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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와 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미야자와 겐지의 생애와 세계관] 믿음을 살아낸 시인

작성자
최수정
작성일
2024-08-23 15:09
조회
160

<미야자와 겐지의 생애와 세계관>

2024.8.22. 최수정

 

믿음을 살아낸 시인

미야자와 겐지みやざわけんじ, 宮沢賢治, Miyazawa Kenji(1896.8.27.~1933.9.21.)

 

‘1896년 이와테현 하나마키(花巻)에서 태어나, 모리오카 고등농림학교(盛岡高等農林學校)를 졸업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단가(短歌)를 짓고, 법화경을 읽었다. 1921년에 문필에 의한 대승불교 포교를 결의하고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졸업 후 일시 동경에 가 있으면서 작품을 본격적으로 쓰시 시작했다. 누이동생 토시코의 병 때문에 귀향해서 히에누키농학교(현재 하나마키농업고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시와 동화를 썼다. 1924년 시집 봄과 수라와 동화집 주문이 많은 요리점을 각각 자비로 출판했다. 농민을 위한 삶을 살고 싶어 농학교를 퇴직하고 스스로 농업생활을 실천하면서 1926년에는 라스지인협회(羅須地人協會)를 설립하여 농촌운동에 나섰다.

라스지인협회에서 농민들에게 과학적 지식, 농지개량법, 화학의 기초, 토양학, 식물학, 비료, 농민예술, 에스페란토어 등을 가르쳤다. 근처의 마을을 다니며 무료로 농업 강연도 하고 비료 상담을 통해 비료설계를 해주었다. 비료설계란 농작물의 품종, 농사법, 시기, 생육 조건, 토양 조건 등에 따라 비료의 종류와 양을 조절하는 일이었다. 토요일에는 아이들을 위한 모임도 갖고 찬송가 등을 가르쳐주고 동화도 들려주었다.

그러나 겐지의 몸을 아끼지 않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에게 그의 이상은 너무 높고 어려웠다. 그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부잣집 아들이 호기를 부리며 도락을 즐긴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는 빗속이나 뜨거운 여름의 태양 아래도 마다하지 않고 이 마을 저 마을로 돌아다녔지만, 예측하지 못한 나쁜 날씨가 닥쳐오면 그가 아무리 애써 비료를 설계해도 아무런 효과도 발휘할 수 없었다. 벼가 눈앞에서 쓰러져 가는 것을 보는 미야자와 겐지의 마음도 무너져 갔다. 그런 탓에 몸은 자꾸 여위어갔다. 그러다가 건강이 안 좋아져 쓰러졌고 회복과 악화를 반복하다 결국 1933921일 급성 폐렴으로 37세에 세상을 떠났다.’(미야자와 겐지의 세계, 류주한, 63)

 

이기리스 해안

미야자와 겐지의 주무대가 되는 이와테현은 섬나라 일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장 큰 섬인 혼슈의 가장 북쪽 지역인 6개 현을 포함하는 토호쿠(東北)지방의 일부다. 바로 위에 아오모리현이 있고, 왼쪽에는 아키타현, 아래쪽으로는 미야기현이 있다. 이와테현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남쪽으로 흐르는 큰 강이 키타가미(北上)강이다.

하나마키 농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 여름철이 되면 학생들을 데리고 키타가미 강으로 갔다. 자주 가던 곳은 하나마키의 동북 지역에 위치한 이기리스 해안이었다. 이곳은 이암(泥岩)이 드러나 있어서 영국의 백아(白亞:석회질의 부드러운 암석)의 해안과 같은 기분이 든다 하여 겐지가 명명한 곳이다. (이기리스는 English의 일본식 발음. 그리고 물론 실제로 강안(江岸)이지 해안은 아니다.) 이 부근은 호두의 화석도 발견되어 겐지에게 유구한 시간의 축적을 느끼게 만들어주기도 하는 곳이었다.’(미야자와 겐지의 세계류주한, 54)

 

심상(心像)스케치

미야자와 겐지는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며 시와 동화를 썼다. 들에 부는 바람과 숲의 나무와 꽃들이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하늘에 빛나는 별도, 길가의 전신주도, 동물들로 벌레들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미야자와 겐지는 자신의 글에 대해 심상 스케치란 말을 썼다. ‘만물이 마음에 비쳐오는 대로 스케치하듯 써 내려 갔다는 뜻이다. 그는 글을 통해 세상이 한 인간의 마음속으로 들어와 상호작용하여 생겨난 새로운 심경을 묘사했다.’

미야자와 겐지에게 세계는 언제나 생성 분화하면서 이 세상이 형성된 태초이래 영원히 흐르는 생명의 흐름’, 운동의 연속이었다. ‘심상스케치나와 함께 명멸하고 동시에 느끼는존재의 공감각적 마주침에 대한 기억이었다. ‘라는 존재와 세상이 끊임없이 유동하며 변화하는 과정을 그려내는 시간이었다.

