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안데르센 동화전집] 이야기되며 살아나는 인어 공주
이야기되며 살아나는 인어 공주
2024.9.18. 최수정
안데르센은 세상은 온통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동화에는 바람도, 돌도, 꽃도 살아있고 말을 한다. 그는 「천국의 정원」에서 ‘바람의 동굴’에 사는 북풍의 입을 빌어 ‘좋은 일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들어야’(『안데르센 동화전집』, 155쪽) 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좋은 이야기는 입으로 입으로 계속 전해지며 생명력을 얻는다고 하는 것 같다. 「천국의 정원」에 등장하는 불사조는 수백 년 동안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부리로 잎에 새겨 넣어 천국의 정원 공주에게 전해주라고 한다. 천국의 정원에 사는 공주는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멈추지 않게 전달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는 죽음이 없을 것이다.
안데르센은 ‘시간’이 이 세상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살아서 움직이게 한다.(163쪽)고 한다. 그것은 책을 읽으면서 더욱 느끼는 것 같다. 오랜만에 읽은 「인어 공주」 이야기도 내가 어렸을 때 읽었던 그 낭만적인 이야기로 읽히지 않는다. 그사이 나의 시간이 흘러 그 이야기가 다르게 살아 움직이며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안데르센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인어 공주」는 인간 세계를 동경한 바다 공주가 인간이 되기 위해 마녀와 계약을 하고, 지느러미 대신 다리를 얻어 지상으로 올라오지만, 왕자의 사람을 얻지 못하고 물거품이 된다는 이야기다. 어린 시절 동화로 읽었을 때는 인어공주의 모험심과 사랑을 위한 자기 희생으로 마무리되는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제 「인어 공주」를 다르게 읽어보려고 할 때, 나는 인어 공주에서 가질 수 없는 것을 꿈꾸는 욕망을 본다. 불가능한 영역으로 나뉜 존재와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빠지고, 그를 통해 불멸을 꿈꾸는 존재가 되려 하는 모습에서 자기를 부정하는 모습을 본다.
인어 공주의 할머니 말에 따르면 인간은 죽어서 흙이 된 후에도 영원히 사는 영혼을 가지고 있다. 영혼은 맑은 공기를 뚫고 반짝이는 별들 너머로 간다. 인어 공주가 물 위에 떠올라 인간 세계를 보듯이, 인간들은 그들이 있는 곳을 떠나 더 멀리 올라가 반짝이는 별들 너머로 간다. 인어 공주는 인간처럼 불멸의 영혼을 얻고 싶었다. 지상을 동경하고 더 나아가 그 위 지상 너머에서 반짝이는 별이 되고 싶었다. 자기가 있는 곳에서 더 멀리 더 높이 올라가고 싶었다. 인어 공주는 왕자의 사랑을 얻어 그와 하나가 되면 불멸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왕자는 자신을 불멸로 이끄는 ‘다리’가 돼 줄 것이다. 이를 위해 인어공주는 마녀를 찾아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하게 해주던 혀를 내어주었다.
말을 잃고 다리를 얻은 인어공주는 행복하게 됐을까. 「인어 공주」가 그토록 얻고 싶은 ‘다리’를 떠올리게 하는 동화가 또 있다. 「행운의 덧신」이란 동화다. 행운의 요정은 그 ‘덧신’이 덧신을 신은 사람을 어디든지 가고 싶은 곳으로 데려다주고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 덧신을 신은 사람은 모두 불행해지고 고통스러워한다. 오히려 그 덧신에서 해방되는 순간을 축하하게 된다.
인어공주도 지느러미를 벗고 ‘다리’라는 덧신을 신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이것으로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고 여기를 떠나고 싶은 마음으로는 결코 행복을 얻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일까. 내가 있는 곳보다 더 위는 무엇이 있을까.
행운의 덧신을 내밀었던 행운의 요정은 덧신을 신고 여행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신학생이 ‘몸은 가만히 쉬고 영혼만 여행하고 싶어’하며 죽은 것을 보자 그에게 자신이 ‘영원한 행복’을 주었다고 말하며 기뻐한다. 그러나 근심의 요정은 죽은 자에게 ‘선물’을 준다며, 죽은 자의 발에서 덧신을 벗겨낸다. 그에게 지금 여기 일상의 보물을 발견할 기회를 다시 주겠다는 것이다. 이 지상의 보물은 지금 여기에서 근심과 함께하는 나의 일상이다.
「데이지 꽃」은 자신이 초라한 들꽃에 불과한데도 제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작은 데이지 꽃은 평범한 월요일인데도 축제일이나 되는 것처럼 행복했다. 데이지 꽃은 매일 햇빛이 얼마나 따뜻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가를 배웠다. 하늘을 나는 종달새를 바라보면서 자신이 종달새처럼 날 수도 없고 노래도 하지 못하는 것이 슬프지는 않았다. 인어 공주처럼 물속보다 물 위를 동경하지도 않았고, 이곳을 떠나기 위해 지느러미를 버리고 다리를 갖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벌거벗은 임금님」에서는 ‘일할 능력이 없거나 바보 같은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신비한 옷감’으로 옷을 만든다는 재단사들의 말이 무서워 벌거벗게 된 임금님 앞에서 철없는 아이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폭로한다. 임금님이 벌거벗은 채 행차를 하던 그때 보이지 않은 것은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침묵하며 군중 속에 자신을 보이지 않게 감추었다. 그런데 그중에 진실을 말하는 아이가 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 의견을 말하면서 보이지 않던 자기를 보이게 했다.
인어 공주는 마녀에게 스스로 찾아가 자기 혀를 자르고 말을 하지 못하게 됐다. 그것은 인어 공주가 자기 자신을 보이지 않게 한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상황에서도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존재와 같다.
말을 잃고 자신을 보이게 않게 만든 주인공이 또 있다. 「야생 백조」의 주인공 엘리자다. 새어머니인 왕비의 저주로 백조가 된 11명의 오빠들을 구하기 위해 쐐기풀로 갑옷을 짜는 엘리자는 요정에게 ‘절대로 말을 해서는 안 돼’라는 명령을 받는다. 오빠들의 목숨이 혀에 달려 있다고 하며 명심하라고 한다. 한마디 신음 소리조차 오빠들을 위험하게 할 수 있다. 침묵하며 자신을 버리고 동굴과 묘지 주위에서 자라는 쐐기풀과 하나가 되어야 마법의 옷이 완성된다. 말을 하지 못해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지 못하는 엘리자가 왕의 의심을 사서 사형을 당할 위기에 처할 때, 극적으로 오빠들에게 쐐기풀 옷을 던져 오빠들의 마법이 풀린다. 그때 비로서 엘리자는 자신의 입으로 스스로가 죄 없다는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큰오빠의 입을 통해 그녀의 이야기가 말해진다.
인어 공주는 자신이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불멸의 영혼을 얻기 위해 스스로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을 버렸다. 이야기할 수 있는 목소리야말로 이 세상에 자신의 영혼을 불멸하게 하는 것임을 몰랐다. 그래서 인어 공주는 삼백 년 동안 자기가 있는 조건 그 자리에서 착한 일을 많이 하고, 그것이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다시 말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그 이야기가 생명력을 얻을 때 인어 공주는 불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