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
유덕한 사람은 자유롭다
[죽음을 최소한으로 생각하라] 우정과 용기
216쪽 스피노자가 말하는 친교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행동이 “타인의 이익을 위한” 호의를 수반하고, “예의와 자비” 같은 것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자유인은 자신의 관대함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친교를 맺기 위해 노력하며 (…..)자신과 타인들을 자유로운 이성의 판단에 의해 인도하고 자신이 가장 탁월하다고 알고 있는 것만을 행하기 위해 노력한다.” 여기서 가장 탁월한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에게도 가장 탁월한 것을 말한다.
지난 시간 스피노자의 이기주의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기주의라는 어휘를 떠올리면 부정적인 느낌이 먼저 올라온다. 세상 나만 존재하고 남은 없다는 듯한 생각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피노자에게 이기주의는 긍정적이고 현명하기까지 하다. 내가 타인의 삶을 향상시키는 만큼, 그는 나의 삶을 향상시켜 내가 그 사람에게 더 유용해진다는 순환적 성격을 띤다. 그것은 결국 나에게 이로운 일이 된다. 자유인이 타인에 대해 베푸는 관대함, 타인과 나누는 친밀감도 이 현명한 이기주의가 바탕이 된다. 나의 친교가 이성의 인도에 따르도록 이끌게 된다. 그렇다면 더 많은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는 일은 나로서는 더없이 좋은 일인 것이다. 스티븐 내들러도 이에 “이성에 따라 사는 사람이라면 가능한 많은 사람과 진실하고 친밀한 친교를 맺기 위해 노력할 것”(221)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수’적으로 관계를 맺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은 사실 두렵다. 그만큼 사이에서 오는 감정의 충돌이 많아질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혼자 있을 때 속이 얼마나 편한가. 그럼에도 더 많은 사람들 속에서 더 많은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는 상황에 맞게, 조건에 맞게 나를 변용할 때 나는 더욱 유용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 기꺼이 더 많은 속 시끄러움을 감수하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