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인류학
[환동해 문명사] 수정(3) 소용돌이치는 변방
2025.11.05/해양인류학/환동해 문명사 에세이 수정(3)/손유나
소용돌이치는 변방
‘변방’이란 어떤 곳일까? 낙후된 미개지, 투박한 촌스러움, 위험한 접경지대, 혹은 평화로운 전원 풍경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는 변방의 실상을 알지 못한 채, 중심의 시선에서 내려다본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환동해 문명사』에서 만난 변방은 낙후되거나 한적한 풍경과는 상당히 달랐다.
변방에는 온갖 것들이 모여 역동적인 생명력을 내뿜고 있었고, 분출된 에너지는 소용돌이치며 기존 질서를 집어삼키고 새로운 창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 역동적인 힘은 내 몸을 한 바퀴 휘젓고 지나가, 변방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것을 요구했다.
1. 변방을 열어젖히는 사람들
우리나라는 1910년 8월에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됨으로써 일본의 식민지로 35년간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었다. 강제 조약이 체결된 순간은 경악과 분노로 독립운동이 활발히 일어났다. 하지만 조선총독부의 극심한 탄압으로 저항 운동이 여러 차례 좌절을 겪으며, 1930년대 중반부터는 조선의 독립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라고 자포자기하고 체념하는 정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반도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조선총독부를 주축으로 강제된 질서가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중앙과 멀리 떨어진 변방은 달랐다. 당시 행정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경계면에서는 조직적인 항일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특히나 만주 지역은 일본에 맞서는 무장투쟁을 벌이는 독립운동의 중심 무대였다. 강요된 질서에 순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지닌 사람들이 변방에 터를 잡고 굳은 저항 의지를 벼리고 있었다.
만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가 터를 잡기 이전부터 중앙의 질서를 거스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당시 청나라는 자신들의 발상지인 만주를 성역화하고 사람이 거주하는 것을 금지했다. 하지만 중앙 권력이 변방 만주에까지 통제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웠기에 만주는 일종의 버려진 땅과 다름없었다. 수해, 가뭄, 전란 등으로 난민이 된 사람들은 살 터전을 찾아 만주로 밀려 들어왔다. 살고자 하는 의지 앞에서 국가의 봉금령(封禁令)은 무의미했다.
청나라가 쇠락하고 중앙 정부의 장악력이 상실되자 그 틈을 타서 다양한 집단이 만주로 몰려들었다. 일본은 만주사변을 통해 만주 지역을 점령하려고, 만주 개척단을 만들어 일본 농민들을 만주로 이주시켰다. 일본의 좌파 지식인도 본토에서는 불가능한 혁명의 꿈을 품고 만주로 왔다. 국경을 맞닿고 있는 러시아인도 몰려들었다. 러시아 관료와 상인뿐 아니라, 러시아 혁명과 레닌에서 스탈린 정권으로 이어지는 권력 투쟁에서 밀려난 사람들 또한 숙청을 피해 만주로 숨어들었다. 만주 하얼빈에는 유럽의 반유대주의를 피해 온 유대인 공동체가 큰 규모로 생겨나 유대인 거리가 만들어졌다.
변방 만주는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생명력으로 가득했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중앙의 질서를 벗어나 자기 뜻을 펼치기 위해 온 것이든, 본토에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 쫓겨나듯 이주한 것인지와는 무관하게, 모두 이 낯설고 척박한 땅에서 자신들의 삶을 개척해 나갔다. 그래서 변방 만주에서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발산하는 강력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2. 다른 세계가 만나 일어나는 화학작용
캄차달인은 18세기 이후에 생겨난 민족이다. 러시아 동북부 캄차크반도에 살고 있던 이텔멘을 비롯한 원주민과 코사크 러시아인과의 혼혈로 태어났다. 코사크 러시아인은 시베리아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원주민 여성과 결혼하거나 강간했다. 침략으로 인한 착취, 기근, 전염병, 자살 등으로 순종 이텔멘 부족은 사라지고, 이제는 러시아인과 혼혈 집단인 캄차달인만이 남았다. 캄차달인은 모체인 이텔멘 부족의 신앙과 명절, 언어, 전통을 거의 잊은 채 러시아 문화를 받아들여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한 집단이다.
시베리아 원주민들만이 외부 문명에 동화되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인들이 원주민들의 문화를 쫓아가기도 한다. 18세기 야쿠츠크(Yakutsk)는 동부 시베리아의 수도이자, 러시아 제국이 동쪽으로 세력을 뻗어 나가던 주요 거점이었다. 러시아의 관료와 상인뿐 아니라 가난한 농노나 유배된 죄수들도 시베리아로 들어왔다.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이주 러시아인들은 홀로 자급자족을 할 수 없었기에 원주민인 야쿠트 부족의 도움을 받았고, 야쿠트족에게 동화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언어나 문화를 거의 잊었고 단지 러시아 노래와 러시아 정교를 간직했을 뿐이다.
