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류학 만물 사전
바다-지중해와 환동해
바다, 장기 지속 네트워크의 복합체
– ‘지중해’와 ‘환동해’ –
안 보 나
해양 인류학은 국경을 경계로 나와 타자를 단절시키며 연결성을 저해하는 영토 국가적 역사관과는 다른 해양 중심의 역사관에 주목한다. 영토 국가적 역사관은 바다를 단지 육지에 대립하는 지리적 개념으로 이해하며 자기충족적인 경계 너머에 펼쳐진 ‘차이’와 ‘다양성’을 배제하거나 동화시키는데 몰두시키기 때문이다. 이에 페르낭 브로델과 주강현 선생님은 모두 이러한 육지 중심 사관의 인위적 잣대를 경계하며 지중해와 환동해를 인문지리적 개념으로 생각해보자고 말한다. 바다는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하나의 바다가 아닌 바다들의 복합체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바다를 단지 지리적 경계에 국한하지 않고 국경과 시공간을 넘어 인간의 역동적 활동이 펼쳐진 장기 지속 네트워크의 복합체로 파악한 브로델의 지중해와 주강현 선생님의 환동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지중해와 환동해
페르낭 브로델은 지중해는 자기충족적인 하나의 바다가 아니라 바다들의 복합체임을 강조하며 영토국가의 단일성과 차이를 둔다. 식량이 풍부하지 않았던 환경적 특성에 따라 지중해의 바다 사람들은 바다와 육지, 산지, 평지, 사막과 도시를 넘나들고 이베리아·이탈리아·발칸 반도, 소아시아, 북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주고받으며 다양한 네트워크를 구성했기 때문이다. 지중해 사람들의 이러한 이동성은 ‘차이’와 ‘지체’를 생성하며 하나의 중심점에 포획되지 않는 복합성이 강조되는 공간을 창조하기도 했다.
이동성과 복합성으로 그려지는 지중해에서 또 다른 강조점이 있다. 브로델은 지중해의 다양한 네트워크와 교역이 이루어지는 교차점, 즉 도시들에 주목한다. 육로와 바다가 만나는 교차점은 육로의 특성과 해로의 특성을 모두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복합체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공간이다. 브로델은 지중해의 모든 것이 교통망을 통해 도시에 연결되었다고 말하며 교역을 흡수하고 자기 목적을 위해서 이용하고 이어서 다시 내보내는 역동적 활동이 수렴되었던 여러 도시들을 시대의 증인으로 생각했다. 브로델은 과도한 벌금이나 저임금, 교역 등을 이유로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이합집산(離合集散)했던 알제 시를 자유의 공간으로, 투르크 제국의 자본과 체제를 기반으로 형성된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들어오는 것은 많으나 나가는 것이 거의 없는 기형 도시로 묘사하며 지중해 권역의 다양한 도시의 모습을 그렸다. 주강현 선생님의 『환동해 문명사』를 접하고 보니 도시들로 수렴되는 브로델의 이러한 공간성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바다의 유동성을 설명하는데 한계를 가지는 것 같다. 또한 주강현 선생님은 브로델의 지중해는 국경 너머의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를 포괄한다는 점에서 영토국가에 대응하는 개념이기는 하나, 지중해의 도시들을 영토국가의 주역들로 생각하는 등 유럽 중심적 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비판하기도 한다.
『환동해 문명사』에서 주강현 선생님 또한 인류의 정체성을 국경에 국한시키며 인간 활동의 역동성을 저하시키는 국민국가 역사관의 한계를 언급하며 동해를 다양한 민족들의 장기 지속적 문명의 회랑(回廊)으로 설명한다. 환동해를 다양한 민족들이 다양한 바닷길을 통해 충돌하고, 융합되고 순환되는 문명의 교차로로 설명하며 장기 지속과 단기 지속 교섭의 만남, 즉, 시간의 불연속성과 중층성을 강조하며 근대의 단선적 시간관에 대응한다. 발해의 염주에서 일본에 당도하는 일본로는 오랜 역사성을 지닌다. 환동해 북동부권에 살던 소수민족 예는 고구려에 복속되었지만, 해류, 조류, 바람을 이용하고 별을 관측하는 월등한 해상 능력을 기반으로 어로생활을 유지했다. 이들은 동해의 해산물을 독점하며 청나라와의 직접 해산물을 거래했는데, 이들의 교역은 후에 해삼 교역의 선행 역사일 가능성도 가진다. 또한 이들은 연해주 환동해 연안이 주 무대였지만 일본까지 가서 해상 활동을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활동은 후에 고구려, 발해 왕조의 지속적 일본로가 개발된 것에 영향을 미쳤다. 발해의 일본로는 발해와 일본의 교섭 뿐만 아니라 예의 해상 활동과 고구려 교역의 풍경을 품고 20세기까지 고스란히 이어진다.
이는 바닷길이 복합적이며 이질적 문화와 풍습, 역사가 융합된 장기 지속 네트워크의 결과임을 보여주며 바다를 입체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이러한 중층적 시간관 때문인지 환동해는 지중해에 비해 더 입체적으로 다가오며 바닷길을 통해 연해주에서 중국, 일본까지 넘나들던 선사인의 힘찬 발걸음이 그려지는 듯하다. 하지만 이들의 발걸음은 영토를 기반으로 한 폭력적 식민지 팽창주의와는 분명히 결이 다르다. 2세기경 소수민족인 예에 비해 더 넓은 땅덩어리와 더 발달된 기술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현대인의 모습이 더 왜소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종족의 규모와 영토의 넓이, 혹은 가진 것의 차이로 부자와 빈자를 구별하는 셈법이 무용하게 느껴지며 ‘관계 부자’ 소수족들의 삶의 방식이 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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