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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스웨덴 특파원이 들려주는 슬기로운 외국살이

[슬기로운 tOkyO살이] 일본 시골 이야기 -히가시가와 정(東川町)-

작성자
토토로
작성일
2024-10-01 22:15
조회
59

  여름에 히가시가와 정을 다녀왔다. 작년 인문세 답사 때 꼭 가고 싶었지만, 일정상 방문하지 못했던 곳이다. 인문세 자연학 팀은 과제 책이었던 『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다케타즈 미노루 저, 김창원 역, 진선출판사)를 읽으며 위성사진에서도 끝없이 펼쳐진 논이 보일 정도로 광활한 곳은 어떤 곳일까, 히가시가와 정에 살면서 야생동물도 돌보고, 사진도 찍으시는 저자의 일상을 읽으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었다. 바로 그 히가시가와 정에 나는 북해도 답사로부터 꼭 1년 후에 가게 되었다. 

  도쿄(東京)에서 히가시가와 정으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비행기를 타고 아사히카와(旭川) 공항으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국내선 비행기 값 편도가 무려 동경-서울 왕복 티켓 값이다. 일본에서 큰 공항으로 가는 국내선은 비교적 저렴한 편이지만, 시골 공항으로 가는 국내선 가격은 사악하다. 아사히카와 공항에서 렌트카를 빌려 차로 15분 정도면 히가시가와 정에 도착한다. 공항과 이렇게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는 마을이라니…. 시골이지만 시골이 아닌 느낌이다.

  히가시가와 정은 일본 내에서는 상수도가 없는 마을, 쌀이 맛있는 마을, 사진의 마을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지도에서 보면 홋카이도(北海道)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구는 8,600명 정도가 된다. 동쪽에는 다이세츠잔(大雪山)국립공원이 위치하고 있어 마을 어디서든 다이세츠잔국립공원에서 가장 높은 아사히다케(旭岳)(2,291m)가 보인다. 히가시가와 정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아름답지만 개인적으로는 벼를 추수하기 전 황금빛으로 물든 논과 다이세츠잔에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초가을이 최고라 생각한다. 


  이 지역은 국립공원이 있으니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고, 물도 깨끗하고 맛있다. 상수도가 없는 마을이 무슨 말인가 했더니, 전 세대가 모두 지하수를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수도요금이 은근 비싼 일본에서 이렇게 호사스러운 마을이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물로 벼농사를 짓는다고 하니 이 동네 쌀은 맛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쌀 소비가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이 동네 쌀은 없어서 못 판다니 농가들도 큰 걱정은 없겠다.



 

직접 이곳에 와서 보니 마을의 풍경이 그림과 같이 이뻐서 사진에 딱히 소질이 없는 나도 마구마구 찍고 싶은 욕구가 솟구치는 게, 사진의 마을이란 말도 이해가 간다. 무려 40년 전 이 시골 마을에 ‘사진’이란 테마로 우리 마을을 널리 알리겠다고 선언한 용감한 정장(町長, 한국의 읍 정도에 해당하는 일본 행정구역 町의 장)님이 계셨다고 했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무슨 사진이람? 주민들의 반대에도 마을 발전 계획을 짜고 꾸준하게 공약으로 내걸었던 정책을 40년 동안 실행한 결과, 국제 사진 페스티벌, 사진 고시엔(甲子園, 매년 히가시가와 정에서 열리는 고등학생들의 사진 콘테스트 명) 등 다양한 ‘사진’ 관련 행사를 개최하며 전 세계의 사진가들에게 주목받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유명한 사진작가들이 이주를 해서 살고 계시기도 한단다. 흠… 나도 이곳으로 이주를… ㅎㅎ

  이 마을에는 매력적인 장소가 많다. 시골 도서관의 고정관념을 깨준 예술 관련 책들과 멋진 의자들이 전시되어 있는 마을 주민들의 쉼의 공간. 하나하나 정성과 애정이 듬뿍 느껴지는 예쁜 공간이 도서관이라니… 더군다나 여기서는 자유롭게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단다. 도서관은 서로 책에 대해 토론도 하고, 아이에게 책도 읽혀주고, 조금 소란해도 되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즐겁고 자유로운 도서관이 컨셉이라고 하니 갑자기 내년 여름은 이 곳에서 좀 뒹굴뒹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의 또 다른 매력적인 곳은 바로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목조건축의 대가 구마 겐고(隈研吾)의 건축물‘들’이다. 

