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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유덕한 사람은 자유롭다

 

[죽음은 최소한으로 생각하라] 자살에 관하여_자기, 존재란

작성자
진진
작성일
2024-09-22 21:34
조회
84

자살에 관하여

 

4부 정리 20의 주석. 따라서 누구도, 그가 그의 본성에 반하는 외부 원인들에 의해 제압되지 않는 한에서,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추구하는 것 또는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말하거니와, 누구도 자신의 본성의 필연성에 의해 스스로 곡기를 끊는다거나 자살을 하게 되지는 않으며, 외부 원인들에 강제되어 이렇게 하는데, 이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실로 어떤 사람은, 칼을 쥐고 있던 오른팔을 다른 사람이 비틀어 그 자신을 향하도록 강제하는 바람에 그 칼로 심장이 찔려 자신을 살해하게 된다. 또는 세네카처럼 폭군의 명령으로 자신의 혈관을 드러내도록 강제되기도 한다. 곧 더 큰 악을 피하기 위해 더 작은 악을 욕망하는 것이다. 또는 마지막으로 은밀한 외부 원인들이 그의 상상을 배치하고 그의 신체를 변용하여 이 신체가 앞선 본성과는 상반된 다른 본성, 정신 안에 그것에 대한 관념이 주어질 수 없는(3부 정리 10에 의해) 그런 본성을 지니게 된다. 하지만 인간이 그의 본성의 필연성에 의해 실존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거나 자신의 형상을 다른 것으로 변화시키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무로부터 어떤 것을 만들어내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리며, 각자가 조금만 성찰해본다면 이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스피노자는 자살을 외부 원인에 의한 수동적 행위라고 규정한다. 다르게 말해 자기 원인으로부터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이성적이고 유덕한 자유인은 자살하지 않는다. 하지만 죽음은 최소한으로 생각하라의 저자 스티븐 내들러는 꼭 그렇게만은 볼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인간이 이성적으로 자살을 선택할 수 있음을 스피노자가 인정할 수 있고 인정해야 한다고, 어쩌면 인정하고 있다고 결론 내릴 수 있는 타당한 근거가 있다. 스피노자의 자유인도 상황에 따라서는 정념이 아니라 인식과 오성에 근거한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다.(스티븐 내들러 지음, 연아람 옮김, 죽음은 최소한으로 생각하라, 232) 

스티븐 내들러가 이렇게 주장하는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는 이에 대한 근거로 정리 65의 따름정리를 가져온다. 

4부 정리 65의 따름정리. 이성의 인도 아래 우리는 [미래의] 더 커다란 좋음을 위해 [현재의]더 작은 나쁨을 추구할 것이며, 더 커다란 나쁨의 원인이 되는 더 작은 좋음은 개의치 않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더 작다고 하는 나쁨은 사실은 좋음이며, [더 작다고 하는] 좋음은 반대로 나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4부 정리 63의 따름정리에 의해) 우리는 전자를 욕구하고 후자는 개의치 않게 될 것이다.

 지금 자신에게 나쁜 일이더라도 미래의 더 커다란 좋음이라면 지금의 악을 행한다. 스티븐 내들러는 이 경우로 자살을 선택할 경우 이는 이성적이고 유덕한 일로 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4부 정리 20의 주석에도 나온다. 로마 네로 황제의 암살 계획에 연루되어 자살을 명받은 세네카는 더 큰 악을 피해 더 작은 악으로 자살을 행했다. 그런데, 이를 자유인의 이성적이고 유덕한 일로 볼 수 있을까 하는 데에는 아직 고개가 갸웃거려지긴 한다. 4부 정리 20의 주석에서 자살의 예로 들고 있는 세 가지는 외부 원인들에 강제되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스티븐 내들러의 논지를 충실히 따라가 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우리는 자기 존재 지속의 노력, 코나투스에서 자기를 어디까지 어떻게 볼 것이냐와 존재를 어떤 차원에서 볼 것이냐, 이 두 문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자기라는 개체에 국한해서 보지 않고 공동체의 차원에서 본다면 자살을 자기의 죽음으로 보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때 떠오려지는 죽음은 우리가 흔히 의로운 죽음이라고 부르는 자살이 될 것이다. 두 번째로 존재의 지속을 신체로 국한해 정의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스피노자는 인간에게는 연장과 사유, 두 속성이 있다고 했다. 자살로 인해 몸의 생명은 사라지지만 그로 인한 사유는 지속된다. 그런 의미에서 스티븐 내들러는 자기 보존이라는 코나투스를 단순한 지속적 삶이 아니라 자신의 완전한 본성과 이성적으로 유덕한 상태 그리고 띄어난 사유와 오성 능력을 보존하는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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