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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인류학 연구실에서는 이렇게 지금 여기의 삶을 완전히 긍정하는 주인공들의 세계를 탐험합니다. 동화 속 주인공들은 정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자신을 만들어갑니다. 주인공의 삶이 어디로 이끌릴지는 아무도 모르고 정해진 것도 없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규정 지을 수 없는 존재들이 온갖 살 궁리로 복작거리는 숲에서 깔깔 웃고 떠들며 놀다 옵니다. 그리고 돌아온 그 자리에서 지금 여기의 삶에 감사하며 한 걸음 더 낯선 길을 나서봅니다. 필요한 것은 모든 우연을 수용하고 마음껏 상상하는 것 뿐!

[뚜벅이의 동화 읽기] 프레임을 깨는 미야자와 겐지

작성자
콩새
작성일
2024-10-04 20:48
조회
88


동화인류학연재


  프레임을 깨는 미야자와 겐지

                                                   

                                                                                                                                                                  2024.10.04.  정혜숙


  -시즌마다 새로운 동화 작가와 동화를 알아 가기

  두 번째 시즌의 주인공 미야자와 겐지와 『미야자와 겐지 전집』 읽기는 동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안데르센, 그림 형제 동화, 이솝 우화 같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고 특히 아이들에게 권선징악의 메세지를 전달하는 이야기가 동화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저의 기준에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는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이제껏 동화의 핵심은 사회적 풍자, 아이들을 겁주기 위한 은유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물론 그런 선한 동화들이 여전히 사랑받고 읽혀지고 있어 다행이기도 합니다. 한편 동화는 북미 원주민들의 카치나 인형 같은 역할을 해왔다는 생각도 듭니다. 카치나(Kachina)는 북미 인디언, 푸에블인들이 종교적 의식, 농경 의식에 사용되는 가면, 춤, 인형, 의식을 말하는데. 특히 카치나 인형은 아이들에게 초자연적 존재를 경험하고 우리와 다른 것들에 대한 경고와 이해를 돕는 교육적 용도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들이 저의 프레임을 깨는 이야기라고 느끼는 이유를 설명하자면 우선 제가 상상하고 기대했던 결말이 아닌 경우가 첫 번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주문이 많은 요리점’이 그런 경우의 이야기였습니다. 두 명의 사냥꾼이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들어간 고급 레스토랑. 두 사냥꾼은 손님이 아니라 누군가의 주문에 따라 스스로 요리가 될 뻔 한 놀라운 결말의 이야기였습니다. 스스로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의 흐름에 실려 있는 우리 삶과 비교해 보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끝이나 결과를 알 수 없이 그때 그때 요구되는 조건이나 과정을 거쳐 기대와 다른 곳에 봉착하는 삶의 반복된 과정처럼 보여지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는 작가가 그려내는 풍경, 공간, 인물, 사건에 대한 묘사가 정확하다를 넘어 크게 공감되어 ‘앗!’ 바로 이거구나 싶은 감정을 불러일으킬 때가 있었습니다. ‘쏙독새의 별’에서 쏙독새의 외모에 대한 작가의 묘사는 쏙독새의 실제 모습을 궁금해하지 않고는 못 견딜 만큼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쏙독새가 주변의 무시와 혐오를 받으며 고생하는 모습과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매우 실감나게 다가왔습니다. 쏙독새는 못생긴 외모와 대비되는 지고지순한 영혼의 소유자였습니다.

 

  

  『미야자와 겐지 전집1』에는 흥미로운 이야기 흐름과 묘사가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말의 의미를 알기 어려운 이야기들도 있었는데. ‘조개불’ 그리고 ‘고양이 사무소’가 그런 경우의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이야기의 흐름이 기존의 제 사고와 상상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새로운 영역이기 때문인 것 같다는 추측을 해 볼 따름입니다. 

