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미야자와 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겐지의 과학적 관점에서 드러나는 통합성

작성자
기헌
작성일
2024-08-23 11:37
조회
126

 

밤하늘을 별을 보면서 박혀있는 위치나 인접한 별들이 연결된 선으로 명칭을 파악한다. 달 역시 그 모양이나 날짜로 상현달, 하현달, 보름달 등 이름을 부르곤 한다. 수천만 년을 기록한 지층들이 언제, 어떻게, 무엇으로 형성되었는지 분석한다. 최초 우주의 형성은 빅뱅이고, 지구를 이루는 산소, 수소 그리고 이런저런 물질들. 내가 알고 있던 과학적 세계는 보통 이렇게 분명하게 설명되는 단절적이고 고정된 값을 갖고 있다. 제주 수월봉 지질트레일을 보면서 14,000년 전 마그마와 바닷물이 만나 폭발하여 일주일간 1.5km의 화산 퇴적물이 쌓여 이루어졌다고 말하듯이 말이다. 세상에 어디에도 없는 자연의 신비로운 결정체들은 우리에게 경이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나는 늘 장관을 이루는 자연 앞에서 설명되지 않는 약간의 부족함을 느낀다.

미야자와 겐지가 그리는 세계에서 내가 자연을 바라보며 느끼던 그 모자란 무엇이 해소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곰에서 왕으로의 나카자와 신이치는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계는 인간이 다른 생명들과 동등하다는 감각을 잃어버린 비대칭적이고 야만적 사고방식을 기초로 한다고 말한다. 그러한 사고는 공정한 분배를 막고 테러를 일으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오래전 인류는 대칭적인 세계가 깨지는 것을 우려하고 편중을 조심하고자 신화적 상상력 발휘했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에서 드러난 대칭성에 주목했다. ‘미야자와 겐지는 인간과 동물을 철저하게 분리하는 사고방식과 인간사회 안에 불평등이나 불의가 행해지고 있는 현실 사이에는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나카자와 신이치,곰에서 왕으로(동아시아), 22). 나와 너가 다르지 않고, 현재, 과거, 미래가 지금 여기에서 뒤섞여 있음을 끊임없이 전달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 드러나는 과학적 세계는 분석되고 고정된 값을 가졌던 각기 다른 존재들이 여러 층위의 시공간에서 존재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통합되어 하나로 묘사된다. 이 통합성은 이라는 개념으로 그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한다. 사실에 바탕을 이루어 환상이 아닌 듯하면서 마치 환상처럼 느껴지는 것은 통합된 세계를 넘나들기 때문일 것이다.

 

통합된 시공간

기타카미 산악지대를 가로지르는 사루가이시 강이 기타카미 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에 해안을 닮은 강가가 있다. 푸르스름한 응회질 이암층이 넓게 드러나있는 이곳을 걷다보면 영국에 있는 이기리스 해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기에 화자는 이기리스 해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작품 속에서 현재의 풍경을 둘러보면 금방 시공간을 이동할 수 있다. 쓰러진 갈대의 흔적은 비가 많이 와서 강물이 불었을 그 상황으로 데리고 간다. 모래와 점토가 쌓여있는 지금의 지층 아래는 더 길고 먼 시간을 상상할 수 있다. 신생대 이 지역이 바다 둔치였다는 과학적 사실은 강가나 절벽 토대, 그리고 땅을 파면 계속 발견되는 이암층으로 증명된다. 지금 여기 풍경을 맡고 있는 각각의 존재들은 다층적 시공간을 상상하게 한다. 미야자와 겐지는 곧 이암의 성분, 모양, 맛 등 물질성을 묘사하며 우리의 관점을 전환한다. 거시적 관점에서 마치 현미경으로 돌을 들여다보듯 미시적으로 바뀌니 익숙하지 않고 갑작스러운 전개에 어질어질함을 느낀다. 어쩌면 이 익숙하지 않음과 혼란스러움에 대한 자각은 미야자와 겐지가 요구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통합된 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정된 사고에서 한 발 나아가 시공간에 얽매이지 않는 유동성이 요구된다.

숲에서 부유하는 존재

그의 작품을 읽으면 나는 어느 지점에 응고되지 않음을 느낀다. 다이가와 강에 등장하는 인솔 교사는 숲을 통과하며 그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는 그에게 이곳은 처음부터 통합된 세계로 다가오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절벽을 이루는 암석을 설명하고 산과 나무 수종을 이해시킨다. 자칫 말을 잘못해서 정보가 잘못 전달될까 걱정한다. 곧 그의 관점이 바뀌는 지점이 찾아온다. 일행이 강물을 건너야하는 상황에서 이제 돌은 유문암이라는 이름을 넘어선다. 돌 입장에서는 징검돌이라는 다른 상황을 맞은 것이고 인솔 교사 입장에서는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징검돌 놓는 일을 맡게 된 것이다. ‘인솔 교사는 현장 체험 온 학생들을 인솔한다는 것은 과학적 사실을 알려주는 것에서 머무는 일이 아니다. 그가 드디어 웃을 수 있게 된 것은 거기에서 한발 나와 돌들을 옮겨 일행에게 길을 만들어 주었을 때이다. 일행이 폭포에 도착했을 때 이제 숲의 절정이다. 철퍽철퍽 아이들의 신발 소리, 졸졸 떨어지는 물, 돌 위에 자라난 이끼, 매끄럽게 깎여진 돌, 그리고 폭포를 만든 물과 그 물이 만든 침식. 누구 하나가 특별하지 않고, 모두가 어우러져 있다. 인솔 교사는 학생들의 질문에 걱정이 없어 보인다. 이 작품의 시작과 끝에서 보여지는 인솔 교사는 고정된 사고에서 유동적 사고로의 이행을 엿보게 된다. 마치 숲을 부유하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미야자와 겐지는 왜 세상을 이런 관점으로 바라보고 싶었을까? 내가 다층적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 볼 때 얻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의 작품에서 말하는 과학관에 대해 고민하면서 막막함을 느꼈다. 내가 알던 과학이 그에게 어떻게 보였을까를 상상하는데 도무지 아리송하기만 했다. 어쩌면 내가 품고 있는 과학에 대한 전제 때문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과학을 세계와 별개로 이해했던 전제 말이다. 그의 작품에서 과학은 단일하거나 단절적이지 않다. 겐지가 바라보는 세계는 나와 너, 현재와 과거, 미래가 통합된 세계다. 그 세계를 더 잘 넘나들수 있다면 나는 조금 더 가볍고 상쾌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만 같다. 자연의 경이로움에 설명되지 않았던 부족함의 이유는 지금 여기 눈앞에 놓인 대자연이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고 있고, 동등한 온 생명이 어우러짐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 다시 말해 직감적으로 통합된 세계의 대칭성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지진과 태풍의 위험으로 인해 계획되었던 일본행을 미루고 국내 루트로 변경했다. 다른 루트를 걸으며 조몬 시대의 사람들, 선사인의 삶에 접속이 가능할까하는 질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미야자와 겐지라면 어떤 말을 해주었을까? 기타가미 강가를 이기리스 해안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처럼 나도 후포리 이중 매장 유적에서 다른 공간, 다른 시간을 상상할 수 있을까?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을 읽으며 어제보다 조금 더 보이리라 기대해본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