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인류학
동화인류학 연구실에서는 이렇게 지금 여기의 삶을 완전히 긍정하는 주인공들의 세계를 탐험합니다. 동화 속 주인공들은 정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자신을 만들어갑니다. 주인공의 삶이 어디로 이끌릴지는 아무도 모르고 정해진 것도 없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규정 지을 수 없는 존재들이 온갖 살 궁리로 복작거리는 숲에서 깔깔 웃고 떠들며 놀다 옵니다. 그리고 돌아온 그 자리에서 지금 여기의 삶에 감사하며 한 걸음 더 낯선 길을 나서봅니다. 필요한 것은 모든 우연을 수용하고 마음껏 상상하는 것 뿐!
오늘이와 노일저데의 딸
세미나에서 들은 것
제주 서사 무가의 수퍼스타 두 명을 만났다. ‘오늘이’와 ‘노일저데의 딸’이다. 월요일 저녁 [동화인류학] 세미나에서 오선민 선생님의 신화 해석에 푹 빠져서 계속 이야기가 생생하다.
오늘이 신화
오늘이는 오늘도 혼자서 잇따른 만남을 통해서 우주의 한 끝에서 다른 끝으로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오늘이는 자기가 혼자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만약 그랬다면 주눅이 들어서 어디로 갈 생각을 안 했을 것이다. 신화를 향유하는 입장에서는 신화의 주인공과 다른 관점에서 본다. 평소 생각대로 오늘이가 부모도 없이 불쌍하구나, 가진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어서 고생스럽겠구나 싶다.
그런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오늘이에게 부모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원천강’이라고 불리우는 어딘지 모를 그곳에 바쁘게 지내고 계셨다. 거기서 오늘이는 부모를 만나 관광도 하고 친구들이 품은 질문에 대해 물어볼 수 있었다. ‘있다’와 ‘없다’는 관점의 차이였다. 없는 게 아니라 다른 곳에 다르게 있다. 그 다른 곳을 상상할 수 없고, 대화할 수 없을 때는 있는 것이 없는 것과 같다.
오늘이는 가진 게 없지만 부족한 적도 없다. 오늘이는 참 이상하다. 가지려고 하지 않고 머물려고 하지 않는다. 오늘이는 자기 이름도 모르지만 원천강에 갈 줄은 안다. 그런데 이름은 왜 필요할까? 자기 이름을 몰라야 원천강에 갈 수 있다는 것일까? 모든 것을 잘 알고(글만 읽는 매일이와 장상이), 이름도 있고(연꽃), 가진 것이 많고(큰 뱀), 만난 사람(원천강 부모)과 머물려고 했다면 오늘이는 원천강과 인간 세상을 여러 번 오갈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이는 어디에도 가고 누구와도 말할 수 있는 존재였다. 가난한지 외로운지도 모른다. 오늘이는 가벼운 몸으로 근원적인 것에 대해 계속 묻고자 한다. 무거우면 근원적인 것에 대해 계속 물을 수가 없는 것이겠다. 오늘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외로움도 가난도 아니고, 물음을 가지고 더 나아갈 수 없는 것이었다(문지기 앞에서 흘리는 눈물). 눈물이 솟아나 아래로 흐르듯이 가장 높은 곳, 가장 먼 곳에서 다시 낮아지고 가까워질 수 있어야 했다. 오늘이는 머물 줄을 모른다. 지금도 오늘이는 원천강에 가는 중이거나 돌아오는 길이다. 대기권 밖으로 나가고 동물에게 가고 식물에게 가고 인간에게 가고 있다. 그들 모두의 질문을 품은 채로 말이다.
노일저데의 딸 신화
‘노일저데의 딸’이라고 불리는 이 인물은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알 수 없는 존재다. 누군가의 딸이라는데 그 누군가는 정체 불명이고 이름마저 불분명하다(‘노일제데귀일’이라고도 한다). 노일저데의 딸은 바깥에서 들어온 존재로 가족 안에서 첩이라는 위격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노귀저데의 딸은 그 무엇도 아니면서 무엇이든 된다. 그는 형태가 정해지지 않은 욕망의 화신이다. 이 욕망은 이글거리는 에너지 그 자체로서 줄어들지도 꺼지지도 않는다. 표출될 기회가 있다면 무엇이라도 한다. 남선비의 첩이 되었다가, 살인자가 되었다가, 본부인으로 변신하였다가, 남선비의 아들들을 잡아먹으려 들었다가, 막내아들마저 (결과적으로) 자기 이불로 끌어들인다. 그녀는 ‘뵈는 게 없는 욕망덩어리’다. 자식을 두지 않는 것을 보면 목적도 없다. 자기밖에 모른다고 하지만 자기 이름조차 없다. 노일저데의 딸은 욕망이 닿는 그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 깊고 어둡고 강력한 욕망 그 자체는 무엇이든 되고자 한다.
이렇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강하고 무분별한 힘이 가정 안에 있다. 노일저데의 딸은 몸이 발기발기 찢겨서 식구를 먹이는 해산물 음식도 되고 농사도구도 되었다. 그리고 측간신으로 좌정한다. 노일저데의 딸은 무시무시하게도 측간에서 언제든지 다시 살아날 기회만 노리고 있다. 거기 있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거기 들어간 사람은 누구나 자기 밑을 깐다. 남녀노소 누구나 속에 든 것을 펑펑 내놓는다. 구데기, 파리, 모기 같이 징글징글한 것들이 살아 우글거린다. 측간은 내 속에서 나온 것들로 날마다 메워지고, 퍼내도 다시 쌓인다. 그리고 그 냄새의 초월적인 영향력을 생각해 보라. 측간은 노일저데의 딸에게 딱맞춤한 장소다.
신화의 힘
두 신화의 표층의 서사인 떠돌이 고아 오늘이와 욕망을 주체 못하는 머나먼 바다 출신 첩의 사연은 재미있다. 옛이야기라고 치고 엉뚱하고 재미난 맛에 듣지만 현실이라면 재난이다. 방어기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옛이야기인 줄 알면서도 자꾸 누구 탓인가를 생각하면서 도덕적으로 읽는다. 그러나, 심층에서는 신화적인 상상력이 활활 타오른다. 오늘의 신이 어떻게 이 우주의 이쪽과 저쪽을, 별스럽지 않은 오늘과 저 우주적 이치가 작동하는 규모 사이를 활발하게 유영하는지를 탐라인들은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 집안을 그야말로 강타해서 박살내던 노일저데의 딸이 보여주는 대로, 밑도 끝도 없는 눈먼 욕망의 힘으로 우리가 먹고 살고 가정을 이루고 지혜를 더욱 낸다는 것을 신화와 함께 헤아려 본다. 멀쩡히 잘 유지되고 있는 것 같은 이 가정, 이 관계들은 실은 자타를 가리지 않고 삼키는 욕망의 힘과 함께라는 것을 말이다.
제주 신화가 다루는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한 소심’하는 오늘의 내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이야기들이었다.

김지연 판화(『오늘이 어디 가니?』, 키다리 출판사, 2020)

송진욱 일러스트(김원석 글, 『녹디생이, 사라진 변기를 찾아라』, 머스트비 출판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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