그의 동화에서 소리, 색채 또는 빛의 여러 감각 현상들은 각각의 세계를 갖고 있으며 이들은 서로 관련되고 교류하고 통일된다. 빛과 소리의 강도가 색의 잔상을 강화하거나 약화하고 부딪히며 흔들리고 섞이면서 현상들을 변화시킨다.’ 그가 태양의 환술이라 부르는 것처럼 이것은 마치 마술과 같다. 그에게 시시각각 다르게 보이는 세계는 이상한 것이나 예외적인 일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평범한 일이었다. 그가 보는 세상은 그 자체로 잠시도 머무르지 않고 모두 함께 닿고 닿아지고, 만지고 만져지며 동시 생성되고 있었다. 그는 주체와 대상이 분리되지 않는 순수한 감각의 마주침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는 그 세계 속에 살고 있었다.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세계는 사람과 동물의 세계가 있는 그대로 동등함이 전제되어 있다. 그 그 동등한 세계를 오가는 사람과 동물의 친밀한 교감 내지는 함께 느끼는 즐거움을 동화로 구현하고자 한다. 그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는 인간과 동물이 서로 섞이고 합일되는 세계를 이야기한다. 첼리스트 고슈의 주인공이 불청객 같이 느끼던 동물들에게서 자신도 모르게 음악의 기예를 배우고 나누듯이, 인간과 동물이 자신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서로가 서로를 통해 알고 배우고 변화해가는 도중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인간과 자연, ·식물이 하나가 되는 그 세계는 한편, 인간이 동물을 먹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미야자와 겐지 동화세계는 생명의 근본적인 번뇌, 육식의 딜레마에 끊임없이 고통스러워한다. 인간도 동물의 일종이며, 사람도 동물도 이 세계에서는 대등하고 평등하다는 그의 생명관에 배치되는 듯한 이 육식의 딜레마에서 미야자와 겐지의 깊은 아픔이 느껴진다.

미야자와 겐지는 살아 있는 존재는 모두 형제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당신은 사람과 동물, 식물, 광물을 모두 함유하는 의미다. 그가 생전 사비로 발간한 유일한 동화집주문이 많은 요리점서문에 그의 이런 세계관이 잘 나타나 있다. 이 글에서 그는 자신의 모든 글이 사람과 동물의 세계를 빛과 바람을 타고 오가며 숲과 들판 등에서 동물들로부터 이야기받아온것이라 말한다. 그의 수많은 이야기는 먼 북쪽의 몹시 추운 곳에서 바람에 실려 토막토막 날아왔습니다”(빙하쥐 모피), “이상한 엽서가 왔습니다”(도토리와 들고양이)라고 시작한다.

그에게 바람의 언어로 이야기를 전해주는 존재는 언제나 인간이란 존재를 넘어서 있고, ‘라는 존재 또한 인간의 형상을 넘어 바람을 타고 어디로든 날아가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 그는 봄과 아수라의 서시 첫 문장에서 는 실체가 아닌 하나의 현상이라고 과감하게 쓰고 있다. ‘나라고 하는 현상라는 인간과 동물, 어쩌면 인간과 자연이라는 존재가 대치적 존재가 아니라, 차원 높은 세계 안에서 사람과 동물 혹은 더 넓게는 자연과 관계를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하나의 생명 현상이라는 것이다.

 

 

()

나라고 하는 현상은

가정된 유기 교류 전등의

하나의 푸른 조명입니다.

(온갖 투명한 유령의 복합체)

풍경과 다른 모든 것과 함께

조조히 명멸하며

잇달아 또렷이 불을 밝히는

인과 교류 전등의

하나의 푸른 조명입니다

(빛은 변함없으되 전등은 사라져)

……

(전부 나와 함께 명멸하고

모두가 동시에 느끼는 것)”

 

(미야자와 겐지, 정수윤 옮김,봄과 아수라, 읻다, 13)

 

이하토브

이하토브는 하나의 지명이다.(중략) 실은 저자의 심상 속에 이러한 모습으로 실재하는 드림랜드인 일본 이와테현이다. 그곳에서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사람이 한순간에 얼음 구름 위로 날아올라 대순환의 바람을 따라 북쪽으로 여행할 수도 있고, 튤립 아래를 지나는 개미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죄와 슬픔도 그곳에서는 성스럽고 아름답게 빛난다. 깊은 너도밤나무 숲과, 바람과 그림자, 고기 풀과, 이상한 도시 베링시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전신주 행렬, 그것은 정말로 신비하고 즐거운 국토이다. ‘이하토브그 어떤 일도 가능한이상향이다. (주문이 많은 요리점광고문)’(조문주,불과 아수라 이야기, 485)

