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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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와 초밥요리사] 문화의 연속성
문화의 연속성
추석 연휴에 아이와 동물원에 갔다. 동물원 유인원관에서 추석맞이로 침팬지와 오랑우탄에게 줄 간식을 직접 만들어 먹이는 행사가 있었다. 포도알, 건포도, 땅콩 등을 사료 반죽으로 감싸 경단을 만들어 복주머니에 넣은 후 사육장에 있는 침팬지에게 건넸다. 두 마리의 암컷 침팬지 중에 나이가 많은 할머니 침팬지가 먼저 다가와 간식 주머니를 받았다. 침팬지는 꽉 조여진 주머니의 입구를 벌려 끈을 느슨하게 만들고 경단을 꺼냈다. 경단을 갈라 안에 있는 포도와 땅콩을 꺼내 먼저 먹고 속을 감싸고 있는 반죽은 다른 손에 모았다. 사육사는 침팬지가 맛있는 것을 먼저 먹고 반죽은 나중에 먹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복주머니를 열고 간식을 꺼내는 거나 맛있는 부분을 먼저 먹으려 경단을 갈라 알맹이를 쏙 빼 먹는 모습 등을 보며 나는 연신 사람과 똑같다고 말했다. 나는 침팬지의 행동을 인간의 눈으로 보고 인간과 얼마나 유사한지 비교하고 있었다. 나는 인간과 동물이라는 이분법의 잣대로 동물을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프란스 드발은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에서 문화란 지구 생물체 중에서 인간만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다는 사람들의 생각에 무엇이 문화인지 과연 동물들은 문화가 없는지 묻는다. 그에 따르면 문화는 유전과 환경에 그 원인을 돌릴 수 없는 것이다. 문화는 개체가 독자적으로 생성할 수 없으며, 자신을 타자에게 드러내거나 타자를 관찰하고 타자를 모방함으로써 학습한 지식과 습관, 기능, 경향 및 선호 등이 세대를 걸쳐 축적되어 만들어진다(프란스 드발, 박성규 옮김,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 수희재, 43쪽~44쪽). 이런 관점에서 문화를 생각하니 나이가 많은 할머니 침팬지가 어린 침팬지보다 먼저 간식 주머니를 받고 할머니 침팬지가 복주머니를 여는 방법을 보고 어린 침팬지가 따라 하면서 동물원 침팬지만의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문화를 인간만의 고유한 특질로 보면 동물 대비 인간의 우월성과 인간 간의 우월성을 문화의 유무와 복잡성의 정도로 판단하게 된다. 생김새나 신체적 역량은 몸이라는 조건에서 나오고 종마다 발달한 기능이 다르므로 종간의 우열을 따질 수 없다. 생김새로 봐서 인간이 메뚜기보다 낫다고 어떻게 확증할 수 있을까. 침팬지와 보노보노와 같은 유인원과 인간은 머리, 몸통과 팔다리가 있고 손가락 발가락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여 환경과 접촉하고 소리와 몸짓으로 대화하기에, 즉 유전적으로도 97% 이상 같고 문화적으로도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유인원들과 그토록 연결되기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 유인원 다과회>라는 인간의 관점을 강요하는 억지라도 만들어야 그들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을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나’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타자가 필수적이다. 양육자가 아기의 표정과 행동 등 존재에 대해 반응을 해줌으로써 인간은 ‘나’라는 존재를 인정한다. ‘내’가 생기기 위해선 ‘타자’가 절대적이다. 동시에 자신의 관점으로 타자를 이해할 수밖에 없다. 내가 이해하는 타자와 타자가 바라보는 내가 공존해야 ‘나’도 있고 ‘타자’도 존재한다. 침팬지 ‘콩고’가 인간의 추상화를 연상시키는 그림을 그리고 모차르트가 만든 음악의 선율이 종달새의 노래처럼 들리는 것은 지구를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는 자신을 타자에게 표현하고 타자를 이해하고자 함이지 않을까. 종이나 그룹만의 고유한 문화가 있다지만 나는 인간의 문화가 인간에게만 영향을 받아 생긴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지구라는 환경적 조건에서 사는 모든 생명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그런 영향들이 각자 신체적 조건에 맞게 발현된 것이 문화이지 않을까. 문화란 나와 동물을 구분하는 기준이 아니라 나와 동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