우리 같은 뿌리를 가진 ‘고려인’의 탄생도 유사하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에 연해주나 사할린에 거주하다, 조선 해방 이후 바로 귀국하지 못한 조선인이다. 일본이 패망하고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두 지역은 러시아의 관할로 들어갔다. 스탈린 정권이 들어선 이후, 러시아 정부는 조선인 집단을 중앙아시아 부근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조선인이라는 확고한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서 떨어졌다. 척박한 땅을 일구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면서 점차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은 희미해졌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지금은 러시아 소수 민족으로서 러시아 정교와 사회주의가 섞인 문화를 영위하면서도 조선이 자신의 근원임을 기억하는 고려인이라는 정체성이 탄생했다.
어떤 집단이든 마지막까지 자신들이 뿌리와 정체성을 잊지 않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압박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정체성으로 이행했다. 이쪽과 저쪽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단일한 국경선으로는 이 섞임을 통해 탄생하는 새로운 정체성을 파악할 수 없다. 실제 세계에서 변방은 선이 아니라 면(面)이다. 변경은 경계와 경계 사이에서 중첩되어, 서로를 연결하고 교류가 발생하는 공간이고, 이쪽과 저쪽의 사람, 언어, 신앙, 문화 등 다른 세계가 만나면 화학작용이 일어나고 새로운 정체성이 생성되었고, 현재도 탄생하고 있다.
3. 다중적 관점이 교차하는 공간
질서가 지배하는 중앙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명확하다. 질서가 무엇인지는 이미 정해져 있고, 소속원은 단지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소란을 일으키는 자들에게는 금세 처벌을 가해 조용하게 만든다. 중심부에서 산다는 것은 질서에 순응하기만 한다면 꽤 쾌적한 일다.
하지만 변방은 복잡하고 복합적이다. 앞서 말한 변방 만주는 개혁가만이 아니라 폭력을 휘두르는 무뢰배들에게도 좋은 환경이었다. 19세기 만주는 무법지대로 중앙의 통제를 벗어난 위험한 지역이었다. 범죄 조직을 통해 아편과 밀수품 거래가 이루어졌고, 처벌을 피해 국경을 넘어가려는 죄수들이 숨어들었다. 이 혼란하고 무법천지의 모습을 고려한다면 질서에 틈이 있다는 게 과연 좋은 일인지, 치안을 담당하는 정부의 통제력이 받느시 필요한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또한 새로운 창조는 반드시 어떤 것의 소멸을 전제하고 있다. 앞서 말한 캄차달인의 탄생은 원주민 이텔멘 부족의 멸종과 함께 일어났다. 외부의 침략으로 순종 이텔멘 부족이 소멸하고 침략자와의 혼혈 집단이 탄생한 일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가? 한 문화의 사라짐은 분명히 비극이지만, 어떤 문화가 반드시 생존해야 하는 필연적 이유는 없다. 역사 속에서 수많은 집단과 문화가 탄생했다 사라졌듯이 이텔멘 부족의 소멸을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야 할까? 침략 행위로 인한 멸종은 문명사의 비극이니 반드시 막아야 하는 일일까? 한편으로는 문화가 소멸한 것이 아니라 한 문화가 외부 세계의 영향을 받아 다른 문화로 이행(移行)한 것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
생고기를 먹던 원주민 이텔멘 부족은 침략자 코사크인이 올바르게 집을 드나드는 법도 모르는 야만인이라고 치를 떨었다고 한다. 문화와 야만을 어떤 기준으로 나눠야 할까? 이런 관점을 바꾸는 질문을 하게끔 만드는 것도 변방이 가진 힘이다.
변방은 침체한 곳 혹은 평온한 곳이라는 나의 편견을 깨졌다. 애초에 변방이 공간적으로 외진 곳, 사회적으로 발전이 덜 된 곳, 문화적으로 지체된 곳이라는 인식은 대부분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다. 변경은 타자와 맞닿는 곳이니 위험이 존재한다는 판단 정도를 제외하고는 그 외에는 모두 누가 바라보느냐,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는 인식의 문제일 뿐이다. 변방이 가진 에너지는 나도 모르게 내 몸에 녹아 있던 인식의 전환을 불러왔다.
새롭게 만난 변방은 삶의 의지가 넘쳐흘렀고, 여러 사람이 내뿜는 욕망이 서로 부딪히며 질서를 전복시키고 새롭게 창발하는 역동적인 공간이다. 온갖 생명 에너지가 약동하는 변방은, 내 안의 생명력과 공명하여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