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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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낭송 후기- 조응] 삶, 공부, 말을 조율하기
삶, 공부, 말을 조율하기
팀 잉골드는 기존 개념을 뒤집어 섬세하게 조율한 후 (fine-tuning) ‘조응’이라는 새로운 사유 과정을 펼쳐낸다. 『조응』은 예술 작품들에 대한 응답의 글로 엮여졌다. 에세이는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 숲, 바다, 육지를 지나, 사물의 결을 그려내고, 손 글씨와 말을 회복하자고 말한다. 그는 생물학, 철학, 과학, 예술, 건축, 날씨, 손 글씨 등등 세상 모든 것들에 바짝 붙어서 주의를 기울인다.
잉골드는 학자로서의 페르소나를 내려놓고, ‘아마추어 응답자’로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누구나 전문가가 되고 싶어 하는 현대 시대에 아마추어라니! 예상하지 못한 단어에 놀랐다. 아마추어는 논리가 어설프고, 산만한 몸짓이 생각나지만, 그는 아마추어를 다르게 정의했다.
내 생각에 진정한 연구자는 모두 아마추어다. 아마추어는 말 그대로, 전문가처럼 경력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특정 주제를 향한 애정으로, 이끌림과 자율적 참여와 책임감이라는 동기로 연구한다. 아마추어는 조응자들 correspondents이다. 그들은 연구하면서 세계 전체의 삶의 방식과 조화를 이루는 자기 삶의 방식을 찾는다. 팀 잉골드, 『조응』, 김현우 옮김, 가망서사, 38쪽
‘진정한 연구자는 모두 아마추어’라는 말은 특히 공부하는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 공부 공동체에서 수많은 도반과 마주치면 마음속 질문은 바로 ‘왜 공부하실까?’이다. 이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고, 내가 주변 가족들에게도 받는 질문이기도 하다. 답하기 위해 지난 4~5년의 방황을 장황하게 설명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턱 목이 막혀 아무런 대답을 못 하기도 한다. 공부의 이유를 명료하게 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특정 주제’를 못 찾고 떠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공부를 정상을 올라야 하는 산처럼 보며 언젠가는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잉골드는 산이 아니라 언덕이라고 부르자고 말한다. 언덕은 대지의 물결과 주름이 있다. ‘여행자’ ‘거주자’로서 언덕 안에서 자신의 길을 낸다. 공부 또한 아마추어로서 언덕을 따라가는 것이다.
잉골드는 아마추어가 되는 것을 ‘엄격성’과 ‘정밀성’으로 재조율한다. 전문가의 엄격성은 딱딱한 객관적인 사실을 기록하고 측정하면서 정확성을 요구한다. 반면 아마추어의 엄격성은 다채롭고 생생한 물질 간의 관계를 노련하게 살피고 주의를 기울이면서 정밀성을 요구한다. 잉골드는 무용수를 예를 들면서 타인의 움직임을 자신의 몸으로 반응하는 능력은 정확한 것이 아니라 정밀하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무용수는 아마추어라고 말한다. 전문가의 엄격성은 경직되고 심각하다면, 아마추어의 엄격성은 유연하고 사려 깊다.
『조응』을 읽으며 아이의 행동과 흔적을 새롭게 바라보았다. 책을 구겨놓은 종이의 주름, 여기저기 땅바닥에 붙여놓은 포스트잇, 바닥에 떨어뜨린 음식들. 이 모든 과정은 바로 아이가 세상과 조응하는 과정이다. 어설프거나 산만하지 않다. 그 자체로 충만하고 섬세하다. 팀 잉골드와 아이(바다)는 나를 ‘생명의 연구자’ ‘삶의 조응자’로 이끌어준다. 조응자, 아마추어, 연구자, 행려자, 방랑자로서 이제 판단이나 분석이 아니라 말로 응답한다.
우리의 말은 대립하는 말이 아닌 환영하는 말이 되게 하자. 심문하거나 취조하는 말이 아닌 질문하는 말, 재현하는 말이 아닌 응답하는 말, 예측하는 말이 아닌 기대하는 말이 되게 하자. (같은 책, 316쪽)
이 책을 쓰면서 자유롭게 흔들리며 즐겁게 방랑했다고 말한 그의 고백은 공부의 의미를 재조율해 주었다.
“우리 삶을 즐겁게 방랑하기 위하여!”
또 만나요. 본 어코드 Bon Accord!
왜 공부하는가의 질문은 하고 또 해도 잘 모르겠어요. 초반에 읽었던 부분이 벌써 가물가물한데, 선생님의 후기를 통해 되새김질하니 너무 좋습니다. 산이 아니라 언덕을, 전문가가 아니라 아마추어로 언덕을 따라 걷는 자가 되어 보리! 즐겁게 방랑하는 공부의 길로! 고맙습니다^^
즐겁게 방랑하기! 세상과 조응하는 방식이군요.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의 자세로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