미야자와 겐지는 이 이상향에서 모두가 풍요로운 삶을 살기를 원했다. 하지만 농업이라는 생업수단은 자연에 인위적 변화를 가하는 파괴를 내포하고 있었다. 숲을 깎아버리고, 불태우고, 개간하여 논밭과 목장 등 인공적인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 전제가 된다. 그것은 식물을 재배함과 동시에 전부터 그곳에 살고 있던 동물들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아 추방시켜버리는 폭력적인 행위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농업을 그만두고 선택할 수 있는 생활수단이 있기나 할까? 가장 원시적인 생활방식인 수렵채집생활로 돌아가더라도 야생 동물들을 죽이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미야자와 겐지는 자신의 글에 이런 고뇌를 표출했다.

미야자와 겐지에게 농업은 인간도 포함한 모든 생물이 공생할 수 있는 새로운 생애의 터전을 만드는 수단이어야 했다. 숲과 들판은 오로지 인간만을 위해 작물을 생산하는 곳이 아니라 개구리, 개미, 쥐 등 벌레라고 멸시받는 작은 생명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주고, 그들도 즐겁게 살 수 있는 장소이며, 말과 소는 함께 논밭을 경작하는 동료이며, 숲은 그들의 야성을 있는 그대로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는 곳이었다. 숲은 농민에게는 산의 풍성한 먹거리를 안겨주고 연료를 공급해주는 곳이자 동시에 새와 동물들, 그 밖에 여러 동물들이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곳, 인간과 동물이 평등하게 왕래할 수 있는 공유지였다. 깊은 숲속은 조상들의 혼령이 깃든 영험한 산이며, 산고양이 등 산의 정령들이 사는 이계(異界)였다.

미야자와 겐지에게 이하토브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혜를 구사하고, 어디까지나 생물의 일원이라는 겸허함을 토대로 살아 있는 것은 모두 형제이며, ‘세계가 모두 행복해지지 않는 한 개인의 행복은 있을 수 없다는 생명존재론이 기초가 된 사상을 구현하는 이상향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만물의 자기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곳이다. 살기 위해 먹어야 하고 살리기 위해 먹혀야 하는 세계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희생에 의해 살아가는 존재임을 자각한다.‘(류주환, 미야자와 켄지의 세계, 퍼플)

 

비에도 지지 않고(ニモマケズ)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을 지니며
욕심이 없이
화내는 법도 없이
언제나 조용히 미소 짓는다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약간의 채소를 먹으며
세상 모든 일을
제 몫을 셈하지 않고
잘 보고 듣고 헤아려
그리하여 잊지 않고
들판 솔숲 그늘 아래
작은 초가지붕 오두막에 몸을 누이며
동쪽에 아픈 아이가 있으면
가서 보살펴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가 있으면
가서 그 볏짐을 지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가서 무서울 것 없으니 괜찮다 하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 있으면
부질없는 짓이니 그만두라고 하고
가뭄 든 때에는 눈물 흘리고
추위 든 여름에는 버둥버둥 걸으며
모두에게 바보라 불리고
칭찬도 받지 않고
고통도 주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네

 

 

ニモマケズ
ニモマケズ
ニモサニモマケヌ
丈夫ナカラダヲモチ
ハナク
シテラズ
イツモシヅカニワラッテヰル
一日玄米四合
味噌シノ野菜ヲタベ
アラユルコトヲ
ジブンヲカンジョウニレズニ
ヨクミキキシワカリ
ソシテワスレズ
野原
サナブキノ小屋ニヰテ
病気ノコドモアレバ
ッテ看病シテヤリ
西ニツカレタアレバ
ッテソノ
ニサウナアレバ
ッテコハガラナクテモイヽトイヒ
ニケンクヮヤソショウガアレバ
ツマラナイカラヤメロトイヒ
ヒデリノトキハナミダヲナガシ
サムサノナツハオロオロアルキ
ミンナニデクノボートヨバレ
ホメラレモセズ
クニモサレズ
サウイフモノニ
ワタシハナリタイ

 

전체 1

  • 2024-08-26 02:05

    수정샘 글을 읽으니 미야자와 겐지의 삶에 비료 설계를 하는 구스코 부도리의 모습, 입안에 우연히 들어와 죽는 벌레를 가슴 아파하는 쏙독새의 모습, 동물들과 교류하며 변해가는 첼리스트 고슈의 모습이 다 담겨 있네요. 자신의 믿음을 삶으로 만들어내려 노력한 미야자와 겐지의 모습이 아름다우면서 슬픕니다. 바람에 실려오는 토막토막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숲과 들판의 동물의 이야기를 받아적는 겐지의 섬세함이 너무 멋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