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위젯 (1)

인류학은 일상과 다른 상상력을 통해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보게 합니다. 구석기에서 살아가려면 먼 곳에서도 물을 구할 천리안, 웬만한 도구는 만들 수 있는 손, 간단한 도구를 복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머리가 있어야 하고, 무리 가운데 살기 위해서 빠르게 자기 역할을 찾는 맥락 파악을 해야 하고, 무엇보다 남에게 군림받거나 군림해서도 안됩니다. 한마디로 자연학적 지식, 기술, 사회적 지능이 뛰어나야 살 수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남의 돈 벌기가 싶냐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무기력하게 사는 것 말고도 다른 옵션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상상해봅니다. 어쩌면 나도 몰랐던 다른 가능성, 이를테면 효율, 이익과 무관하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엇을 만드는 데에 집중하고, 그저 친구들과 아무런 이해나 계산없이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힘이, ‘이미’ 내 안에 있는, 그런 멋진 상상을 말이죠.

[빙하 이후(3)] 석기시대 도구론

작성자
강평
작성일
2024-08-03 09:03
조회
102

석기시대는 석기시대라는 명칭에 불구하고 만 이용하던 시대가 아닙니다. 석기시대 도구는 다양했고, 기후와 사회상에 따라 변모했습니다. 단단한 이미지에 한정된 이 아니라 용도에 따라 돌의 크기, 활용도가 달랐고, 나무나 식이섬유를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동과 정착 등 생활방식에 따라 도구도 달라졌고요. 도구는 실용 목적뿐만 아니라 사회적 위신을 드러내는 용도로도 쓰였습니다. 석기시대 도구를 들여다보는 것은 시대상을 짐작하기에 더없이 좋은 방법입니다.

이번 글은 인류학팀의 슈퍼 루키 손유나 선생님의 석기시대 도구론입니다.

————————————————–

 

석기시대 도구론

 

손유나

 

석기시대 사람들의 생활과 의식구조를 추론하기에 그들이 사용한 도구는 더할 나위 없는 정보원이다. 약한 맨몸뚱이로 태어났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은 환경에 최적화된 도구를 만들고 삶을 영위했다. 인간은 강하고 영리했고 또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사회적 존재이기도 했다.

 

1. 도구 진보의 선행조건, 인지 유동성

도구의 진보가 처음부터 활발했던 것은 아니다. 최초의 주먹도끼가 140만 년 전에 나타난 이후로 초기 인류는 백만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개량 없이 비슷한 모양의 주먹도끼를 사용했다. 도구가 진보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하는 조건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티븐 미슨은 마음의 역사에서 대성당모델을 제시하며 기술 지능’, ‘자연사 지능’, ‘사회적 지능’, ‘언어 지능이 유동하였기에 폭발적인 도구의 발전이 가능했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인지 유동성을 확보하지 못한 네안데르탈인은 주먹도끼 이상으로 도구를 발전시키지 못했고, 빙하기의 가혹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기원전 4~5만 년을 전후로 멸종했다. ‘기술 지능자연사 지능을 통합할 수 있었던 현생인류만 생존에 성공한다.

 

2. 기후 변화와 사냥 도구의 변화

빙하가 절정에 달한 후기 구석기 시대에는 생존이 극도로 어려워졌다. 인류는 사냥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찌르개, 돌살촉, 투창기 등 사냥을 위한 무기를 다양하게 만들었다. 로렌스 스타라우스는 이를 군비경쟁이라는 말로 표현한 바 있다고 한다.

후빙기로 접어들어 온난화가 시작되자 다시 한번 사냥 도구가 변한다. 거대한 몸집을 가진 짐승이 아니라 작고 날쌘 짐승을 사냥하게 된 것이다. 작은 화살촉과 작은 돌날과 같은 세석기가 발달했다. 큰 찌르개와 비교하여 파괴력과 관통력은 떨어지지만, 작은 동물들에게는 충분했다. 세석기는 몸돌에서 떼어내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뾰족한 끝이나 모서리 날을 약간의 잔손질만으로도 그대로 이용할 수 있어 원료와 제작 노력을 절감시킨다. 이전 석기에 비해 대칭성은 떨어지지만 이것은 기술의 후퇴가 아니라 상황에 융통성 있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의 발현이다. 한층 여유로워진 인간의 자신감을 느낄 수 있다.

 

3. 식물성 도구

야생식물이 늘어남에 따라 식물을 채집할 수 있고 나무와 식이섬유로 만들 수 있는 각종 바구니와 그물, 나무 그릇 등이 발달한다. 또 섬유에서 실을 추출 해낸다. 나는 사람이 실을 어떻게 발명했을까 정말 궁금했고 가히 추상적이고 초월적인 발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을 만드는 과정을 알게 되자, 원료를 많이 접했던 사람이라면 충분히 생각해 낼 수 있는 물리적 변화였음을 깨달았다. 수천 년이란 시간이 걸렸지만 인간은 자원의 활용을 끝까지 밀고 나가, 나처럼 잘 모르는 자에게는 추상적으로 느껴질 법한 진보를 이루었다.

 

4. 생활방식

생활방식 또한 도구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수렵채집을 위주로 이동 생활을 하던 사람과 정주 생활을 하는 사람의 도구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빙하 이후에서 저자는 나투피안과 예리코 마을의 중앙에 있는 큰 돌로 만들어진 돌그릇과 돌확을 정주 생활의 흔적이라 본다. 이처럼 이동 생활과 정주 생활에서 사용되는 도구는 달랐다. 수렵채집인은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닐 수 없으니 가벼운 재료로,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를 선호했을 것이다. 주변에서 즉각 조달할 수 있는 도구는 모두 놓고 가고, 구하기 어렵거나 제작에 공이 들어가는 도구만을 들고 다녔을 것이다. 정착 생활을 하면서 도구가 이전보다 작아지고, 용도별로 세분화되었다고 한다. 구석기 시대에 토기가 없었다는 점을 기술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해 왔는데 어쩌면 깨지기 쉬운 물건을 최대한 지양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5. 사회적 위신

사회적 위신 또한 인간에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석기시대인들은 예술적으로 세공한 찌르개, 커다란 사냥감의 뿔이나 뼈로 만든 조각으로 혹은 귀한 조개로 자신의 위세를 과시했다.

솔뤼트레안기는 크리스털로 만들 월계수 잎 모양의 찌르개가 있다. 크리스탈은 일정한 모양으로 쪼개지지 않아 세공하기 굉장히 어렵다. 이 찌르개는 다른 실용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어려워 보여 아마 석기 장인의 기술적 도전이었으며 사회적 위신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예로는 마음의 역사에 나오는 기원전7500~5000년경 스칸디나비아 남부에서 살았던 수렵채집 공동체를 들 수 있다. 이 공동체는 노루와 같은 손쉬운 사냥감이 있음에도 위험을 감수하고도 붉은 사슴을 집중적으로 사냥했다. 그 이유는 커다란 짐승을 잡음으로써 사회적으로 더 큰 위신과 세력을 얻을 수 있어서라고 한다. 그 외에도 조개를 이용해 각종 장신구를 만들고, 더욱 귀한 조개를 얻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멀리 이동하기도 했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