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 Ivan Dominic Illich
공생의 삶을 생각하다
[학교 없는 사회] 자율성 회복, 배움이 일어나는 교육의 장 만들기
자율성 회복, 배움이 일어나는 교육의 장 만들기
인문세에서 학인들과 스승님들을 만나 공부를 하면서 무기력했던 삶에 활기가 도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이러한 활력은 나에게만 국한된 일이었나보다. 어느 순간 가족과 주변의 지인들, 집안일을 돌보는 일에 소홀해짐을 느꼈지만, 책 읽고, 글쓰기에 치중하느라 미뤄두고 있었다. 가족과 지인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등 부정적 효과가 점차 드러나다 보니 나 혼자만 좋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과 공부에 소홀하지 않기 위해 시간을 더 쪼개서 생활했다. 큰아이가 사춘기에 돌입해 스스로 고립하려는 모습에 주말마다 짬을 내어 캠핑을 다니며 대화를 시도했다. 둘째 아이가 본격적으로 축구를 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변화에 맞춰 일정을 조정해야 했다. 모두가 잘살아보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했지만, 체력의 한계를 간과하고 있었다. 체력이 떨어지자 몸의 신호와 주변의 신호에 더 응답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몸과 마음이 더 엉클어져 버렸다.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그 방식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는데 왜 이런 결과가 일어난 것일까? 무탈하게 수술을 마치고 다른 방식의 삶을 모색하기 위해 자율성을 다시 고찰해보려는 차에 『학교 없는 사회』를 만났다.
이반 일리치에 의하면 학교화된 사회에서 현대인들은 제도에 의존해 자율성을 잃고 심리적 무능력에 고통받는다. 인간들의 필요에 의해 정립된 가치는 제도화되었고 산업화와 함께 돈과 결부되고 도덕적 의미가 부여되어 신성화되었다. 인간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제도의 매뉴얼대로 생각하고 욕망하며 스스로의 생명력을 착취하는 제도의 노예가 되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우리는 어떻게 자율성을 회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반 일리치는 『학교 없는 사회』에서 제도화된 가치에 의존해 자율성을 잃은 무기력한 존재의 회복을 촉구한다. 그 방식으로 모든 곳에서 배움의 자원을 발견하고 또 다른 배움을 촉발시키는 지적 리더의 부활과 자발적 배움이 일어나는 교육 네트워크의 재구축을 주장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도 자연의 경이로움을 발견하고, 이를 반복해서 따르는 과정에서 인식의 한계가 깨지고 재조합되는 경험을 통해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럼, 인간의 자율성을 회복시키는 이러한 자발적 배움이 일어나는 교육적 네트워크란 무엇이며,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학교화된 사회의 대안인 새로운 교육의 장은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배움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어 교육적 환경을 의미한다. 이러한 열린 공간에서 학습자는 사물, 모델, 친구, 연장자와 함께 경험을 공유하며 삶의 매 순간을 배움과 나눔, 돌봄의 순간으로 바꾸며 살아갈 수 있는 자율적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배우며 성장하는 길은 꽃길만이 펼쳐지지 않는다. 지난한 수련의 시간과 격한 성장통도 함께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우는 자는 공부를 멈추지 않는다. 고통의 순간에 잠시 무릎이 꺾일지라도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다시 일어설 힘이 스스로에게 있음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리치의 표현대로 ‘시궁창의 귤껍질, 거리의 웅덩이, 어리석은 실수와 실패’를 통해서 기꺼이 배우고, 그 배움을 나누는 용기와 여유를 가진 자를 우리는 자유인이라고 부른다.
도전 과제의 실패 원인이 비단 이것만이 아니었겠지만 자율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배움의 장에서 나는 여전히 공부와 일상을 분리한 채 질주하는 현대인의 생활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자, 이제 실패의 주된 원인을 알았으니, 새로운 방식을 다시 모색해 볼 때다. 자율성을 회복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스승님들과 동료, 교육적 자원이 풍부한 네트워크는 찾았는데, 이를 일상에서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 궁리를 해봐야겠다. 하지만 우선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 체력 증진임을 잊지 않아야겠다. 놓지마 정신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