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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화 답사

한반도 the Korean Peninsula

 

[한반도 중남부 선사유적 답사기] 붉은 빛깔에 담긴 대칭성(기헌)

작성자
인문세
작성일
2024-09-15 22:50
조회
166

 

주기상 여름이 끝이지만 더위가 사그라들지 않은 8월 말 인문세 답사팀은 잃어버린 대칭성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답사를 떠났다. 곰에서 왕으로의 나카자와 신이치는 원시사회 신화에서 발견되는 대칭성을 소개한다. 원시사회는 인간과 자연 사이에 공존을 위해 끊임없는 균형 유지에 힘을 쏟는다. 이 사회에서는 어느 한 존재만 우월하지 않고, 온 존재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연어를 잡을 때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 살과 내장을 깨끗이 먹은 후에 남은 뼈나 껍질을 정성스럽게 다루었다. 작년 북해도 답사팀이 자연을 섬기는 일본의 아이누마을에 방문했을 때, 그들이 연어 가죽으로 만든 옷과 신발에서 인디언들과 같은 삶의 방식을 발견했었다. 내 눈에 쓸모없을 것 같고 약하게만 보이는 물고기 가죽이 대칭성 사회에서는 한땀 한땀 정성을 들여 다시 살아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문제는 국가의 등장과 함께 그 균형이 깨지고 억압과 폭력이 난무하는 야만적인 사회가 된 것이다.

물질만능주의로 점철된 오늘날도 과도하게 한 방향으로 기울어져 대칭성을 찾아보기란 어려운일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번 답사를 떠나서 정말 숨은 대칭성을 알아볼 수 있을까? 인류학이란 답을 알 수 없는 학문이지만 그렇기에 부푼 기대감을 안고 떠날 수 있게 하는 학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거나 상상하고 무턱대고 떠날 수 없다. 허남린 선생님께서 인문세 홈페이지에 연재하신 글단조로움과 즐거움의 역설에서 나는 우리의 답사를 생각한다. 임진왜란을 연구를 위해 온 세상에 흩어져있는 흔적을 작은 보폭으로 찾아다니신 경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이런 세월을 지나면서 재미는 아는 만큼 조금씩 커 간다는 것을 느꼈다. [중략] 여기에 알아가는 것이 좀 더 깊어지면 신이 나고 흥이 났다. 물론 많은 것을 두루두루 그리고 가로세로 깊게 알면 더더욱 좋았을 것이다.” 그렇다. 인류학 답사를 가기 위해 관련 자료를 찾고, 책을 보고 글을 쓰고 토론을 하는 모든 과정과 답사 자체의 경험은 공부가 더 재미있고 깊어지도록 자양분이 되어 준다. 당장 대칭성을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속되는 경험 후에야 우리는 조금 더 알게 되고, 조금 더 보일 것이다.

답사를 준비하며 유적지별 식생, 의례, 죽음, 토기(유물) 등 각자 맡은 영역을 정리하여 자료집을 만들었다. 나는 이 작업을 하며 한 유물이 눈에 띄었다. 고레카와 석기시대 유적지에서 발견된 옻칠한 붉은 나무 그릇이었다. 처음엔 ‘2천 년 넘은 시간, 습지에 잠겨있었음에도 어째서 훼손의 정도를 거의 느낄 수 없을까라는 질문이 들었다. 조몬인들은 옻을 다루는 기술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우수한 기술력의 감탄도 잠시, 나의 질문은 옻칠의 색에 머물렀다. 옻칠은 까다롭게 수액을 채취하고 독성 제거가 선행되어야 한다. 여러번 정제한 수액에 자연에서 얻은 색소를 첨가하여 색을 만들고 덧칠을 거듭하여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안전하게 본래의 상태를 유지한다. 그런데 어째서 다른 색이 아닌 붉은색을 선택했을까? 찾은 자료상으로는 이곳에서 다른 색을 띤 옻칠 그릇은 보지 못했다. 분명 붉은색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는 장례식에 갈 때 애도의 의미로 되도록 무채색 옷을 입고 진한 화장을 자제한다. 결혼식을 갈 때는 흰색이나 화려한 옷을 피한다. 아이들 생일 파티를 할 때는 축하의 의미를 더욱 드러내기 위해 반짝반짝 빛나는 색으로 장식을 한다. 나에게 색에 닮긴 의미가 있듯이 선사인들에게도 붉은색 그릇은 어떤 의미가 있을 것만 같았다.