  목재 이용을 늘려야 하는 일본에서는 각 지역의 공공시설을 목조로 짓는 게 유행이라고 할 만큼 목조건축이 전성기다. 구마 겐고는 그 바람을 타고 지금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데, 생각하지도 못했던 곳에서 가끔 그의 건축물을 선물처럼 만날 때가 있다. 이번에도 그랬다. 알고 봤더니, 구마 겐고 북해도 사무실이 이 마을에 있고, 그가 설계한 건물은 마을의 온천시설, 커뮤니티 센터, 쉐어 오피스로 이용되고 있었다. 


  캬~ 맑은 공기 마시며 아침 산책을 하고, 히가시가와에서 생산된 쌀로 갓 지은 밥으로 아침을 먹고, 멋진 도서관에서 오전 종일 책 읽으며, 도서관 잔디밭에 앉아 마을 카페에서 직접 로스팅한 커피 한잔 마시고, 또 다시 들어가서 장인이 만든 도서관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저녁에는 구마 겐고가 설계한 온천에서 하루의 피로를 풀고, 상상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전체 8

  • 2024-10-02 00:10

    와아~~ 토토로샘 혼자 답사 기행을 떠난 느낌인데요. 사진으로,글로만 봐도 가고 싶은 곳입니다. 다만 비행기 가격이 ‘사악’한 것이 걸리네요^^.
    경지 정리된 논이, 신안 앞바다 태양 염전처럼 일열종대네요. 찬란한 햇볕을 받고 살랑이는 바람을 맞으며 자란 쌀은 무지 맛있을 것 같아요. 앉고 싶은 도서관에 구마겐고의 목조 건축물까지. 답사로 그만이네요. 아~~ 부럽다능.


    • 2024-10-04 10:28

      선생님, 한국에서 오시면 더 저렴합니다. 한국 경유로 갈까도 생각했었답니다 ㅎㅎ 국내선 가격만 사악하고 또 제가 급하게 표를 사서 그런 것도 있습니다. 염전도 비슷한 모습이겠네요. 그러고 보니 염전을 실제로 본 적이 한번도 없네요 ㅎㅎ


  • 2024-10-02 00:33

    토토로 선생님의 히가시가와 정 방문기를 보며 태풍 지진으로 취소된 일본 답사의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일본의 대도시는 이제 한국의 서울이나 미국의 뉴욕이나 비슷한 모습으로 바껴가고, 오히려 각 나라의 시골 마을에서 그 나라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멀어서 항공티켓 가격이 사악해서 또 심리적 거리감으로 감히 엄두내기 어려운 일본 시골 특유의 정서를 이곳에서 누려봅니다.^^


    • 2024-10-04 10:30

      ㅎㅎ 이럴줄 알았으면 작년에 찍고라도 올껄… 아쉬움이 있어야 다음 기회도 기다려지는 것 같습니다.


  • 2024-10-02 11:59

    아 이거슨 사진인가 그림인가! 히가시가와 꼭 가보고 싶네요. 이곳이 위성으로 만났던 그 곳이군요. 사진을 계속 보다보니 한 달 살기 하고파요 ㅎㅎ
    마을이 왠지 인류학적입니다. 정장님의 사진 찍기 활동으로 더욱더요! 자그마치 40년… 40년 동안 한 곳을 계속 남긴다니.. 정장님의 활동이 마을을 매력적인 곳으로 만든 것 같아서요.
    40년을 생각하고 하시진 않았을텐데….. 아무튼 뭐든 징하게 해야…
    글을 읽으니 곧 마을이 나타날 것 같습니다. 토토로샘 같은 친구가 있어서 호사를 누립니다.


    • 2024-10-04 10:33

      쌤,, 여기기 바로 그 곳 ㅋ 한달살기 좋지요. 뭐든 한 40년을 하면 빛이 나구나…… 그 40 년 동안 쉴 틈 없이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는 사실^^ 걷는 시간도 즐거웠으니 지속가능했겠죠? ㅎㅎ


  • 2024-10-03 10:41

    낙원이 거기에 있군요. . . 상수도가 없다는 말의 깊은 의미를 음미하니, 저 사진 속 풍경이 더욱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리고 나무의 구마 겐고! 재미있는 글과 낯선 풍경 이야기가 감사합니다. 정말 재미있습니다.


    • 2024-10-04 10:37

      나무의 구마 겐고! ㅎㅎㅎ 딱 봐도 구마 겐고 건물이네…. 라는 생각이 들게 작업하시는 건 참 대단한 일 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