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인류학
[종교 이론] 성과 속의 전개
수요 종교인류 『종교 이론』 2차시 20251104 김유리
성과 속의 전개
조르주 바타유의 『종교 이론』첫 시간에 이해한 바로는, 인류는 내재적인 상태를 내려 놓고 유용성의 세상을 붙들고 살게 되었다. 유용성의 세상이란, 모든 것이 목적에 합당한지에 따라 우열이 갈리는 ‘사물’이 되어 살아가는 세계이다. 사물의 세계는 속되다. 유용성을 계산하는 주체들의 세계다.
조르주 바타유는 성과 속의 구분을 전개 모델로 설명한다. 성과 속을 알지 못하는 세상에 먼저 속세가 성립한다. 이어서 정신은 유용함을 초월한 성스러움을 생각해낸다. 초월을 생각하며 속된 세계를 살아가는 동안에도 인간들은 만족하지 못한다. 속세 이전의 근원적 상태에 대한 욕구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된다.
성과 속의 구분이 없던 때에는 내재성이 지배했다. 살아 움직이는 존재들이 서로를 먹을 때 이것은 초월 없는 내재적인 상태다. 먹기도 하고 먹히기도 하는 존재들에게 존재의 우열을 가늠할 초월의 척도가 없다. 자와 타, 주체와 수단의 자리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대상화된 사물이 없고, 대상을 의식할 주체로서의 인간도 없다. 모두가 대등하게 살아 움직이는 존재로서 ‘동물성’만이 있다.
내재적이고 대등한 동물성의 세계는 구별되지 않는 연속성의 세계다. 인간이 곰을 먹어 곰이 인간이 되고, 곰이 인간을 먹어 인간이 곰이 된다. 유지되는 것도 없고 끝나는 것도 없다. 이러한 세계의 연속성을 끊고 자타가 구분될 때 속세가 성립된다.
세계의 연속을 끊는 것은 도구의 도입으로 가능했다. 수단으로서의 존재물(사물)이 생겨나면서 내재성의 세계에 외재성이 도입된다. 유용한 존재를 수단으로 의식하는 외재적 의식이 작용한다. 수단과 목적이 의식되면 존재에게는 사물이라는 자리가 주어진다. 유용성의 세계 속에서 인류는 동물로부터 떼어져 나와 ‘인간’이 되었다. 유용성의 세계에서 인간만이 욕망을 갖고 세계 전체는 욕망을 갖지 않는 사물의 지위에 고정된다.
생멸이 따로 있지 않고 자타의 구분이 따로 없던 내재성의 세계로부터 차단된 존재인 주체는 지속에 대한 고뇌를 안게 된다. 세속의 세계는 인간 주체들의 자기 보존에 유용한 세계다. 그런데 문제는 삶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단과 목적도 그대로 있는데 주체 자리에 있는 인간의 생명은 꺼져버린다. 인간은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 죽음의 공포와 삶에 대한 불안은 인간적인 발명품이다.
내재성의 세계에서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먹고 먹히는 것은 다른 존재 양태로 넘어가는 일이다. 유용성의 세계 안에서만 존재는 주체의 소멸인 죽음 앞에서 당황한다. 유용성의 세계에 어째서 유용하지 않은 사태들이 많이 발생할까 하고 주체는 질문한다.
유용성의 세계의 불완전함을 드러내는 한계 상황에 지속적으로 부딪친 정신은 더 우월하고 더 가치 있는 존재를 생각해내게 된다. 인간은 속된 사물의 세계에 ‘절대 존재’를 떠올리게 되었다. 절대적인 가치, 절대적인 목적, 바로 신성에 대한 욕구다. 신성에 대한 욕구는 내재성에 안겨 있는 동물-인간에게는 가질 필요조차 없는 것이었다.
성과 속은 초월을 전제한다. 내재성은 전혀 다른 상태다. 속된 무리는 지고의 가치에 의해 구원받고자 해왔다. 그러나 구원을 갈망하는 존재가 근원적으로 기다리는 것은 내재성의 도래였다. 예술이 내재성을 회복하려고 했다는 것이 라스코와 마네에 대한 바타유의 설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