 

 


전승된 색, 중단된 색

그동안 보았던 토기를 떠올려보면 선사시대는 붉은 토기가 주류라면 고려시대는 청자의 푸른빛, 조선시대에는 달처럼 하얀빛을 띠는 자기가 주류를 이룬다. 유물의 구분상 토기와 자기는 굽는 온도에 따른다. 선사인은 야외 장작더미에서 토기를 소성하였기에 내구성이 약한 반면, 가마에서 구워내는 자기는 높은 온도에서 구워져 유리질화되어 내구성이 강하다. 역사적으로 붉은간토기는 청동기시대와 함께 그 자취를 감추고 긴 목을 가진 검은간토기로 대체된다고 한다. 청동기 이후 자기로 이어지는 토기의 역사에서 붉은색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확연하게 비중이 적어졌다. 어느 학자의 논문에서 붉은간토기의 색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음을 설명한다. 과연 그럴까? <국립 김해 박물관>에는 신석기 붉은칠토기를 전시하고 있다. 신석기인은 진흙을 구우면 단단하게 변한다는 것을 알았다. 흙의 성분에서 붉은색을 내고, 불의 그을음으로 검은색이 나타나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현재 <국립 진주 박물관>에서 VR방식으로 운영중인 × = 홍도 × 채도전시회(https://embed.360vrmuseum.com/showcase/mqfqVkRjiGm)에 따르면 청동기시대의 붉은간토기는 앞선 신석기시대에서 계승되었다. 붉은간토기는 주로 제의용으로 사용되었으며, 일반 살림살이로 사용하던 토기와 차별되는 아름다운 형태와 색으로 유추하여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답사팀은 <국립 김해 박물관>에서 청동기의 붉은간토기를 볼 수 있었다. 붉은간토기는 무덤의 껴묻거리로 우리나라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질 좋은 바탕흙에 붉은 안료를 개어 발라 윤을 내는 방식으로 정성스럽게 만들었다고 한다. 각각의 토기들은 모양도 천차만별이고, 붉음의 정도가 약간씩 달라 보인다. 옻칠처럼 선명한 빨간색을 띄지는 않지만 황토와 가깝거나 그보다 진하고 혹은 그보다 흐리다. 아마 그때의 날씨나 말리는 시간, 다듬는 정도, 준비한 재료 등 상황에 따라, 그리고 당면한 필요에 따라 만들었기 때문에 모두 다른 모습, 다른 색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피와 생명

