. 주강현 선생님은 제주의 역사를 살펴볼 때, 이러한 변방으로 복잡한 위치에 있는 제주의 관점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