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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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여행기 [강항의 간양록] 후기
간양록(看羊錄)은 조선의 선비로서 공조좌랑, 형조좌랑의 직위까지 역임했던 강항이 정유재란 때 포로가 되어 일본에서 체류한 경험을 기록한 글입니다. 1597년 9월 피란을 가는 와중에 왜군에 피랍되어 일본 오사카와 교토에서 억류 생활을 하였고, 풀려나 1600년 5월에 본국 부산항에 도착하기까지의 약 3년간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간양록은 크게 5가지 내용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적중봉소(賊中封疏)」는 ‘적중에서 올리는 상소’라는 뜻으로 일본의 지리, 지세, 군제, 쓰시마 섬과 일본의 관계 등의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이 봉소를 3개로 만들어 탈출을 꾀하는 조선인들과 중국인을 통해서 조선에 있는 선조에게 상소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록(錄)」은 ‘적중에서 듣고 본 것의 기록’이라는 뜻의 「적중문견록(賊中聞見錄)」과 「임진·정유에 침략해 온 모든 왜장의 수효」로 이루어져 있는데 관료들의 직급 및 관직명, 왜장들에 대한 인적 사항, 관직, 성격 등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두 글을 읽고서 이 당시 포로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였는지 궁금해졌습니다. 포로라는 여의찮은 상황에서도 필사적으로 정보를 모아 어떻게든 조선 조정에 소를 보내려 함은 혹여 이후에 조선에 돌아가게 되었을 때, 부역자라는 오명으로 죽임을 당하는 걸 피하고자 함은 아닌가 하고요. 포로로 잡힌 것은 국가가 국방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에 생긴 개인의 불운인데, 상소문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죄인으로 칭하고, 변치 않는 충절을 강조하고 있기에 더욱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래서 허남린 선생님께 여쭤보았더니 당시에는 ‘왜군에 사로잡힌 것은 충심이 부족해서다’라고 여겼다는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더불어 과거에는 국가보다 계급이 더 중요했으며, 백성은 수단일 뿐이었다고 합니다. 조선 조정은 전쟁이 끝나고 조선으로 돌아오려는 조선 백성에게 거의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습니다. 체면치레로 배를 띄어 조선인을 송환하더라도 부산항에 내려놓고 끝~ 이어서, 이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며칠 먹을거리라도 마련해주자는 건의가 있었다고 합니다. 전 순간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나라의 모습에 ‘이럴 거면 세금은 왜 걷어가?!’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국가와 신민/국민에 대한 개념과 가치관이 현대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고부인격(俘人告俘人)」은 ‘부인에게 보내는 격서’로 같은 포로 처지의 사람들에게 힘을 모을 것을 당부하는 글이고 「예승정원계사(詣承政院啓辭)」는 ‘승정원에 나아가 계사함’으로 조선에 돌아온 이후, 조정에서 일본의 사정을 묻기에 자신이 경험한 일본에 대해 서술했습니다. 일본의 풍습과 복서에 대한 무지, 사원과 승려들의 생활, 궁실의 모습 등이 담겨 있습니다. 직접 체험해야 알 수 있는 외국에 대한 정보는 과거에는 아주 귀중한 자료였을 것입니다.
허남린 선생님은 강항의 뛰어난 관찰력과 분석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대부분 자기가 태어난 마을을 벗어나지 않고 죽는데, 강항은 사대부로서 다른 나라의 땅을 밟아 체험하고, 조선의 제도에 대해서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경험을 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강항이 남긴 기록이 역사적 사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도요. 간양록 중에서 일본 군인이 어떻게 죽기를 두려워 않고 싸울 수 있는지 분석한 내용과 쓰시마 섬이 보이는 교활한 태도를 경계하라는 내용이 인상적으로 기억납니다.
마지막 내용은 「섭란사적(涉亂事迹)」 ‘난리를 겪은 사적’으로 개인적인 경험을 일기 형식으로 쓴 글로 한시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강의를 들으니 당시의 글과 언어가 유교적 가치관으로 제한되어 있었기에, 한시가 사대부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었다고 합니다. 글에는 소금에 절인 조선인의 코 무덤이 구릉을 이루었다는 끔찍한 기록과 도요토미가 히데요시가 죽자 강항이 도요토미가 묻힌 사원에 찾아가 저주하는 글귀를 붙여놓은 일화가 있습니다. 강항은 이미 3번이나 탈출을 시도하여 처형당하기 직전까지 간 적도 있는데요, 이 대담한 행동을 보아 강항이 가진 왜에 대한 강한 적개심과, 강항이 한 성격 하는 인물임을 짐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외 강의에서 명량대전 이후의 정세, 포로로 끌려간 조선인의 운명, 포르투갈에 팔려 간 조선인 노예, 일본군이 인신매매에 혈안이 된 이유, 그리고 일본 성리학에 강항이 끼친 커다란 영향력 등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겪은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 당시의 역사, 문화, 가치관 등을 알아야 하는데 허남린 선생님의 강의 덕분에 당시의 상황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강의도 무척 기대됩니다.
<간양록> 이야기를 다시 듣는 것 같은 박진감 넘치는 후기 잘 읽었습니다.
“한 사람이 겪은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 당시의 역사, 문화, 가치관 등을 알아야”
사회적 맥락을 고려한 이해를 하려면, 공부를 촘촘히, 아주 많이 해야 한다는 결론이기도 하네요.