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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유덕한 사람은 자유롭다

 

[죽음은 최소한으로 생각하라] 8. 선의와 친교(2)

작성자
그럴수있지
작성일
2024-09-16 17:58
조회
97
이성에 따라 사는 사람이라면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진실하고 친밀한 친교를 맺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어쨌든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에게 이롭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215 

진실하고 친밀한 친교는 이롭다. 

우리가 방금 증명한 것은 거의 모든 사람이 인간은 인간에 대해 신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일상의 경험 그 자체에서 매우 빈번하고 분명하게 입증된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이성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는 일은 드물다. 곧 사람들은 대개 서로를 시기하고 못마땅하게 여기게 되어 있다. 그런데도 그들이 고립되어서는 서로 살아갈 수 없으므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정의에 대해 대부분 크게 마음에 들어 한다. 그리고 실제 보더라도 공동사회로부터 손해보다는 휠씬 더 많은 이익이 생겨난다. 따라서 풍자가들이 인간사를 마음껏 조소하고, 신학자들이 증오하고,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대로 야생의 전원생활을 예찬하고 인간을 경멸하며 짐승에 대해 경탄하도록 내버려 두자. 그렇게 한다 해도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 그들은 서로 도움으로써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훨씬 쉽게 갖출 수 있고, 서로의 힘을 연합함으로써만 도처에서 그들을 노리는 위험을 벗어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짐승들의 행동보다는 사람들의 행동을 바라보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고 우리의 인식에 훨씬 더 어울리는 것이라는 점은 굳이 말하지 않겠다… –[에티카] 4부 정리 35 주석

하지만 정서에 휘둘리는 인간은 서로를 시기하고 못마땅하게 여기게 되어 있다. 이성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는 일이 드무니까. 그래도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 결국, 그게 우리에게 유용함을 이성은 잘 알고 있다. 

인간 신체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변용될 수 있도록 배치하거나 인간 신체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외부 물체를 변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인간에게 유용하다. 그리고 그것이 신체가 더 많은 방식으로 외부 물체들에 의해 변용될 수 있고 또 그것들을 변용할 수 있게 만들수록 그것은 더 유용하다. 반대로 신체가 이 일을 덜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해롭다[에티카] 4부 정리 38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신체가 더 많이 외부 물체와 상호 변용되도록 배치하는 것이다. 내 신체의 배치가 슬픔의 정서를 일으킨다면 배치를 바꾸면 된다.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내 신체가 타인 혹은 상황과 상호 변용하는 그 양식임을 인식하고, 이성이 내 신체가 기쁨의 정서를 일으키도록 인도하는 대로 따라서 신체를 배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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