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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인류학

두 손으로 도구를 다듬었던 인류의 지혜를 배우자

 

[기술 인류학] 인간은 무엇으로 살까

작성자
진진
작성일
2024-09-18 17:52
조회
109

인간은 무엇으로 살까

 

어떤 동사의 멸종(한승태 지음, 시대의 창)에서 저자는 자신이 경험한 직업들을 통해 특정 노동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여준다. 이 변화는 반복되는 노동의 행위로부터 오기도 하지만 그 직업이 사회구조 안에서 떠맡고 있는 부하들로부터도 온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의 경험을 개인적인 문제로만 치부하고 넘어갈 수 없다. 콜센터 상담사와 물류센터 상하차는 인간을 막장의 현장으로 내몰고, 모든 것을 온전히 그들이 감당하게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 속에서도 어떤 희망을 발견하고 다시 그 일로 돌아간다. 나는 이 모습들을 보면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천리마마트의 외주 콜센터 회사에서 고객들의 불만을 접수받고 해결해주는 일을 한다. 말이 해결이지 사실 그가 하는 일이라곤 쏟아붓는 요구와 불평에 죄송하다는 말과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을 반복해 상대가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일 잘하는 콜센터 상담사란 고객의 부정적인 감정을 모두 받아내면서 로봇처럼 정해진 말을 최대한 많이 반복하는 사람이 다. 하지만 인간은 로봇이 아니다. 타인의 말과 감정은 함께 있는 이에게 이염된다.

두 번째로 저자가 들려주는 일은 물류센터 상하차 작업이다. 물류센터의 모든 설비는 물건 위주로 시스템화되어 있고 인간은 최소한으로 고려된다. 물류센터의 일은 콜센터에 비하면 할 만한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두 일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을 요구받는다는 점에서 모두 비인간적이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 하루의 대부분을 타인의 불평불만을 듣는 일로 보낸 상담사들은 결국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진다. 그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 분명 자신이 아니건만, 그런 일을 반복적으로 경험한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기에 이른다. 저자는 이럴 때 화장실에 가서 자신의 책 리뷰를 검색해본다(한승태, 어떤 동사의 멸종, 시대의 창, 101)고 했다. 자신이 인간 욕받이가 아님을 딱 다음 콜을 받을 수 있을 만큼만 확인하고 오는 것이다. 또 저자가 이 일을 하면서 이곳도 살만한 곳이라고 느끼는 순간이 있는데, 진상고객에게 동료를 넘기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예의를 모두가 지킬 때이다.(물론 최택 같이 예의고 뭐고 자기 살 길 찾기에 바쁜 동료도 있지만 말이다.)

물류센터의 일도 정신적으로 힘들지 않다뿐이지 고단하기는 마찬가지다. 매번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 앞을 마주하는 그들은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을 해냈다는 데서 어떤 보람을 느낀다. 저자는 물류센터 일을 하면서 쌀벌한 20대 관리자의 깍듯한 인사를 받을 때가 가장 뭉클했다고 했다. 그 일의 노고를 아는 사람이 보내는 애정과 존경심이 담긴 인정’, 또 저자가 명장면으로 꼽는 석구 형님이 새벽에 물류센터를 나서면서 맞이하는 태양은 인간은 무엇으로 살까, 어떤 존재일까를 생각해보게 한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듯이 노동은 사람을 이러저러한 모습으로 깎는다. 콜센터도 물류센터도 그곳에서 오래 일한 사람은 그만의 특징을 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가 김훈은 뭘 해 먹고사는지 감이 안오는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라고 했다고 한다. 노동으로 망가지지 않은 인간만이 인간 본연의 모습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노동으로 인해 고통받고 망가져가는 와중에도 희망을 발견하고 함께 일하는 동료를 보는 사람들을 보았다. 반복되는 노동이 인간을 사지로 내몰아도 막장의 현장에서 공통으로 발견할 수 있는 그들의 모습이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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