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인류학
[종교이론] 잃어버린 것을 찾고 다시 길을 잃는 인간
종교인류학/조르주 바타유 『종교이론』2/25.11.4/오켜니
잃어버린 것을 찾고 다시 길을 잃는 인간
바타유에 따르면 인간은 도구와의 관계를 통해 세계에 외재성을 도입한다. 수많은 돌 속에서 돌도끼가 만들어지고 수많은 나뭇가지에서 땅을 팔 막대기가 만들어진다. 인간 노동의 필요에 의해(인간 삶에 도움을 주는 유용성 측면에서) ‘물속의 물과 같았던’ 사물은 의미를 부여받는다. 인간은 도구적 사물을 만들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의미도 새롭게 탄생시킨다. 객관적인 눈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다는 듯이, 인간을 사물처럼 약간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된다. 땅을 파는 목적으로 ‘막대기’가 존재하듯 인간은 누군가를 먹이기 위한 ‘경작자’가 된다. 도구의 측면에서 이해하는 세상은 유용성이라는 목적의 끊임없는 순환고리로 연결되어 인간을 포함한 무엇이든 수단이 된다.
‘인간은 사물의 세계, 즉 사물 세계의 요구를 인간적 삶의 근본적 조건으로 여기기 시작하면서 두려움을 알게 된다.(중략) 우리는 사물의 질서를 붙잡는데 죽음은 사물의 질서를 깨뜨린다.’(조르주 바타유, 『종교이론』, p62-63) 바타유는 인간에게 죽음 자체가 공포가 아니라, 인간이 공포스러워하는 것은 죽음의 내밀한 질서가 인간이 일관되게 만든 개체성의 질서를 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은 세상과 맺는 동물적 또는 신적 연속성(내재성)을 어렴풋이 느끼는 존재이다. 이러한 연속성의 감정은 연속성과 사물의 대립에서 새로운 의미를 끌어냈다. 자신을 다른 어떤 것과도 구분치 못하는 즉자적 존재로서의 동물로 하여금 빈약한 속세적 도구(불연속적 대상)와는 대립적인 매혹적인 신성한 세계를 보게 한 것은 오직 연속성이었다. 연속성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것은 신성한 안개를 통해 흐릿한 전체와 명료한 세계의 대립을 보는 것이다. 동물은 그를 집어삼키는 내재성에 별 저항 없이 순응하는 반면, 인간은 신성의 감정에 빠지면 거기에 대해 일종의 무능한 공포를 느낀다.
인간은 의식을 통해 명료하고 분명해 보이는 사물의 질서를 구성한다. 하지만 불분명한 연속성의 감정 때문에 신성을 통해 세상을 파악하려고 하지만 신성으로 보는 세상은 안개 속을 헤매이는 공포의 감정을 유발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사물의 질서를 세우고 다시 제사나 축제, 예술 속에서 사물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동물성과 신성에 접촉한다. 인간은 의식을 통해 일관성의 세상을 구축하고 다시 잃어버린 신성을 찾아나서는 아이러니 속에서 살아간다.
○ 인간의 고뇌는 본질적으로 개체성에서 온다. 인간은 사물의 세계, 즉 사물 세계의 요구를 인간적 삶의 근본적 조건으로 여기기 시작하면서 두려움을 알게 된다. 인간은 사물 질서의 체계에 들어가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사물의 질서를 붙잡는데 죽음은 사물의 질서를 깨뜨린다. 인간은 사물의 질서와 타협 불가능한 내밀한 질서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다. 그렇지 않았다면 제사도, 인류도 없었을 것이고, 내밀한 질서, 개체성의 신성한 고뇌가 그 파괴적 모습을 드러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인간은 오직 자연적 특성이 위협받을 때만 진통을 겪으면서 그 내밀한 고뇌의 성스러운 신성에 이르게 되는 존재이다.
○ 신성의 감정은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모든 것을 희미하게 볼 뿐인 동물적 연속성의 감정과는 분명 다르다. 혼란은 안개의 세계로 끝나지 않으며 신성한 안개는 오히려 흐릿한 전체와 명료한 세계의 대립을 보여줄 것이다. 전체는 경계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전체는 적어도 바깥, 명료한 것을 통해 구분된다. 동물은 그를 집어삼키는 내재성에 별 저항 없이 순응하는 반면, 인간은 신성의 감정에 빠지면 거기에 대해 일종의 무능한 공포를 느낀다. 물론 그 공포는 막연한 것이다. 따라서 신성한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도저한 가치를 획득하지만, 동시에 그 신성한 것은 명료한 이 세상, 그리고 인류가 자기들의 특권적인 영역으로 확정한 속세적 세상에 지극히 위험해보인다.(p45)
○ 육체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복잡하다. 정신을 소유한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동물의 육체를 가진다는 것은, 즉 사물처럼 존재한다는 것은 비참한 일이며, 반면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서 정신적 기층을 따로 갖는다는 것은 영광이다. 그럼에도 정신과 육체–사물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지 육체–사물은 끊임없이 정신의 유령에 사로잡히며, 죽음이 그를 완전한 사물의 상태로 만들 때까지는 결코 사물이 아니다. 이제 정신은 어느 때보다도 더욱 현재적이다. 죽음이 가져다주는 결정적인 무능과 부재는 정신의 본질을 계시하며, 죽음을 당하는 사람의 외마디는 삶의 최상의 긍정이다. 원칙적으로 육체는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도 없는 종속적인 요소이다. 육체도 화폭, 철, 또는 나무토막과 마찬가지로 용도에 있어서는 다름이 없다.(p50)
○ 인간은 막연한, 즉 불분명한 내밀성을 잃어버린, 또는 거부한 존재이다. 의식은 불편한 내용들을 벗어 던질 때 명료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명료한 의식은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아 나서며, 역설적이게도 의식은 그 잃어버린 것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다시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p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