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인류학
[종교이론] 발제문 수정본
수요 종교 인류학 /종교이론(조르주 바타유) 발제 /2025.11.4 /박서영
예술을 통한 신성의 회복
창조, 파괴, 유지의 질서 속에서 파괴되는 것은?
인도의 힌두교에는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신들이 존재한다. 그들 중 대표되는 신이 창조의 신(브라흐마), 파괴의 신(쉬바), 유지의 신(비슈누)인데 이들은 세상이 순환하기 위해 창조하고 유지하고 파괴한 후 새롭게 재창조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 세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 세상과 신들의 세계를 아우르는 것이다.
바타유의 종교이론에서는 세상을 사물의 세계와 신성의 세계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그리고 나는 인간이 만든 사물 세계의 파괴를 통해 잃어버린 신성의 세계가 회복되고 재창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물의 세계와 신성의 세계
바타유에 의하면 현실세계는 인간이 조성한 ‘사물의 질서’로 이루어진 세계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도구는 인간으로 하여금 ‘나–아닌 것에 대해 눈을 뜨게 하였다(p35). 이 때 도구는 제조한 사람의 정신에서 분리됨으로써 세계로부터 연속성이 단절된 사물이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은 세계를 외재성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인간만이 도구를 통해 대상을 ‘포착 가능한 지속의 시간’속에 위치시키게(p26) 된 것이었다.
이에 반해 동물은 먹고 먹히는 관계 속에 잠겨 있을 뿐 특정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는데 바타유는 이를 ‘내재성’(연속성, 흐름 속에 존재)이라고 하였다. 내재성속에 존재했기에 동물은 지속을 추구하지 않았고, 동물에게 현재 외에 다른 세계는 없었다. 내재성에 순응함으로써 다만 존재할 뿐이었던 동물과 달리 내재성과 단절되었던 인간은 존재 자체가 목적일 수 없게 되었다. 도구의 세계(사물의 세계)에서는 도구 자체가 목적일 수 없었고, 도구(사물)는 유용성의 차원에서만 목적성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성한 세계를 보게 하는 것은 연속성 위에서 가능했기에 자연히 인간은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바타유가 제시한 사물의 질서로 이해하면 절대적 존재, 초월적 존재로서의 신 역시 인간에 의해 한계 지워진 사물에 불과했다. 인간 의식 밖의 외재성 속에 개별자로 존재하는 불완전한 사물이 신이었고, 인간이 만든 신의 세계 테두리를 벗어난 세계가 속세가 되었다. 이때의 성과 속은 인간이 한계 설정을 하여 만들어 놓은 세계일뿐이었다. 바타유에 의하면 ‘현실적 근거가 없는 신화적 정신들이 곧 신이요, 육체적 현실에 종속되지 않는 정신이 신이며, 또는 신적’이었다(p47).
제사와 축제 – 파괴
바타유에 의하면 제사와 축제는 모두 사물의 세계(=유용성의 세계=도구의 세계)에서 사물들 간의 종속관계들을 파괴하여 내밀성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기존에 조성되어 있던 사물의 세계를 파괴하는 것이 축제였다면, 사물의 세계에서 내밀한 세계로 옮겨가는 행위가 제사였다. 제사와 축제에서 내재성에 몸을 던지는 인간은 라스코에서 동굴벽화를 그렸던 이들처럼 인간성을 상실하여 동물들처럼 무의식적 내밀성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사물이 되지 않고는 인간이 될 수 없었던 인간은 다시 동물의 무의식으로 돌아가지 않고는 사물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제사와 축제에 비해 종교는 사물의 질서를 그대로 답습하여 도덕적 제한을 두는데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종교 안에서 도덕적 규칙들이 사물의 질서를 보장하는 역할을 하게 되면서 점차 도덕과 이성이 신성화되기(사물화되기) 시작했다.
예술 – 창조 : 사물의 인간에서 내밀한 자아로
바타유는 사물의 세계에서 내밀성과 현실이 분열되었고 분열된 현실 속에서 다시 인간이 분리되었다고 하였다. 신적인 삶은 즉각적인 것이었다(동물적 내면성). 자아란 아무것과도 분리되지 않은 내밀성이었기에 내밀한 실존을 고정시켜서는 자아의 실현이 불가능 하였다(p109). 따라서 분리되어 잃어버린 내밀성은 사물의 세계에서 벗어날 때 회복 가능했다.
책을 읽으며 제사와 축제를 통해 파괴된 사물의 세계에서 예술을 통해 일상에서 신성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신성의 세계가 비록 즉각적이고 일시적인 순간일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