  저는 『미야자와 겐지 전집1』에서 ‘고양이 사무소’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 이유를 아주 짧게 답하자면 저는 고양이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고양이는 미야자와 겐지의 이야기에 단골로 등장하는 배우다 보니 어떤 배역의 고양이를 선택해야 할지 조금 고민이 되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등장인물이 모두 고양이인 ‘고양이 사무소’가 첫 번째로 꼽히는 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고양이 사무소’는 고양이들의 외모, 성격, 습성을 이야기로 써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칫 외모만 보고 상대 고양이에 대한 오해와 고정관념이 생길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고양이들은 그럴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흰 고양이, 얼룩 고양이, 삼색 털 고양이, 부뚜막 고양이(모든 고양이). 고양이의 영역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한 영역에 함께 머물 수 있는 고양이의 수가 정해져 있다는 뜻입니다. 한 구역의 고양이들은 이야기 속에서처럼 역할이 정해져 있어 구역 분배에 한계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자리를 비워야 그 자리를 차지 할 수 있어 그 영역을 차지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고양이들은 지형지물에 밝고 상황에 대한 대처 반응이 빠릅니다. 아마도 오랫동안 여행을 해온 습성에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마침 이야기 속의 고양이 사무소도 그곳을 찾아오는 고양이들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고양이 사무소’의 고양이들은 도도하고 질투가 많아 보입니다. 항상 자신과 영역을 지키려는 날 선 본능에서 나오는 습성인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의 흥미로움은 도시락을 떨어트리고 주워주려는 고양이들의 제스처를 중요한 사건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시락을 앞에 두고 하품을 하다 도시락을 떨어트리고는 의자에서 내려오지도 않고 짧은 팔로 주우려하고. 또 그것을 도와주려는 고양이에게 괜한 화풀이를 하는 등의 고양이만의 게으르고 예민한 성격을 도시락 사건을 통해 보여줍니다. 이야기 속의 고양이 모습, 몸짓에 대한 설명이나 묘사는 현실의 고양이와 비교해 보아도 전혀 과장되거나 꾸며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 고양이들도 높은 곳에서 물건이 떨어지면 일단 관심은 갖지만 그걸 주워줄지 말지를 꽤나 고민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떨 때는 물건을 일부러 우연인 듯 떨어트려 곤란한 상황을 만들기도 합니다.  

  ‘고양이 사무소’의 고양이들은 평소에 부뚜막 고양이를 무시하지만 동시에 그를 부러워하기 때문에 질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느꼈기 때문인 것 같은데. 무시하는 이유가 부뚜막에서 살아서 일까요? 저는 그게 무시당할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부뚜막 고양이는 심한 감기에 걸려 며칠 결근하고 다시 출근을 하지만 그의 동료들은 전보다 더 그를 냉대합니다. 냉정한 ‘고양이 사무소’의 고양이들은 부뚜막 고양이를 투명 고양이 취급합니다. 점심도 먹지 않고, 오후 1시부터 저녁까지, 울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그를 그대로 내버려 둡니다. 참으로 냉정한 고양이들입니다. 결국 금빛 머리 사자의 호령으로 ‘고양이 사무소’는 문을 닫게됩니다. 그럼으로써 앞으로 모든 고양이들의 여행은 위험해지겠지요. 화해하지 않는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는 조금 잔인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동화보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렇다고 슬프지는 않습니다. 이제 이 고양이들이 어떻게 살아갈지는 온전히 그들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전체 3

  • 2024-10-05 12:30

    혜숙샘 글을 통해 미야자와 겐지 <고양이 사무소>를 다시 떠올려 보니 우리가 ‘금빛 머리 사자’라는 절대자의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언제든 해산될 수 있는 자리에 있음을 생각해봅니다. 우리를 모이게도 흩어지게도 하는 어떤 알 수 없는 힘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면, 혼자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은 못 할 것 같아요. 고양이도 인간도 각자 자기 영역에서 함께 어울리며 살 때, 전능한 힘, ‘금빛 머리 사자’가 이 세계를 두고 볼 것이다.^^


  • 2024-10-06 00:34

    마지막 네 문장이 심금을 울리네요. 미야자와 겐지는 각자의 삶에 대한 책임을 타협하지 않고 잔인하게 알려주십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 2024-10-06 23:56

    혜숙샘이 말씀하시듯 미야자와 겐지는 교훈인듯 교훈 아니게, 현실을 잔인하게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고양이 사무소>에서 마지막에 사자가 거의 ‘그럴거면 다 그만둬’하는 호령도 교훈처럼 오고
    <주문이 많은 요리점>에서 무장해제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다 벗고 소금, 후추를 셀프로 치게 되는 상황까지 모두 교훈 같기도 합니다. 교훈이 아닌 것은 직설적인 단어 없이 우회적으로 말해서, 짧은 동화가 끝나면 무슨 의미인지 한참을 생각해도 잘 모르겠는 것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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