살아있는 우리 몸에서 피는 강렬한 붉은 색을 띤다. 심장에서 펌프질하여 온몸을 계속 돌면서 순환한다. 그러니 붉은 피는 곧 생()이다. 심장이 멈추었을 때 피는 그 색을 잃는다. 죽음은 어둡고 흑색이다. 사냥하며 살았던 선사인들에게도 생과 사가 붉음과 흑의 빛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국립 진주 박물관>에서 × = 홍도 × 채도’ VR전시회에서도 토기의 붉은색은 생명의 상징이자 주술과 벽사의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한다. 구석기인들이 죽은 사람에게 붉은 피가 다시 돌아 생명을 얻길 바랐던 흔적이 연천군 <전곡 선사 박물관>에 있다. 이탈리아 리구리아 아레네 칸디데Arene Candide 동굴에서 발견된 어린 소년의 재현된 무덤으로, 독특한 점은 인골이 붉게 물들어 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치 피가 돌고 살이 곧 돋아 오를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든다. 주검 위로 뿌린 붉은색의 정체는 산화철이 섞인 흙으로 시신에 뿌리기 위해 일부러 멀리 가서 구해왔다고 안내되어 있다. 오래전 인류가 죽음 근처에서 붉은색을 정성스럽게 다루고 가져다둔 이유는 다시 살아날 생명을 상징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산 가덕도 장항 신석기 유적에서 인골과 함께 묻힌 붉은색 안료가 발견되었다. 망자를 죽음의 세계로 보내지만 다시 돌아올 것을 생각할 때 핏빛의 붉은색만큼 생명력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색이 또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 라스코 동굴이나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에서도 붉은색을 특별하게 생각한 구석기 인류를 만날 수 있다. 샤먼 의식인지 사냥을 나서기전 제의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구석기 인류는 이 깊은 동굴에서 그림을 그렸다. 알타미라에 그려진 들소는 목탄을 이용해 검정색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산화철을 이용해 붉은색으로 살아있는 듯 표현했다. 먹고 먹히는 관계 속에서 역동적인 동물들의 뜨겁고 신성한 피가 느껴지는 듯하다. 흙에 섞인 철이 산소와 만나면 붉게 변하는 것은 자연의 원리이지만 선사인들이 사방에 붉은 흙이 가득하거나 색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서 그 색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일부러 생명력을 표현하기 위해 정성 들였으리라 생각되었다. 붉게 타는 불을 사용했던 인류는 자신을 먹여 살리는 붉은 피의 희생물을 보았다. 또 붉은 태양빛이 내리쬐는 그 아래에서 근원적인 생명의 힘을 느꼈을 것이다. 붉은색은 대칭적 세계의 투영이다.

오늘날 삶과 죽음은 극과 극으로 멀리 있고, 완벽하게 단절된 세계처럼 느껴진다. 조금 이상한 경우도 있다. 사회적 기준에 맞추어 살다보니 살아있지만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거나, 무언가를 욕망하거나 쌓아둘 때는 이 삶이 영원할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선사인들의 생()을 상상하자니 그 스케일이 거대한 우주처럼 다가온다. 그들에게 두 세계는 다르지 않고 순환하며 하나의 원을 이룬다. 생명이 언젠가 세계로 다시 돌아온다는 선사인들의 사고방식을 상상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들은 두 세계가 이어져 있다고 애써 생각한 게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럽게 세계를 인식했을 것이다. 붉은색을 사용한 것도 그렇다. 애써서 이 색을 가까이 두었다기보다는 세계에 대한 그들의 인식이 자연스럽게 붉은색 가까이서 살도록 유도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해보인다. 나에게 과학적 원리, 구성된 성분으로만 보였던 단순한 붉은색이 이제 다른 세계를 여는 버튼이 된 것 같다. 답사기를 쓰고 보니 계속 이런저런 버튼을 만들어 가고 싶다. 경험하는 만큼 알아지고, 알아지는 만큼 재미도 더 깊어질 테니 말이다

전체 1

  • 2024-09-21 17:21

    글의 첫 문단은 없어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본문의 내용과 별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첫 문단의 ‘대칭성’에 관한 이야기를 꼭 넣고 싶다면 ‘대칭성성과 붉은색의 생명력을 연결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붉은 색의 생명력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가져온 유물 유적으로 붉은간토기, 아레네 칸디데 동굴의 소년 무덤이 있습니다. 두 유물과 유적 모두 선생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붉은 색의 의미가 드러나도록 유물과 유적에 대한 설명이나 묘사가 더 있으면 좋겠습니다. 크기와 형태, 연대 등도 함께. 그리고 제의용으로 사용된 붉은간토기의 경우, 제의용으로 ‘붉은 색’의 토기를 사용한 데에 대해 선생님의 해석이 좀 더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에 ‘토기’와 붉은색, 생명력을 연결시킬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토기와 자기의 구분, 토기의 역사에서 붉은 색이 점점 사라져간다는 내용과 선사-고려-조선으로 갈수록 토기의 색이 붉은-청색-백색으로 변해가는 것이 생명력과 연결되어 이야기될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이 부분은 순전히 제 느낌^^)
    조몬 자료집을 조사하시면서 생명력과 관련되는 이야기를 가져와도 좋을 것 같고,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이 생명력이 단지 살아 있는 것의 생명력이 아니라 순환의 생명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제의용과 무덤에 대한 선생님의 해석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